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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Apr 09. 2023

그에게 따뜻한 마음이 있다는 증거

영화 '레이디 가가: 155cm의 도발'(2017) 리뷰

영화 <스타 이즈 본>(2018)의 비교적 초반부에는 ‘앨리’(레이디 가가)를 처음 만난 밤 그를 데리고 ‘잭슨’(브래들리 쿠퍼)이 한 마트에 들어가는 대목이 있다. 부은 손을 진정시킬 만한 것을 구입하기 위해서였는데, 계산하던 점원은 자기 앞의 손님이 ‘잭슨 메인’임을 알아차리자 곁의 스마트폰을 들고 ‘잭슨’의 사진을 찍는다. 그러고는 “미안해요. 저도 모르게 그만...”이라 말하고 ‘잭슨’은 “괜찮아요”라고 답한다. 영화 속 ‘잭슨’이 인기 정점의 스타가 아니라 조금씩 쇠락해가고 있는 스타임에도 이런 일은 그에게 일상이다. 직전 신의 주점에서는 사람들이 말을 걸고 사진을 찍자며 카메라를 들이밀기도 한다.


https://brunch.co.kr/@cosmos-j/446



영화 <스타 이즈 본> 스틸 컷


국내에서 종종 ‘공인’이라는 (사적으로는 동의하지 않는) 단어로 칭해지곤 하는 연예인에게 진짜 사생활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누군가를 만나고, 어딘가에 가고, 개인 소셜미디어 계정에 어떤 사진이나 글을 올리곤 하는, 모든 일이 뉴스가 되고 가십으로 소비된다. 사는 곳에는 커다란 카메라를 든 파파라치가 따라다닌다. 스타의 일상은 ‘알 권리’라는 이상한 단어가 따라붙기도 한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레이디 가가: 155cm의 도발>(2017, 원제: 'GaGa: Five Foot Two')은 상술한 <스타 이즈 본>에 주연한 ‘레이디 가가’의 일상을 따라간다. ‘스타의 화려한 무대 뒤 잘 알려지거나 공개되지 않은 일상’이라는 테마는 문자 그대로 보면 오히려 흔하고 식상한 내용일 것처럼 보이나 사실은 최측근이 아니면 아무도 알 수 없는 순간들이라는 점에서 그 자체로 ‘누구도 모르는 이야기’가 된다. <레이디 가가: 155cm의 도발>의 시간적 배경은 정규 5집 앨범 'Joanne'(2016) 발매 전후다. 이 시기 그에게는 많은 일이 있었다. 3년 전의 4집 앨범이 혹평에 시달린 이후 심적 부담이 극심했고, 약혼이 깨졌으며, 투어 중 입었던 엉덩이 부상은 그를 내내 통증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런 배경 속에서 준비하게 된 새 앨범은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고모의 이름을 앨범 제목으로 삼은 것에서 알 수 있듯 지금껏 어떤 노래에서도 제대로 담지 않았던 자신의 가장 개인적인 이야기를 전한다.


레이디 가가, 다섯 번째 스튜디오 앨범 'Joanne'(2016)


“늙은 팝스타가 되는 게 꿈이에요.
오랜 팬들과 함께요.”
-작중 레이디 가가의 말


5집을 준비하는 동안 제51회 슈퍼볼 하프타임 공연 무대에 오를 아티스트로 선정되는 등 비활동 기간에도 그에게는 신경 써야 할 일들이 많다. <스타 이즈 본>의 캐스팅 소식이 작중 초반에 언급되기도 하고 곡 녹음이나 뮤직비디오 촬영 전후에 만성적인 통증에 시달리는 모습, 수시로 재활 치료나 마사지를 받는 모습 등도 다큐멘터리에 담긴다. 스타의 일상은 늘 고단하다. 혼자의 자유가 거의 허락되지 않지만 막상 혼자의 시간이 찾아왔을 때 끝 모를 고독에 시달리기도 한다. 감시되지만 존중받지는 못하는 일상이 주는 아이러니다.


