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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영화와 이 세상
by 김동진 Sep 11. 2018

무지했고 이기적이었고 사려 깊지 못했던 나에게

영화 <너의 결혼식>(2018)을 보고

사랑을 하는 것의 빠르고 늦음에 정확한 기준이야 없겠지만, 통념적인 그것이 있다면 나는 연애가 늦은 편이었다. 막연하게 누군가를 좋아한 적은 있었지만 언제나 이루어지지 못했다. 나는 표현할 줄 몰랐고 다가갈 줄 몰랐으며 타인을 대하는 일에 너무나 서투른 사람이었다. 이루어질 리가 없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몇 번의 짧은 짝사랑이 있었고, 첫 번째 연애는 대학교 3학년이 지나서야 하게 됐다. 내게는 그때의 연애가 첫사랑이었다 해야겠다. 비 오는 날 함께 우산을 썼던 그날. 그 사람은 어찌할 줄 몰라 전전긍긍하는, 마음을 표현하고 나서도 조마조마해하는 내가 순수해 보였고 또 거기서 진심을 느꼈다고 했다. 좋아한다는 말을 했고 이틀이 지나 그 사람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우리, 만나보자고. 그렇게 해보자고.


두 해가 흘러 우리는 헤어졌다. 담담했지만 도피했다. 슬퍼했지만 아무렇지 않은 듯 일상으로 애써 돌아왔다. 애도하기보다 나는 그 사람의 어떤 면이 나와 맞지 않았다든지, 그 사람의 어떤 면은 나를 힘들게 했다든지, 그런 것들을 생각하며 우리는 결국 '잘' 헤어지게 된 게 아닐까 생각하기까지 했다. 일상적인 대화를 했던 마지막 날의 그 이야기들은 어느덧 사라지고 없었다. 우리는 그날 이후 소식을 들을 일도, 다시 만날 일도, 다시 마주칠 일도 없었다. 번도. 무렵 연애에 대해 다룬 TV 드라마를 보면서 지난날의 다툼이나 어떤 대화, 혹은 막연한 미래의 다짐들을 떠올리곤 했고, 사랑에 대해 에세이를 읽으며 앞으로 나는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될까, 그리고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 그런 것들을 생각하곤 했다.


요는, 그 사랑에 대해서 어떤 학습을 하기 위해서는 그 사랑이 끝나야만 한다는 것이다. 사랑을 하고 있을 때는 오직, 빠져들어 있을 뿐 성찰하고 돌아보며 깨우치는 노력이 제대로 되지는 않는다. 단언할 수 없겠지만, 그런 것 같다. 그때의 그 사람과 내가 더 오래 만났다면, 아니 계속 만나고 있었다면 나는 그 첫사랑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모른 채 편안함에 안주하고 상대에게 상처를 줬을 것이다. 말하자면, 첫사랑이 성립할 수 있는 건 그 사랑은 반드시 실패하기 때문이며, (혹은, 이별에 성공했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사랑에 있어서는 실패와 성공이라는 개념 자체가 무의미한 것일지.) 사람은 누구나 한 번을 넘어서는 다음의 사랑을 할 때에만 사랑으로부터 자신을 깨우치며 타인을 조금 더 잘 헤아리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


영화 <너의 결혼식> 스틸컷
영화 <너의 결혼식> 스틸컷



영화 <너의 결혼식>을 보면서 내 지난날을 잠시 떠올릴 수밖에 없었던 건 영화의 만듦새가 어떤지와 별개의 것일 테다. '황우연'(김영광)과 '환승희'(박보영)의 만남에 있어 일어나는 여러 가지 사건과 감정들은 매체에서 익숙하게 봐온 것이기도 하고, 관객들 중 누군가는 비슷한 방식으로 겪어본 것이기도 하리라. 아주 잘 만든 영화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극장가 흥행의 주류가 되기 쉽지 않은 (국산) 멜로 / 로맨틱 코미디 영화가 저 정도의 흥행(9월 9일(일) 자정 기준, 누적 관객 252만 명)을 기록하는 건 장르에 대한 갈증을 어느 정도 해소시켜주는 일이라 하겠다.



결말에 대한 자세한 스포일러를 하지 않더라도 <너의 결혼식>이라는 제목이 많은 걸 이미 함축하고 있다는 건, 영화를 보지 않았더라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앞서 잠시 지나 보낸 표현이었지만 사랑에 있어 '실패'라는 게 있다면 우리가 첫사랑에 대해서 해야 할 일은, 그것을 '잘 만들어진 실패담'으로 만드는 일이다. 故 황현산 선생의 산문 [밤이 선생이다]에서 한 대목을 대신 가져와야겠다.


성장통과 실패담은 다르다. 두 번 다시 저지르지 말아야 할 일이 있고, 늘 다시 시작해야 할 일이 있다. 어떤 아름답고 거룩한 일에 제힘을 다 바쳐 실패한 사람은 다른 사람이 그 일에 뛰어드는 것을 만류하지 않는다. 그 실패담이 제 능력을 극한까지 발휘하였다는 승리의 서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봄날은 허망하게 가지 않는다. "바람에 머물 수 없던" 아름다운 것들은 조금 늦어지더라도 반드시 찾아오라고 말하면서 간다.

황현산, 『밤이 선생이다』, 난다, 2013, 88쪽.


<너의 결혼식>은 '그땐 서투르고 무지했으니까 그럴 수 있어'라고 쉽사리 위로하거나 미화하는 영화가 아니라, 그때의 자신이 얼마나 이기적이었는지, 그리하여 어째서 그토록 상대를 잘 헤아리지 못할 수밖에 없었는지, 성찰하고 반성하는 영화라고 해야겠다. 아무리 이야기의 맺음이 다소 '영화적'이고 '우연'과 '승희' 두 사람의 관계를 오래 잇기 위해 무리하게 작위적인 에피소드들을 끌어왔다고 하더라도.


영화 <너의 결혼식> 메인 포스터



지나간 것들이 끝내 나를 성숙하게 했음을 깨닫는 일은, 더 이상 그때가 내게 다시 있을 수 없다는 걸 확인하고서야 이루어진다. 그때서야, 나의 과거를 함께한 이들에게 웃어줄 수 있게 된다. 처음이라는 것에 어떤 의미를 부여한다면, 바로 그 단 한 사람에게. 처음을 찬미하는 건 그것을 신화화하는 게 아니라 그때가 불완전하고 미성숙했던 시절이라는 걸 인정하는 일이다. 사랑에 있어서 때가 있다면 단지 그것이 시작되는 것만을 일컫는 게 아니라 때로는 사랑을 계속해야 할 일, 수명이 다했음을 알고 애도해야 할 일, 혹은 모든 것을 걸고 지켜내야 할 일, 그런 것들에도 존재할 것이다. 앞을 다 안다고 생각하고 말지만 사랑을 할 때의 우리는 그걸 모르겠지. 끝이 나게 될지라도 그 사랑이 정말 아름다운 것이었다면, 한 사람과 받은 사람 누구든 그의 삶은 한 뼘 더 자라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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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기 위해 글을 쓰고 있습니다. 그 영화와 이 세상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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