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신작 영화 <오펜하이머>(2023)가 개봉했다. 내게 놀란 감독의 영화 대부분은 디스토피아에 가까워진 세계 속에서 그럼에도 무엇인가를 끝내 바꾸기 위해 분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다가왔다. <오펜하이머> 개봉을 즈음하여 감독의 전작 중 하나인 <인터스텔라>(2014)를 다시 떠올린 것은 다분히 기후 변화 때문이다. 누군가는 또 새삼스럽게 기후 변화 이야기인가 싶을 수 있겠으나 우리가 끊임없이 꺼내야만 하는 이야기. <인터스텔라>에서 ‘쿠퍼’(매튜 맥커너헤이)와 대원들은 인간이 살 수 있는 행성을 찾기 위해 항성을 넘나드는 여정을 시작한다.
<인터스텔라>에서 미 항공우주국(NASA)이 다른 행성을 찾아 나선 것은 영화 속에서 지구가 더 이상 인류의 삶의 터전으로 기능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기후 변화로 대기가 오염되고 재배할 수 있는 작물의 수가 급격히 줄어 사람들은 영화관이 아닌 야구장에서도 팝콘을 먹는다. 밀 농사를 지을 수 없어 옥수수 농사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되기 때문이다. 그마저도 작황이 좋지 않고 사람들은 이제 우주 개발이나 혁신적인 과학 기술에 대한 연구보다는 단지 농사를 잘 지을 수 있는 방법만을 모색한다.
영화 '인터스텔라' 스틸컷
다시 말해서 <인터스텔라> 속 사람들은 황폐화된 지구에 ‘적응’하기로 결심한 상태다. 야구 경기를 보다가도 황사 경보에 경기는 중단된다. 보안경과 마스크를 착용하고 집에 와서도 창문을 꽁꽁 닫은 채 먼지 폭풍이 지나가기를 기다린다. 지구에 살고 있는 수십 억 인류에게 남은 건 오직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는 일뿐이고, 주인공을 비롯한 소수의 우주비행사와 과학자들만이 지구를 떠나 다른 행성에서 인류가 살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다. 그마저도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이주하는 ‘플랜 A'와 수정란 상태의 인간 수 백 명을 데리고 아예 새로운 행성에서 새롭게 문명을 시작하는 '플랜 B'로 나뉜다. 쿠퍼와 대원들은 물론 더 많은 사람들을 이주시키기 위한 전자에 집중하지만, 인류의 새 터전을 찾는 이 ’나사로 미션‘의 설계자 브랜드 박사(마이클 케인)는 여전히 플랜 A의 달성을 위한 중력 방정식을 해결하지 못한 상태다.
<인터스텔라>에서 문제 해결의 중심이 되는 것은 주어진 과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답안을 찾을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과 희망은 없고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여 또 다른 생존 방식을 찾아야 한다고 여기는 사람(들)의 견해 차이 혹은 대립에 가깝다. ‘제2의 지구’의 존재 여부 혹은 탐사 가능성을 재단할 수 없는 상황에서 주인공 ‘쿠퍼’를 비롯해 브랜드 교수의 딸 ‘브랜드’(앤 해서웨이) 등 탐사의 주역들은 예기치 못한 상황들 속에서 과학을 기반으로 최선의 판단을 내리기 위해 분투한다. 그러나 예컨대 한정된 연료로 두 개의 행성 중 어느 곳으로 향할 것인가 하는 선택의 기로에서 과학과 이성은 종종 사랑과 비이성과 대립하거나 충돌한다. 그럼에도 가능성을 담보할 수 없는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어떤 인물은 오직 사랑만으로, 사랑을 능히 4차원 혹은 5차원의 것으로 만들어 가장 소중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온몸을 내던진다.
영화 '인터스텔라' 스틸컷
우리가 보지 못하는 차원의 사랑에 관해 이야기하는 <인터스텔라>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의 해답은 ‘쿠퍼’와 그의 딸 ‘머피’(맥켄지 포이)의 사랑에서 비롯되지만 놀란 감독이 말하고 싶었던 건 작중 인용되는 딜런 토마스의 시처럼 “순순히 어두운 밤을 받아들이지” 않고 “저무는 하루에 소리치고 저항”하는 낙관과 희망의 태도 자체에 깃들어 있다. 그러나 영화에서 전제하는 건 이미 지구가 황폐화되어 인류가 다른 행성으로 떠나야만 하는 상황이고, 그건 적어도 2023년을 사는 지금의 우리에게 찾아오지 않기를 바라는 국면이다.
세계 곳곳이 폭우와 폭염, 지진으로 신음하고 있다. 최근 세계 해수면 평균 온도가 20.96도로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고 한다. 기후 변화의 중요한 특징으로 꼽히는 것은 되돌릴 수 없다는 ‘비가역성’이다. 적어도 지금은 수십 억 인류가 나서서 세계를 더 나빠지기 이전으로 되돌릴 수 있는 상태일 것으로 ‘믿는’다. 그 믿음을 지키고자 한다면 우리는 작은 행동부터 시작해야 하겠다. <인터스텔라> 외에도 이미 수년 전부터 여러 소설과 영화들이 인류의 미래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불규칙한 기상 현상을 경험하고 있는 우리가 여전히 세계를 낙관할 수 있도록 모두의 행동이 촉구되는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