“밤이 되면 내 곁엔 아무도 없어요. 이 사람들은 다들 날 떠나겠죠. 분명히 그럴 거예요. 그럼 나 혼자 남게 되겠죠.”
-작중 레이디 가가의 말


실존 인물, 특히 아티스트를 주인공으로 한 다큐멘터리의 흔한 구성인 인터뷰나 내레이션 형식의 서술을 <레이디 가가: 155cm의 도발>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제한된 공간에서 카메라를 향해 한두 명의 사람(들)이 “그는 어떤 사람이에요” 식의 답변을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잠에서 깬 후 하루를 시작하는 모습, 반려동물과 보내는 시간, 가족과 대화하거나 요리를 하는 순간, 프로듀서 및 스태프들과 새 곡을 녹음하는 장면 등 일상과 비일상(곧, 직업)을 넘나들며 카메라는 마치 레이디 가가의 측근처럼 자연스럽게 곁을 오간다. 한 인물의 생애를 조명하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그 생애에서 오직 특정한 시기만을 담고자 하는 지향점이 엿보인다. 이는 ‘2016년 Joanne'이라는 한 순간을 파노라마처럼 포착하는 것을 뜻하고, 한 지점에서 다른 한 지점에 이르기까지의 스펙트럼이 있다고 할 때 그중 어떤 단면을 현미경처럼 확대한 느낌을 준다. 동시에 ’가가‘의 동선을 따라 운집해 있는 팬들이나 곁을 항상 지키는 매니저와 스타일리스트 등 주변 풍경, 그리고 그를 향한 대중 매체의 여러 보도와 언급들을 곳곳에 배치해 단조롭지 않으면서도 역동적인 구성을 만든다.


넷플릭스 영화 <레이디 가가: 155cm의 도발> 스틸컷


작품의 하이라이트는 슈퍼볼 하프타임 공연 준비 과정을 담은 후반부에 있다. 연습과 리허설을 일부 보여주면서 본 공연 장면은 일부러 생략함으로써 다큐멘터리의 의도는 마치 ‘진짜 무대는 작품(무대) 바깥에 있음’을 말하기 위함인 것처럼 보인다. 겉으로만 보이는 화려함 혹은 유명세가 아니라 개인으로서, 자연인으로서 간과되기 쉬운 ‘스테파니 조앤 안젤리나 저머노타’(레이디 가가의 본명)의 삶을 헤아릴 줄도 알아야 한다고 말이다. 한 가지 더. 어떤 공연을 했는지가 아니라 그 공연을 어떻게 준비했는지, 어떤 앨범을 발매했는지 혹은 그 성과가 아니라 그 앨범을 준비하는 동안 무슨 일들이 벌어지는지. 과정을 담는 작품으로서의 취지를 벗어나지 않는 것.


작은 실수도 돌이키기 어려운 큰 무대의 중압감을 두고, 무대로 향하기 직전 동료 댄서들과 스태프들에게 (잠시 숨 고르거나 한눈팔 틈이 없으니) 처음 자세를 유지하며 끝까지 버텨요. 알았죠?”라고 말하는 레이디 가가의 모습은 단순히 진심이기를 넘어 앞으로 펼쳐질 삶을 향한 스스로의 다짐이자 응원처럼 다가온다. 스타의 삶을 살게 된 이상 그 어떤 일에도 무너지지 않고 버티기. 예술을 “누구나 원하는 대로 해석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라고 정의하면서도 그 누구나의 자의적 해석으로부터 마음 아파하고 상처 받는 그의 모습에서 일반인은 결코 상상할 수도 없을 ‘유명인’의 무게가 전해진다. 많은 순간 대중과 언론은 스타를 인격이 아니라 상품처럼 대하기 때문이다. <레이디 가가: 155cm의 도발>은 온기를 지키기 어려운 세상에서 홀로 분투하는 상처투성이 아티스트의 굳은살과 눈물을 면밀히 관찰하는 값진 기록이다. (2019.05.08.)


넷플릭스 영화 <레이디 가가: 155cm의 도발>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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