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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May 26. 2024

보이지 않지만 거기 있는 것

영화 ‘어드리프트: 우리가 함께한 바다’(2018)

*영화 <어드리프트: 우리가 함께한 바다>(2018)에 관해 스포일러를 포함해 다루고 있습니다.



일상을 뒤흔드는 갖가지 경험을 다루는 재난 영화들을 보면 혹시나 영화 속 인물들이 매 순간 느끼는 죽음의 위협이나 소중한 사람을 잃는다는 공포감 등의 감정과 감각들이 스스로에게 너무 오래 다가와 박히지는 않을까 싶은 일말의 우려가 관객을 엄습해올 수 있다. 하지만 여러 영화들을 계속햏서 보다 보면 ‘삶의 의지’ 같은 말로 표현해볼 수 있을 어떤 것들이 점차 생겨나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영영사전에는 ‘표류하다’라는 뜻의 단어 ‘adrift’에 대해 이런 설명이 적혀 있다. “so as to float without being either moored or steered” (배가) 정박되어 있지도 않고 (누군가) 키를 잡고 있지도 않은 채로 그저 떠 있는 상태. 표류한다는 건 그러니까 항구와 같은 안전한 장소에 있지 않은 상태, 조종간을 잡고 의도한 바에 따라 움직이는 게 아니라 목적과 방향을 잃은 상태를 말한다. 지금 말할 영화의 제목이다.


영화 '어드리프트: 우리가 함께한 바다' 스틸컷


<어드리프트: 우리가 함께한 바다>(2018)는 누군가 얼핏 보기에 그저 그런 흔한 실화 바탕 영화 중 하나 같을지도 모른다. 바다 한가운데에서 만난 허리케인, 모든 것을 앗아갔지만 그 폐허와 상처를 지나 다시 시작되는 삶. 이 영화가 개봉했던 2018년 9월, 대략 위와 같은 키워드와 줄거리를 떠올린 채 극장으로 향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직접 ‘이 영화’를 선택해 관람한 것이 아니라 심야 특가 상영 프로그램을 통해 세 편의 영화를 함께 본 것이었기 때문이다. (나머지 두 편은 <너의 결혼식>, <서치>였다.)


그러나 영화를 본 후 이것이 짐작했던 것과 좋은 의미로 전혀 다른 영화였다는 걸 깨달았다. 사람을 살게 하는 게 눈에 명확히 보이고 정확히 계산할 수 있는 것보다는 추상적이고 경우에 따라 아주 불확실한, 실체 없는 것들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건 아니지만 <어드리프트: 우리가 함께한 바다>만큼 영화 전체에 그것이 담겨 있는 경우를 자주 만나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지만 거기 있는 것. 아니, 없지만 분명히 (내게는) 있는 것에 관해서.


작품의 배경은 1983년 가을이다. 스물 셋의 나이로 타히티에서 샌디에이고까지 요트로 향하던 ‘태미’(Tami Oldham Ashcraft)는 태평양 한가운데에서 거대한 허리케인을 만나 배가 뒤집히는 사고를 겪는다. 약혼자인 ‘리처드’와 함께했던 여정이다. 정신을 차렸을 때 그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고 배에는 물이 차오르고 있었다.


영화 '어드리프트: 우리가 함께한 바다' 스틸컷


이 ‘표류하는’ 이야기의 시작은 이렇듯 재난 한가운데다. <어드리프트: 우리가 함께한 바다>는 당면해 있는 상황을 먼저 보여준 뒤 5개월 전으로의 플래시백을 택해 이 요트 여행이 어떤 과정으로부터 출발하였는지를 다룬다. 일정한 거처 없이 이곳저곳을 여행하며 생활하던 ‘태미’는 타히티에서도 얼마나 머무를지 모르는 채로 바다 사람들과 크고 작은 교류와 노동을 하며 지내고 있었다. 그때 만난 ‘리처드’(샘 클라플린)라는 남자. 우연한 만남이었지만 비슷한 삶을 사는 듯이 보였던 둘은 자연스럽게 가까워진다.


