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공식작전'(2023) 리뷰
김성훈 감독의 7년 만의 신작 영화 <비공식작전>(2023)은 1986년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실제로 피랍되었던 한국인 외교관 ‘도재승’의 이야기를 기반으로 한다. (이 서술 외 대부분의 요소들은 영화 내에서 가공 및 각색되었다.) 비교적 근작 중 하나인, 류승완 감독의 영화 <모가디슈>(2021)가 내전 등으로 불안정한 정세 속에서 펼쳐지는 탈출 실화를 다룬다는 점에서 유사하게 다가오는 면이 있지만, <모가디슈> 쪽이 남북 대사관 사이에서 생겨난 연대에 중점을 둔다면 <비공식작전>은 조금 당겨 말하면 직업적 사명 그리고 자국민을 보호하는 국가의 역할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는 점에서 차이를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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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비공식작전> 줄거리
학력으로도 인맥으로도 후배에게 밀려 중동 지역만 5년째 담당 중인 외무부 사무관 '이민준'(하정우)은 모두가 퇴근한 어느 날 밤 우연히 전화를 통해 외교관만 아는 암호로 된 구조 요청 메시지를 듣는다. 메시지 주인공은 1년 반 전에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피랍된 한국인 외교관 '오재석'. 정부에서 직접 개입할 수 없는 상황상 외무부에서는 비밀리에 인질 교환을 위한 협상 통로를 모색하고, 민준은 현지에 직접 파견돼 오재석을 데려오는 임무를 맡는다. 그런데 베이루트 공항에서부터 인질 협상 소문을 들은 공항경비대에 쫓기는 신세가 되고, 우연히 탄 택시에서 한국인 기사 '김판수'(주지훈)를 만난다. 아랍어와 불어에 능통하지만 나이도 정체도 의심스러운 판수와 어떻게든 오재석을 찾아 구해내야만 하는 민준의 어색한 동행이 시작되는 동안 피랍된 외교관 구출이 진행 중이라는 소문으로 현지 무장 단체들이 개입하며 상황은 더욱 복잡해져 간다.
오재석의 생사를 확인한 뒤 몸값을 납치범에게 주고 그를 생환시키기만 하면(?) 되는 정도의 간단한 일이면서 미국으로 발령받을 수 있는 기회라고 여겼던 민준의 짐작과 달리 현장에서 상황은 계속해서 꼬인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인질 협상이 있을 것이라는 소문을 들은 현지 무장 단체 등이 움직이기 시작했기 때문이고 무엇보다 작전이 외무부에서 독자적으로 은밀하게 진행하는, 당시 안기부와 청와대의 승인을 거치지 못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좀 더 정확히는, 안기부에서도 이를 파악하지만 상황을 지켜보기로 하는 쪽에 가깝다)
영화에서는 오재석의 피랍 후 1년 반이 지나는 동안 정부의 대응, 즉 오재석의 생사 파악 및 납치의 배후 추적 등이 미온적이고 지지부진했던 것으로 그려지는데 이 또한 이유가 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유치, 준비하면서 국제행사를 앞두고 민감한 정치 외교적 이슈가 대두되는 것을 꺼렸기 때문, 그리고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이 이루어지면서 선거를 의식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1년 반 전 레바논에서 피랍된 외교관을 무사히 고국으로 데려오는 작전이 '비공식'일 수밖에 없었던 환경인 것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비공식작전> 속 민준과 판수 일행은 대내외적으로 모두 어려움에 직면한다. 돈 냄새를 맡고 이들의 생사를 위협해 오는 현지 군과 무장 단체들은 물론이고, 중요한 순간 해외 송금 차단으로 훼방을 놓는 안기부의 압력 등이다.
김성훈 감독의 전작들에서 일찍이 인상적인 활약을 한 하정우, 주지훈 배우의 호연으로 <비공식작전>은 작중 많은 요소들이 예상 가능한 것들, 그리고 그것을 벗어나지 않는 요소들로 채워져 있음에도 긴장감과 유머 사이를 오가며 몰입을 위한 활력을 잃지 않는다. (레바논 대신) 모로코 일대 로케이션을 배경으로 잘 구현된 현장감과 효율적인 편집으로 <비공식작전>은 캐릭터의 전사 없이도 탈출을 위한 액션 자체를 생생하게 담고 있는데 이 무난함 내지는 안정감이 내게는 영화가 담고 있거나 시사하는 바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해 보게 만들었다.
"나는 대한민국 외교관 이민준입니다"
때로는 그다지 특별해 보이지도 않고 인상적이기보다 평범해 보이는 대사 한 마디가 영화의 많은 것을 보여주는 경우가 있다. 민준도 판수도 정의감, 사명감, 직업의식 등과 같은 단어들과 가까운 인물은 아니었다. 그러다 <비공식작전>은 여정 내내 두 사람이 마주하는 상황과 환경의 변화를 통해 그들이 어떻게 성장해 나가는지를 보여주는 한편 서두에 언급한 화두를 상기시킨다. '단지 외교관 한 명' 쯤으로 취급하는 환경에도 그들은 굴하지 않고 '인간의 생명'을 구하는 일, 그리고 외교관으로서의 직업적 소명의식을 다하는 일에 기꺼이 함께한다. 물론 관객이 살고 있는 지금은 영화의 배경이 된 1980년대 후반과는 많이 달라져 있지만, 어떤 면에선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은 것이 있지는 않을는지, 급변하는 정세 속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없는지 <비공식작전>은 여름철 상업 영화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묻는다.
(8월 2일 개봉, 132분, 12세 이상 관람가.)
영화 <비공식작전>의 배경이 된 실화와 관련한 참고 기사:
https://star.ohmynews.com/NWS_Web/OhmyStar/at_pg.aspx?CNTN_CD=A0002949668
https://101creator.page.link/xhc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