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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Sep 22. 2016

모든 면에서 가장 인간적인 '재난 영화'의 모범 사례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2016), 클린트 이스트우드

어떤 사건이 있은 후, '체슬리 설렌버거'(톰 행크스)는 꿈을 꾼다. 그는 대중들에게는 영웅이 되어 있다. 항공국에게는 조사해야 할 대상이 되어 있다. 그의 꿈 속에서 여객기는 뉴욕 도심에서 빌딩 숲을 향해 고꾸라진다. 사고가 있던 그 날, 관제탑에서는 그에게 인근의 활주로를 향해 착륙하라는 내용의 교신을 했으나 그는 공항 대신 허드슨강에 착륙하는 것을 택했다.


네이비 씰 저격수 '크리스 카일'의 실화를 다룬 <아메리칸 스나이퍼>(2014), 2015.01.14 국내 개봉작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전작 <아메리칸 스나이퍼>(2014)에서도 영웅이 된 '크리스 카일'(브래들리 쿠퍼)이 일련의 사건들의 과정과 사후에 겪는 정신적 고통 내지는 혼란의 내면을 끌어다가 이념과 이익에 의해 군인을 사지로 내모는 전쟁에 대한 냉철하면서 담담한 성찰을 전했다. 여기서의 국가는 그를 영웅이라 불렀지만 아내는 그가 다른 사람처럼 변했다며 마음 아파하는 장면이 그려지기도 한다.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 역시 양상은 전혀 다르지만 영웅이라 칭해지는 인물의 이면을 통해 사회적 성찰이 담긴 메시지를 전한다는 점에서는 맥락을 같이 한다. 한 사람을 둘러싼 세상의 반응이 엇갈리는 상황. 큰 사건으로 인해 그가 겪는 상흔, 그리고 그로 인해 영향을 받는 또 다른 사람들. 이처럼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이 택한 이야기에는 단순히 '실화'라는 단어만으로는 결코 표현할 수 없는 복합적이고 인간적인 테마들이 담겨 있다. 40년이 넘는 비행 경험을 통해 그는 직감적으로 새떼의 피격 후 양쪽 엔진 모두가 파손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데이터는 여전히 한쪽 엔진은 사용 가능한 상태였다는 기록을 남겼고, 결과적으로는 기장이기 전에 승객의 한 사람이었던 (그래서 '155'라는 숫자는 중요하다. 승객 뿐 아니라 기장과 승무원을 모두 포함한 숫자라는 것을 영화에서도 강조한다.) '설리'의 판단이 정확했다.



사고 후 관계당국이 '설리'에게 음주, 가정불화, 약물, 비행 전날 수면시간 같은 것에 대해서까지 철저하게 추궁하는 장면와 같이 관객의 입장에서는 종종 이해하기 어렵거나 분통을 유발하는 대목도 있다. 하지만 오히려 원인을 정확하게 규명하기 위해 컴퓨터 및 조종사 시뮬레이션까지 거치는 모습과, '설리'의 말에, 재난을 통해 일어난 인간적인 기적에 대해 모두가 공감하는 모습이 그려지며 재난에 대응하고 대처하는 이상적인 모습을 담아낸다. 후반 공청회 시퀀스에서의 '설리'의 일침처럼, 초기 조사 과정과 시뮬레이션에서는 인적 요소를 미처 감안하지 못하였을 뿐이다. 과학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그것은 사람의 손을 거쳐 운영되는 것이니 말이다.



이 영화에 사용된 카메라는 최신의 아이맥스 카메라다. 그러나 US 항공 1549 여객기가 허드슨강에 비상착수한 후 사람들이 구조되는 장면은 실제로 2009년 1월 15일 사건이 일어났던 장소에서 그대로 촬영되었다. 단순히 실화를 재현하는 것에 그치지 않은 채, 최신의 촬영 기술과 기법을 활용하면서도 능란한 연출과 편집을 통해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은 주인공 '설리'가 겪어야 했던 내면의 일들에까지 소홀하지 않았다. (재난을 다룰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오히려 정신적 재난일 것이다. 혹은, 재난보다 재난 이후가 중요하다. 적지 않은 '재난 영화'는 그 점에 소홀하거나 간과한다. 최근에는 <터널>이 그랬다.)


그리고 그것을 영화 속의 사람들에게는 물론이고 관객에게까지 유효하게 전달한다. 공청회에서 조종사의 음성 기록 녹취를 듣기 위해 헤드셋을 착용한 후 이어지는 208초 간의 장면은 영화가 관객과 호흡하고자, 인간의 진정한 뜻이 뛰어난 기술과 만나는 이 영화의 가장 탁월한 성취다. 공청회장의 사람들이 헤드셋을 착용하는 순간, 관객 역시 현장에 동참한 것과 같은 생생한 경험을 선사한다.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에는 기장 '체슬리 설렌버거' 혼자 나오는 샷 못지 않게 이렇게 두 사람이 함께인 장면이 적지 않다.


체슬리 설렌버거와 제프리 재슬로가 쓴 이 영화의 원작의 제목은 <Sully>가 아니라 <Highest Duty>다. 이 영화가 그리는 드라마틱한 실화가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기장이 베테랑이면서 승객의 안전을 우선했기 때문이 아니다. 기장의 판단을 정확히 이해하고 따라준 부기장과 승무원이 있었고, 상황에 빠르게 대처한 관제탑이 있었으며 사건 현장을 발견하고 발벗고 나선 해양경찰과 구조대 등의 손길이 적시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모두가 자신의 역할을 수행했다. 그리고 '설리'는 155명 중 155번째로 비행기에서 탈출했다.


마땅하게 할 일을 하지 않아서 벌어지는 안타까운 소식들을 접하는 요즘,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이 원제에서 추가한 부제 '허드슨강의 기적'은 거추장스럽기는 커녕 오히려 영화의 내용을 더욱 정확하게 관객에게 전하기 위한 알맞은 장치다. 모두가 저마다의 주어진 역할에 소홀하지 않을 때, 결코 예상하고 대비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지더라도 어떤 기적이 능히 일어난다. 사람은 과학을 만들기도 했지만, 비과학적인 것을 더 많이 따른다. 그리고 그런 것들은 대체로 함께 만드는 것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연출작 중 상영시간이 가장 짧은 이 영화는 그의 영화 중 가장 긴 감상을 남기는 작품으로 조금도 손색이 없다. 지금껏 이 영화 속 배우들에 대해서는 전혀 이야기하지 않았는데,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재난의 모든 면에서 충실하다. 가장 인간적인 재난 영화의 모범 사례다. (★ 9/10점.)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Sully, 2016)>, 클린트 이스트우드

2016년 9월 28일 (국내) 개봉, 96분, 12세 관람가.


출연: 톰 행크스, 아론 에크하트, 로라 리니, 안나 건, 크리스 바우어, 어텀 리저, 샘 헌팅턴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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