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동진 Feb 16. 2019

왔던 곳으로 돌아갈 수 없어 다행이야

영화 <스타 이즈 본>(2018)

누구에게나 그런 시간이 찾아온다. 어떤 순간. 지금이 내 삶을 이전과 이후로 나누는 어떤 분기점이 되겠구나, 하고 직감하게 될 수밖에 없는 때. 그런 순간에 대해서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어떤 영화를 보았을 때, 어떤 노래를 들었을 때, 혹은 어떤 사람을 만났을 때. 배우 브래들리 쿠퍼가 연출한 첫 장편이자 1937년작 <스타 탄생>의 세 번째 리메이크작인 <스타 이즈 본>(2018)은 바로 그 순간을 생생한 방식으로 담고 있다. 극 중 '잭슨'(브래들리 쿠퍼)의 히트곡인 'Maybe It's Time'은 영화에서 총 세 번에 걸쳐 들리는데, 그 세 차례의 순간을 중심으로 나는, 다른 모든 별들과 아주 비슷하게 생겼지만 그러나 다른 무엇과도 같지 않은 그 하나의 별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할 작정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아
옛 방식들이 사라질 때인가 봐
죽은 뒤에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몰라
(...)
왔던 곳으로 돌아갈 수 없어 다행이야
그 시절이 영원히 사라져서 다행이야
과거의 영혼을 불러올 수 있다면 기꺼이 그럴 텐데
-잭슨 메인의 곡 'Maybe It's Time', <스타 이즈 본>(2018) 사운드트랙에서


영화 <스타 이즈 본>(2018) 스틸컷


첫 번째 'Maybe It's Time'은 '잭슨'이 '앨리'(레이디 가가)가 공연하는 드랙 바에 찾아왔을 때다. 처음 만난 두 사람이 술을 한 잔 더 하러 나서기 직전에 ‘앨리’의 동료의 청으로 즉석에서 부르는 곡이다. 이 곡을 부른 직후 자리를 옮긴 두 사람은 조금 더 사적인 대화를 나누는데, 이때 <스타 이즈 본>은 서로에게 시선을 향하는 두 사람의 얼굴을 주의 깊게 클로즈업한다. 사랑에 빠진 것처럼 ‘앨리’를 바라보는 '잭슨'. '앨리'의 코를 손가락으로 가만히 만져보는 '잭슨'. 그를 쳐다보는 '앨리'의 표정. 이때부터 이미 두 사람은 서로에게 이끌렸으리라.


두 번째 'Maybe It's Time'. '잭슨'의 공연장에 선 '앨리'가 자작곡인 'Always Remember Us This Way'를 부르기 직전이다. 여전히 인기를 구가하고 있지만 알코올과 약물로 생활을 유지하며 조금씩 내리막을 걷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잭슨'은, 저 '앨리' 노래의 제목이기도 한 말을 '앨리'에게 전한다. "사랑해. 우리 모습 영원히 이대로 기억해." 이는 사랑의 순간이 결코 영원할 수 없음을 알리는 전조처럼 다가온다. <스타 이즈 본>의 익숙한 이야기 구조는 영화를 보기 전부터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종류의 것인데, 인기 절정을 달리던 스타의 하강과, 아직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는 또 다른 스타의 비상은 필연적으로 돌아올 수 없는 행복한 순간을 그리게 만든다. 후반부 이어지는 여러 갈등과 사건들은 두 사람이 공연을 함께하며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사랑을 누리고 음악적 영감을 주고받는 지금 순간을 더욱 빛나게 만든다. 그 어떤 순간도 지나가 버릴 뿐 영원할 수 없음을 알기에, 항상 서로의 모습을 지금처럼 기억하자는 말은 황홀한 동시에 슬프다.


영화 <스타 이즈 본>(2018) 스틸컷


팝 가수로 데뷔하고 'SNL' 무대에 선 '앨리'의 공연을 본 '잭슨'은 그가 자신만의 음악적 색깔을 잃을까 염려하고, '앨리'에게 마음에는 없을 심한 말을 한다. 세 번째 'Maybe It's Time'은 안무를 연습 중인 '앨리'를 찾아가 '잭슨'이 사과하기 직전에 배치되어 있다. 이미 술과 약을 끊을 수 없을 만큼 깊이 의존하게 된 '잭슨'의 모습을 보며 나는 이 화해가 그리 오래 지속되기는 어려우리라 불길한 직감을 했다. 그러나 '앨리'가 스타가 되었으니, 그것만으로 다행이라고 해야만 할까. 우리에게 지금이 소중한 이유는, 행복한 순간이 행복한 이유는, 그 순간이 절대로 다시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영화의 처음, 'A STAR IS BORN'이라는 영화의 타이틀이 나오던 그때를 떠올려보자. 길 위에 있던 '앨리'는 공연을 하러 간다. 공연을 마친 '잭슨'은 낯선 길을 지나 무작정 술집을 찾아 어느 바에 들어선다. 서로의 여정이 섞이기 시작하는 순간. 인기 절정의 스타와 신인의 만남, 두 사람의 사랑과 서로가 주고받는 예술적 영감, 그리고 다가오는 시련. 80년 전부터 여러 차례 만들어져 온 이 이야기에 새로울 것은 없다. <스타 이즈 본>은 스스로 새로워지기를 택하지 않는다. "음악이란 건 옥타브 내에서 12개 음이 반복되는 것, 똑같은 얘기를 반복해서 얘기하는 것이다. 뮤지션은 그 12개 음을 자기 방식대로 들려주는 것."이라는 작 중 대사가 있다. 이 영화가 만들어진 방식, 이 영화가 담고 있는 이야기는 모두 반복이 만들어내는 작은 차이를 담는다. 'Maybe It's Time'을 비롯해 영화의 여러 사운드트랙은 두 번 이상 반복된다. 어떤 이야기는 계속 되풀이해도 힘을 잃지 않는다. 다만 세부적인 '이야깃거리'를 어떻게 다듬고 배치하느냐, 그것이 감정적 깊이와 울림을 만든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 (이미 이야기된 이야기일지라도) 자신이 하고 싶은 방식으로 들려주었는데 그것이 통하는 일. 적어도 내게는, 내 삶이 이 영화를 관람하기 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는 게 다행이다. 스타는 탄생하며 이야기는 계속된다. (2019.02.16.)


영화 <스타 이즈 본>(2018) 국내 메인 포스터

*'극장에서 한 영화를 떠나보내기': (링크)

*'무수히 많은 별들 중 내게 태어난, 단 하나의 별': (링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