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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Sep 03. 2023

사라져가는 것들이 단지 전설에 그치지는 않기를

영화 '물꽃의 전설'(2023) 리뷰

영화 '물꽃의 전설' 스틸컷


'전설'이라는 말이 어떤 경우에는 사라져 가는 것 혹은 다시 볼 수 없는 것에 대한 표현이 될 수 있다. 8월 30일 개봉한 <물꽃의 전설>(2023)은 '물질' 경력 87년이 넘는 현순직 해녀와 전직 헤어디자이너 출신으로 물질에 입문한 채지애 해녀를 중심으로 산소통 없이 숨만큼만 바닷속을 오가는 제주 해녀들의 낮과 밤을 따라가며 관찰한다. 고단하고도 평범한 일상을 곁에서 주시하며 아름다운 풍경을 담아내던 카메라는 어느새 오염되어 이전과는 달라진 어두운 바다의 모습도 내보인다.


영화 '물꽃의 전설' 스틸컷


"바다는 절대로 인간의 욕심을 허락하지 않는단다. 바닷속에서 욕심을 부렸다간 숨을 먹게 되어 있단다. 물속에서 숨을 먹으면 어떻게 되겠냐. 물숨은 우리를 죽음으로 데려간단다."

-고희영, 『엄마는 해녀입니다』에서(난다, 2017)


다큐멘터리로서 영화가 할 수 있는 일이 동시대의 현장, 그리고 그 시대에만 가능한 어떤 가치를 기록하는 일이라면 <물꽃의 전설>은 기록물로서 최상의 경험을 선사한다. 이대로라면, 만약 지금으로부터 제주 바다가 더 좋아지지 않는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고희영 감독은 사라져 가는 것들로 제주의 언어, 제주의 해녀, 그리고 제주의 바다를 모두 꼽는다. 이제는 현순직 해녀의 기억에만 생생히 남아 있는 '물꽃', 달라진 해양 생태계, 줄어드는 해녀의 수.


영화 '물꽃의 전설' 스틸컷


그것이 정말 '전설'이 되지 않도록 무엇인가를 해야만 한다고 힘주어 말하지는 않지만, <물꽃의 전설>이 수중촬영으로 담아낸 경이로운 풍경과 다년간에 걸쳐 포착해 낸 밤의 달, 그리고 물질을 마치고 골라낸 해산물을 제작진에게도 나눠주는 할머니의 굽은 등 같은 것이 많은 울림을 생성해내기도 한다. 애써 무엇인가를 발화하지 않아도 단지 어떤 삶의 모습과 역사를 보여주고 들려주는 것만으로 더 많은 이야기가 될 수 있음을 어떤 스토리텔러는 진작에 간파하고 바로 그러한 방식으로 계속해서 카메라를 꺼낸다. 그리고 그로부터 탄생한 매 프레임이, 관객에게 말을 건다.



영화 '물꽃의 전설' 메인포스터

(8월 30일 개봉, 92분, 전체관람가.)


영화 '물꽃의 전설'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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