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동진 Oct 01. 2016

삶이 끝나도 이야기는 계속 이어진다

<빅 피쉬>(2003), 팀 버튼

<빅 피쉬>에는 이 세계에 대한 방대하고 깊은 은유가 담겼으며, 무엇보다 이야기가 어떻게 만들어져 왔고 삶 속에 존재하며 또 전승되는지에 관하여 꿰뚫고도 남는다. 또한 감독의 작가주의를 대변하면서도 스크린 바깥의 삶과 능히 맞닿아 있는, 좋은 영화의 표본과도 같은 작품이다. 게다가 원작자 다니엘 월러스와 연출자 팀 버튼 모두가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은, 현실과 비현실을 적당히 타협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간극을 인정하되 이야기와 이야기의 힘으로 그 사이에 다리를 놓고 서로를 이어주는 지극히 순수하면서도 예리한 방식에 있다.


그 점을 가장 적극적으로 대변하는 캐릭터는 '에드워드'(앨버트 피니/이완 맥그리거)도 '윌리엄'(빌리 크루덥)도 아닌 '제니'(헬레나 본햄 카터)다. 어린 과거의 '제니'는 동화적이고 순수한 과거를 잊지 않게 하며, 성숙한 현실의 '제니'는 '에드워드'가 쉽게 정착하고 안주하지 않도록 동기를 부여했으며, 노년의 '제니'는 그런 가운데 미래를 바라보는 시선을 놓치지 않도록 눈을 제공했다.



그리하여 '윌리엄'은 마침내 아버지의 허무맹랑한 것으로만 받아들여졌던 이야기에 진실이 아닌 진심이 깃들어 있었다는 것을 확인한다. 마침내 자신이 결코 받아들일 수 없었던 방식의 이야기로 아버지의 곁을 지킨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용인하기로 한다. '에드워드'는 삶이라는 불가해한 언어를 메타포와 위트로 가르쳤고, '윌리엄'은 신화적, 상징적 존재로서 아버지를 받아들이게 된다.


누군가의 삶을 떠나서도 이야기는 기억되는 한 어떤 형태로든 남는다. 팀 버튼이 자신의 영화를 통해서 무엇을 관객에게 전하고자 하는지, 그 정수가 <빅 피쉬>에 있다. 이야기의 끝은 또 다른 이야기의 시작임을. 단순한 사실논리를 넘어서는 환상과 낭만의 이야기가 이 현실세계를 진정 아름답고 따뜻하게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판타지가 단순히 외적 감각을 사로잡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말이다. 꿈꾸는 어른은 끝내 이 세상을 크게 만든다. (★ 9/10점.)



<빅 피쉬(Big Fish, 2003)>, 팀 버튼

2004년 3월 5일 (국내) 개봉, 125분, 12세 관람가.


출연: 이완 맥그리거, 앨버트 피니, 빌리 크루덤, 헬레나 본햄 카터, 마리옹 꼬띠아르, 스티브 부세미 등.



"나는 이 노인을 바라보았다. 생이 저물어가고 있는 시간에 늙고 하얀 발을 흐르는 맑은 물에 담그고 있는 나의 늙은 아버지. 나는 불현듯, 그리고 아주 단순하게, 한때 소년이었던, 어린애였던, 그리고 젊은 청년이었던 나의 아버지를 생각해보았다. 내 청춘과 마찬가지로 아버지도 한때 청년이었던 것을, 나는 한 번도 아버지를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 이미지들 - 아버지의 현재와 과거 - 은 모두 하나로 합쳐졌다. 그러자 순간, 아버지는 젋으면서도 늙은, 죽어가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새로 태어나고 있는 아주 기괴한 존재로 변했다.나의 아버지는 하나의 신화가 되었다." (7쪽)
"그가 집에 없을 때는 매혹적이고 신비로운 존재였지만 일단 집에 오면 그저 평범한 존재가 되어야 했다." (30쪽)
"누군가가 한 이야기를 기억해준다면 그는 영원히 죽지 않는 거란다. 그걸 알고 있니?" (36쪽)
"믿을 수 있겠니? 나는 그것이 내 운명이라고 생각했어. 큰 연못에서 노는 큰 물고기. 그게 바로 내가 원했던 거란다. 처음부터 그랬어." (37쪽)
"그는 몹시 늙은 사람이었다. 시간 속에서 인간이 갈 수 있는 한계만큼 앞으로 나아갔다가 그래도 여전히 살아 있어서 다시 왔던 길을 되짚어오는 여행을 시작한 것 같았다." (68쪽)
"정상적인 사람들과 그들이 갖고 있는 온갖 계획 말이야. 이 비와 이 축축함. 이것은 일종의 찌꺼기지. 꿈의 찌꺼기 말일세. 이루 셀 수 없이 많은 꿈 말이야. 나의 꿈과 그의 꿈과 그리고 자네의 꿈." (71쪽)
"제 인생에서 유일하게 특별한 일이라면 제 아들입니다." (113쪽)
"그는 웃고 있지 않았다. 웃기려고 하는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는 단지 아무런 꾸밈 없는 본연의 그였다. 가면 하나를 벗기면 또 하나의 가면이 있고 그리고 또 가면, 또 하나 더 - 그 아래 어둡고 아픈 곳 - 그 자신도 나도 이해 못 하는 그의 삶이 있었다." (175쪽)
"내가 태어나던 날 세상은 기쁨이 충만한 작은 장소가 되었다. 나의 어머니가 비명을 질렀고, 나의 아버지가 비명을 질렀다." (183쪽)
"내 몸에서 빛이 나거나 아니면 내 머리 뒤에 천사 같은 후광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야 완성의 신비를 맛볼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것은 아무 데도 없었다. 나는 단지 평범한 아기였을 뿐이다. 물론 다른 점이 있다면 나는 그의 아들이었고, 그래서 나는 특별한 아기였다." (185쪽)
"그렇게 내 얼굴을 들여다볼 때면 아버지에게 나는 이 세상에서 제일 똑똑한 아기였고 끝없는 잠재력을 가진 존재였다. 이 세상에서 내가 못 할 일은 하나도 없었다." (185쪽)


출처: 다니엘 월러스 저, 장영희 역, <큰 물고기>, 동아시아, 2004





*좋아요와 덧글, 공유는 글쓴이에게 많은 힘이 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모든 면에서 가장 인간적인 '재난 영화'의 모범 사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