이 여정의 시작은 사랑이었다. 요트를 타고 수천 킬로미터를 항해하는 이야기의 큰 줄기를 관객은 처음부터 이미 아는 채로 영화를 함께하게 된다. 사방을 둘러봐도 아무런 생명의 흔적이나 붙잡을 무언가도 보이지 않고 저 수평선 너머엔 오직 구름 낀 하늘 밖에 존재하지 않을 때, 그 사람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어드리프트: 우리가 함께한 바다>는 영화의 실제 주인공 태미가 직접 쓴 회고록을 기반으로 하여 5년여의 시나리오 작업을 거쳐 탄생했다.


개봉 당시에는 간과했지만 VOD를 통해 영화를 다시 보면서 오프닝의 크레디트 한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주인공 ‘태미’를 연기한 쉐일린 우들리는 이 영화의 제작자이기도 하다. 주연 배우가 제작자들 중 한 명으로 참여하는 경우는 아주 많이 있지만, ‘Produced By’는 조금 다르다. ‘Executive Producer’가 단지 일정한 정도의 기여를 했다는 의미라면 ‘produced by’는 제작 전반의 과정을 실질적으로 도맡았거나 총괄했다는 의미다. 그러니까 <어드리프트: 우리가 함께한 바다>를 말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영화 안의 주인공이자 영화 밖의 주역이기도 했던 ‘태미’와 쉐일린 우들리 이야기로 들어가봐야 하겠다.


영화 '어드리프트: 우리가 함께한 바다' 스틸컷


쉐일린 우들리는 배역을 맡기 전까지 한 번도 요트를 몰아본 적이 없다고 한다. ‘태미’를 연기하기 위해 처음 배웠다. 여러 영화들의 뒷 이야기를 접할 때 배역을 위해 그 캐릭터의 직업 등 필요한 기술이나 능력을 연마했다는 배우의 일화를 쉽게 접할 수 있지만 실화 바탕의 이야기를 접할 때 다가오는 감흥은 그렇지 않은 경우와는 조금 다른 종류인 것 같다. 그가 연기한 태미 올드햄 애쉬크래프트 본인도 영화의 자문으로 참여했는데, 두 사람은 영화를 위해 서로 긴밀하게 대화와 논의를 거듭했다. 쉐일린 우들리는 ‘CBS’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알려진 실화라 사람들이 이 이야기가 어떻게 끝나는지 이미 알고 있을 수는 있지만 이 이야기가 어떻게 거기까지 향하는지는 알지 못할 것입니다.”


실존 인물을 영화에서 연기한다는 건 그저 알려진 대로 ‘재연’하는 일이 아니라 그 이야기가 자신에게 무엇을 시사하는지 생각하고 거기서 어떤 점을 중요하게 이끌어낼지를 고민하는 과정일 것이다. 쉐일린이 캐릭터의 실제 모델에게 자문을 받은 건 당시 상황을 똑같이 옮겨오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순간 주인공이 어떤 생각과 감정을 경험했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USA Today’와의 인터뷰에서도 쉐일린은 “이 이야기는 생존에 관한 것이기도 하지만 러브 스토리이기도 하다”라며 “실제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면서도 거기서 무엇을 끌어낼지가 더 중요했다”라고 말한다. 이건 단지 23세 여성의 40여 일 동안의 표류기 정도로는 요악될 수 없다. 쉐일린 우들리가 주연은 물론 메인 제작자로 참여했다는 건 단지 만들어진 이야기를 ‘연기’하기만 한 게 아니라 직접 태미의 이야기를 스크린으로 생생하게 재창조하기 위한 노고를 담았음을 뜻하겠다.


