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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Nov 29. 2023

리뷰와 비평이 읽고 쓰지 않는 이들에게는 무슨 소용이

황석희 번역가의 신간 '번역: 황석희'를 읽으며

"간혹 이런 유형의 영화평을 본다. 타인의 영화평이 마음에 안 든다는 영화평. 내가 그 작품을 좋게 봤으면 그것으로 된 거고, 그 작품을 좋지 않게 봤다면 그것으로 된 거다. 남이 호평을 하든 혹평을 하든 상관없는 일이다. (...) 이런 글에 가장 불필요한 것은 '왜 이런 걸 재미없다고 하는지 모르겠다'라는 예광탄을 기점으로 발사되는 자기애적이고 현학적인 해설이다. '왜 이런 걸 재밌다고 하는지 모르겠다'로 시작되는 반대 입장의 글도 마찬가지다.

어떤 영화를 좋게, 혹은 좋지 않게 봤다면 내게 어떤 면이 좋았고 좋지 않았는지, 어떤 감상이 있었는지를 쓰면 된다. 남의 감상을 끌어와서 평가하는 건 영화평이 아니라 '타인의 영화평에 대한 평'이다."

-황석희, 「취존이 어렵나?」, 『번역: 황석희』에서, 달, 2023, 19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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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희 번역가의 신간 '번역: 황석희'(달, 2023)

(그동안 아주 여러 차례 해 온 이야기의 연장선이라, '이 사람 또 이 소리 하네' 싶을 수 있음 주의) 요즘, 아니 몇 년 전부터 온라인 어디서든 볼 수 있는 현상 중의 하나는 타인, 특히 기자/평론가의 영화에 관한 리뷰와 비평, 혹은 나아가 20자 평 등에 대해 ('정당한' 비판이라고 착각하는) 비난이나 비아냥이 제법 만연해 있다는 점이다. 요컨대 이런 것들. '왜 그런 (어려운) 단어를 쓰는가?', '왜 평점을 겨우 그렇게밖에 안 줘?', '영화사(혹은 감독)랑 친한가?', 'ㅇㅇㅇ 평론가 실망이다' 등. 자신이 그 영화평에 대해 비판할 권리를 지닌 '소비자'인 것처럼 착각하는 류의 문장들도 제법 보인다.

(애당초, "객관적인" 영화평이라는 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문화예술에 대한 모든 리뷰, 분석, 비평은 당연하게도 주관적이며, 그 분야의 전문 필자일수록 더더욱 주관적이다. 모두를 만족시키는 건 불가능하다. 그들이 내세우는 '평론이 객관적이지 못하다' 같은 주장의 유일한 근거는 그 영화에 대한 평가가 자신과 다르다는 것뿐이다. 나는 그들이 비난과 비아냥 대신 자신의 생각을 정연한 문장으로 적어내는 것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원인 내지는 배경을 여러 가지로 짐작할 수 있다. 막연한 반지성주의, 리뷰/비평에 대한 몰이해, 극단화/이분화된 문화 풍조, 문해력, 무엇보다, 타인에 대한 존중의 결여. 해당 영화평을 쓴 이에 대한 존중을 결여한 이들의 볼멘소리를 애써 귀담아 존중해주고 싶지는 않지만, 글쓰기를 10년 이상 해온 입장에서는 이런 생각도 해본다. 어차피 글이라는 건 본래 읽거나 쓰는 이들이 아니라면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는 쓰나 마나 한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가령 황석희 번역가의 위와 같은 문장을 영화를 애호하는 많은 이들이 일독했으면 좋겠다고 강하게 생각하지만, 읽지 않는 이들에게는 닿지 않을 것이다. 쓰는 일을 고집하는 이의 일종의 오만처럼 들릴지 모르겠으나, 그만큼의 고민와 숙고를 거쳐본 일이 없다면 바로 글이 매 순간 행하는 그 일을 온전히 헤아리지 못할 것이다.

보이지 않는 생각과 감정을 눈에 보이는 문자 언어로 풀어내기 위해 긴 시간 고민해 본 이가 아니라면, 타인의 리뷰, 비평, 20자 평을 볼 때 작용하는 건 그 사람의 의도나 맥락을 선해하려는 노력이 아니라, 오직 'ㅇㅇㅇ 평론가가 A라는 영화에 대해 평점 00점을 줬다' 같은 정량적/단편적 판단뿐이다. 영상도 빨리/건너뛰어/잘라 보는 세상인데 하물며 글을 '제대로' 읽을 리가 있겠는지. 영화가 능동적, 주체적으로 감상해야 더 잘 보이는 매체인 것처럼 글도 마찬가지다. 본인 취향"만"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에게 리뷰가, 비평이, 글이, 이야기가, 할 수 있는 일이 과연 무엇이 있을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 온라인상의 일부 사람들의 둔감한 발언이 전체 대중을 대변하지는 못하며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타인과의 소통과 교류와 대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믿어볼 따름이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770861


https://brunch.co.kr/brunchbook/whyikeptwriting

https://101creator.page.link/xhc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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