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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Apr 08. 2023

슬픔이 단지 무르고 예민한 사람만의 몫이어야 하나

영화 ‘생일’(2019) 리뷰

(2019년 4월 24일에 쓴 글이다.)


"재난은 우리가 속한 지역사회의 건강과 사회의 정의가 우리의 생사를 결정하는 요인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을 증명한다."

-리베카 솔닛, 『이 폐허를 응시하라』, 정해영 옮김, 펜타그램, 2012, 18쪽.
영화 '생일' 스틸컷

수많은 인명을 앗아가는 재난은 참혹한 비극이다. ‘사건’도 슬프며 ‘사고’ 역시 슬프다. 모두에게 4월 16일이 ‘4월 16일’로 기억되게 만든 그날의 바다 이후, 개인이 느끼는 슬픔의 정도 혹은 여부와 관계없이 ‘세월호’라는 이름은 하나의 국가적 재난이 되었으리라 믿는다. 영화가 실제 있었던 일을 소재로 할 때 관객이 일차적으로 의식할 법한 가치판단의 기준은 그것이 있은 지 얼마나 오래되었느냐는 것일 텐데, ‘세월호’는 불과 2014년의 일이라는 점에서 상업영화에서의 소재로 활용되는 것에 대해 우려가 적지 않았음을 안다. 이를테면 콘텐츠로 다루기에 ‘너무 이르다’라는 것일 테다. 그러나 나는 류승완 감독의 <군함도>(2017) 등 여러 영화에 대하여 리뷰를 쓰면서 종종 언급한 것처럼, 반드시 조심하거나 피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 편이다. 소재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은 태도이므로, 상업영화의 소재나 서사가 특정한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한다는 것은 내게는 그 영화가 자신을 다루는 데 있어 ‘그 사건’이 필요했으리라는 점을 우선 생각하게 한다. 이종언 감독의 영화 <생일>은 런칭 당시 포스터의 카피에 ‘네가 없는 너의’ 같은 문구를 적었고 시놉시스는 ‘2014년 4월 이후’라는 말을 포함했다. 그렇다면 <생일>은 소재에 대한 우려를 가라앉힐 만한 영화였는가.


내 기준으로 먼저 말하자면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영화가 자신의 소재를 상업적으로 소비하기만 했는지 아니면 스스로의 서사를 전개하는 데 있어 반드시 필요했음을 입증했는지에 대한 판단 기준은 관객 각자에게 있을 것이지만, <생일>에 있어서 고려할 만한 한 가지가 있다면 ‘유가족의 마음을 대변하려 했느냐’이겠다. 김민정 시인은 『엄마, 나야』(난다, 2015)의 서두에 “아이들 부모님이 공통적으로 하는 얘기가 있습니다. “아이에게 잘 있다는 말 한마디만 들을 수 있으면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지인들 꿈에라도 자기 아이가 나왔다고 하면 어떤 방식으로든 그걸 확인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아이의 ‘생일시’에서 그 메시지가 어떤 방식으로든 부모에게 전달됐으면 하는 소망이 있습니다. 치유적 관점에서 볼 때 부모님을 비롯해 남아 있는 이들을 위로하는 동시에 통증이 아니라 그리움으로 기억하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그런 메시지인 것 같아서요.”라고 썼다. 이 ‘단원고 아이들의 시선으로 쓰인 생일시 모음집’에 수록된 시 중 2학년 6반 선우진 학생의 생일시 ‘우리들의 시간은 꽃이었어요’가 영화 <생일>의 후반에 극 중 ‘수호’의 생일시로 쓰였다. 이 시는 이규리 시인이 썼다.


영화 '생일' 스틸컷


김민정 시인이 상기 언급한 ‘치유적 관점’은 문화 콘텐츠가 대중들에게 전할 수 있는 가치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유가족이나 지인, 혹은 일반 관객 등을 구분하지 않고, 한 사건을 다루는 데 있어 그 이야기가 과연 보는 이로 하여금 어떤 마음을 들게 하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영화를 보고 슬퍼하거나 눈물을 흘릴 때, 그것은 물론 영화 자체의 완성도나 서사의 치밀함 때문이 아니라 소재 자체가 주는 영화 외적인 감정도 일부 포함될 것이다. 그러나 <생일>은 사건 자체에 주목하기보다 그 당사자가 과연 어떤 마음이었고 어떤 마음인지, 어떤 마음이 되어갈 것인지에 대해 소홀하지 않게 담아내려는 고민을 드러낸다. 영화의 시간은 느리게 흐른다. 남겨진 가족들의 일상이 계속되고, 유가족들 사이에서도 저마다의 다른 형편이나 입장이라든가, ‘수호’가 없다는 사실에 대해 가족과 친구들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으며 그것이 일상에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영화의 절반 이상을 할애해 차분하게 관찰한다.


‘관찰’이라는 표현은 실은 맞지 않겠다. 이렇게 고쳐보자. 곁을 지키며 그가 너무 아프지는 않은지 마음을 쓰는 일. 말하자면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노심초사하며 사람의 아픈 내면을 보듬으려 노력하는 것인데, 동시에 <생일>은 관객의 눈물샘을 억지로 열려하지 않는다. 가장 가깝고 소중한 사람을 하루아침에 잃은 사람이 과연 어떤 마음일 수 있는지에 대한 심사숙고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신과 시퀀스가 영화를 채우고 있는데, 주목할 만한 점은 ‘더 이상 슬퍼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영화가 일부 담고 있다는 점이다.


영화 '생일' 스틸컷


가령 ‘순남’(전도연)의 작은아버지는 “나라에서 보상금 주는 게 꽤 액수가 크지 않느냐”라며 직접적으로 돈 이야길 꺼낸다. ‘순남’이 일하는 마트 직원들 역시 보상금에 대한 뉴스를 보면서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설혹 나쁜 의도를 고의적으로 품은 발언이 아니라 할지라도, 자신의 일이 아닌 일에 대하여 쉽게 말하는 사람들. 광화문 광장의 천막을 곁에 두고 누군가는 한때 ‘폭식 시위’를 하기도 했고, 또 어떤 사람은 “이제 그만할 때도 안 됐느냐”라는 말을 했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타인의 슬픔보다 개인의 영달이 중요한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런데 타인에 대한 감수성을 결여한 채 개인주의를 넘어 이기주의를 체화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된다. 리뷰를 적기에 앞서 일기를 쓰면서 이렇게 말했다. 자신이 울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울음을 그치라 해선 안 된다고. 어쩌면 나 역시 강 건너 불구경하는 한 사람에 지나지 않고 다만 먼 곳의 불을 그저 하염없이 바라보며 막연히 아픔과 슬픔을 상상하고, 혹은 겪지 않은 일에 대해 공감하려 애쓰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 일이 아니어서 다행이다’ 보다는 ‘그게 바로 나의 일이 될 수도 있었다’라는 마음이 좀 더 인정과 유대를 가능하게 하는 말이 아닐까. 봄만 되면 생각나는 책들이 많다. 앞에서 리베카 솔닛이 표현한 ‘사회적 정의’란, 국가나 시스템이 알아서 만들어주는 게 결코 아닐 것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작은 말과 행동, 그리고 태도, 나아가 연대와 포용, 공감. 그것들이 쌓여서 만들어지는 것이라 믿는다. (2019.04.24.)



영화 ‘생일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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