<어드리프트: 우리가 함께한 바다>를 연출한 발타자르 코루마쿠르 감독은 이런 종류의 재난 영화로서는 드물게 수시로 플래시백을 활용한다. 생존 자체가 중심이 되는 다른 작품들, 예컨대 <마션>(2015)과 같은 영화가 어떻게 전개되는지를 생각해보면 <어드리프트: 우리가 함께한 바다>의 선택은 어쩌면 모험이었을 것이다. 항해를 떠나기 5개월 전 과거와 허리케인을 만나 배가 뒤집힌 현재를 수시로 교차해서 보여주는 일은 현재 상황이 주는 긴박감과 거기서 주인공이 느끼는 두려움 같은 것들이 플래시백에 의해 희석되거나 상쇄되어버리게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화 속 ‘태미’가 떠올리는 과거는 그냥 자신의 과거가 아니라 ‘리처드’와의 순간들로만 채워져 있다. 어떻게 그를 만났고 어떤 시간과 공간에서 그와의 관계가 깊어졌으며 이 여정은 무슨 계기로 떠나게 된 것인지, 그리고 그 모든 순간들을 통해 둘은 서로 어떤 교감을 하고 대화를 나누었는지. 그 순간들이 생존의 위협 앞에서 플래시백으로 개입하는 이유란 일단 그것들이 삶을 돌아볼 때 만약 지금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면 가장 소중한 경험들로 삶에 스며들었기 때문일 것이며, 또 하나의 이유는 바로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와 관련되어 있을 것이다.


영화 '어드리프트: 우리가 함께한 바다' 스틸컷


‘리처드’가 살아있는지 여부를 모르는 상태에서 계속해서 표류하던 ‘태미’는 위기의 순간들마다 ‘리처드’의 목소리를 마치 환상처럼 듣는다. 그건 단지 행복했던 나날을 추억하는 일이 아니라 요트의 방향타를 좌측으로 얼마만큼 돌리라는 것과 같이 ‘삶’을 향한 실질적인 지령과도 같게 다가온다. 영화를 보고 실제 태미는 “그 순간으로 다시 돌아간 기분”이었다며 무의식 중에 들려오던 ‘리처드’의 목소리가 자신을 살게 했고 그것이 영화에 잘 드러나 있다고 말한다.


재난 상황을 묘사하는 방식으로는 흔치 않게 기억 속 지난 일상의 단면들이 현재에 빈번하게 개입하도록 이야기를 구성한 건 <어드리프트: 우리가 함께한 바다>가 그만큼 실존 인물이 겪은 이야기에서 감정을 제대로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했다는 뜻이다. ‘태미’가 정말 ‘리처드’가 바로 옆에서 조언해주듯이 그의 음성을 떠올리며 삶의 의지를 다잡았고 결정적인 순간들마다 5개월 전 과거의 나날들을 회상했기 때문에, 영화 역시 표류기와 로맨스를 기계적으로 교차해놓은 게 아니라 각색의 과정에서 그 점을 고스란히 구현한 것이다.


결국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시간은 오직 현재일 뿐이다. 그러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살 수는 없어도 눈앞의 현재에 분명 지난 감각들과 기억들이 겹겹이 교차해 있다는 것을 <어드리프트: 우리가 함께한 바다>는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죽음에 이르게 되더라도 존재는 반드시 어딘가에 머무는구나 싶어요. 절대로 끊어지지 않는 것들이 있어요. 이를테면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을 떠나더라도 그와 함께했다는 감각은 영원히 남잖아요.” (임경선, '안경' 중에서, 『곁에 남아 있는 사람』, 위즈덤하우스, 2018, 57쪽.)




보이지 않고 존재하지도 않는 것에 대해 ‘감각’했다고 말하는 일이 과연 가능하다고 할 수 있을까. 오직 자신만이 그 체험에 대해 생생하게 기억하고 그것이 ‘있었다’라고 말할 수 있다면. 하지만 세상 모든 일에 그것을 증언하거나 보증해줄 수 있는 증인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고 자신의 존재 자체가 그것을 증명하는 유일한 실체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드리프트: 우리가 함께한 바다>의 실제 주인공 태미가 회고하는 이야기는 바로 그런 것이어서, 이 이야기는 얀 마텔이 원작을 쓰고 이안 감독이 연출한 <라이프 오브 파이>(2012) 속 ‘파이’의 경우를 떠올리게도 하는 것이다.


영화가 이런 종류의 이야기를 다룰 때 그것은 종종 어떤 논리와 합리의 영역을 뛰어넘게 된다. 태미는 결국 살아남았다. 41일간의 표류 끝에. 1983년에 겪은 이 이야기는 훗날 본인의 회고에 의해 책으로 쓰여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영화로 만들어져 당시의 상황이 스크린으로도 생생하게 구현됐다. 이것이 무용담이 되지 않고 감성 깊숙한 곳을 적시는 드라마가 될 수 있는 건 이 영화가 제작된 방식과 실화를 재현한 태도에 기반하겠지만 결국 이것은 관객 본인이 무엇을 체험했느냐에 달려 있겠다.


<어드리프트: 우리가 함께한 바다>를 극장에서 관람했던 당시에는 같은 해 개봉한 <맘마미아!2>의 잔영을 떠올리기도 했다. 장르적으로는 전혀 다르지만, <맘마미아!2>의 주인공 ‘도나’(릴리 제임스) 역시 이 영화의 ‘태미’와 환경적으로는 일부 유사성을 말할 수 있다. 정해진 것 없이 막연한 환상 내지는 꿈을 찾고자 칼로카이리 섬에 온 ‘도나’는 여러 사연들로 섬에 동행하거나 머물렀던 세 명의 남자들과의 일을 겪으며 우리가 알고 기억하는 <맘마미아>(2008)의 그 ‘도나’(메릴 스트립)가 된다. <맘마미아!2>에서도 섬에 몰아친 폭풍으로 인해 어떤 사건이 벌어지기도 한다.


https://brunch.co.kr/@cosmos-j/1313


영화 '어드리프트: 우리가 함께한 바다' 스틸컷


<어드리프트: 우리가 함께한 바다>의 ‘태미’가 항해 중 만난 허리케인은 그러나 ‘도나’가 만난 폭풍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것이어서, 그를 생사의 기로에 서게 만든다. 하지만 ‘태미’는 삶을 거의 포기하기 직전까지 가게 만든 극한의 상황 속에서 다시금 생의 의지를 회복해나간다. 거기에는 평생을 함께하기로 약속한 ‘리처드’의 존재가 있었고 그들의 존재 혹은 그로부터의 경험과 기억은 눈에 보이지 않고 손으로 만질 수도 없는 것임에도 ‘태미’에게 생생한 감각으로 다가왔다.


가끔 <마션>(2015)과 같은 영화를 보면 ‘난 문과라서 안 될 거야’ 같은 생각이나 하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거대한 재난을 온몸으로 마주하는 이야기들 앞에서 우리는, 아니 저는 이런 경험이 어떻게 ‘이야기’가 되는가에 관해 생각해본다. 산문집 『시옷의 세계』(마음산책, 2012)에서 김소연 시인은 말라 죽어 있던 창가의 나무에서 새로 돋아난 싹을 두고 태양과 나무 사이에 보이지 않지만 직선 하나가 그어져 있었다고 표현한다. 거기에는 태양 에너지가 어떤 과학적 작용을 통해 나무에 전달되었음이 내포되어 있고, 시인의 언어로 표현된 저 문장은 삶이 눈에 보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들로만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시사한다.


스토리가 누군가에게 ‘스토리텔링’ 될 수 있는 건, 사람이 보이지 않는 것을 믿을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인 것처럼 여겨진다. 물론 이 세상에서 사람만이 그런 추상적이고 불확실한 것을 감각하는 것은 아니겠으나 언어라는 건 그 표면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뚜렷하게 형상화할 수 없는 것들을 표현해버리곤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생명을 앗아가는 재난을 직접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에게도 그것이 거기 있었다는 생동감을 준다. 어떤 경험은 찰나일지라도 평생을 바꿔버릴 수 있다.


태미 올드햄 애쉬크래프트는 지금도 항해를 계속하고 있다고 한다. 어디선가 또 다시 폭풍을 만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미 허리케인으로부터 살아남은 적 있는 태미는 세상 누구보다 강인한 선장이자 삶의 항해자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의 생생한 회고 덕분에, <어드리프트: 우리가 함께한 바다>는 그와 관객을 태평양 한가운데에서 함께이도록 만들어주었다. (2020.09.28.)


영화 '어드리프트: 우리가 함께한 바다' 국내 포스터

https://www.youtube.com/watch?v=If2lCD0SQ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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