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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Sep 02. 2024

으쓱으쓱 어피치 님이 나갔습니다.

오픈채팅방의 사소한 가벼움

비슷한 직무나 업종 종사자들끼리 잡담이나 이따금 업무 이야기 등을 나누는 (주로 익명의)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이 여러 업계마다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내가 있는 업계 채팅방도 그중 하나인데, 처음 들어갔을 때는 200명 정도 인원이 있었는데 점점 유입이 많아지더니 한두 해가 지나고는 1,500명 정원이 가득 차 버렸고 나중에는 일반방(업무 이야기와 그 외 잡담도 허용)과 정보방(업무 관련 이야기 외 잡담은 금지)으로 나뉘었다. 방장님의 수완 덕분인지 입소문처럼 서로서로 공유가 되어서인지 몰라도 그 외에도 대화 주제를 특화해 '연애방'이나 '맛집방' 등 파생된 여러 하위 채팅방들도 생겼다. 업계인들의 채팅방인 만큼 명함과 이메일 인증을 거치는 실명방도 따로 있고, 최근에는 실험적으로 정치 관련 주제도 허용하는 '멀티버스방'도 개설됐다. 불특정 다수의 익명 사용자들이 있으니 사용자 간 분쟁이나 기타 불미스러운 일들도 생길 수 있는 만큼 공지를 통해 여러 운영에 관한 정책들도 마련하고 있고 과거의 경험들이 누적되어 이제는 사용자 간에도 서로 자정 노력을 많이 하고 있다.


회사에서 카카오톡 PC 버전을 이용 가능한 덕분에 업무 관련 화두가 자주 오가는 채팅방에 눈길을 자주 기울일 수 있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내 대화 참여도 많아졌다. 그러다 보니 이 '그룹 채팅방(여기서는 내가 속해 있는 채팅방 전체를 아우르는 의미로 이 표현을 쓰겠다)'들의 운영에 대해 같이 논하는 스태프들 중의 한 명이 되었고 상술한 '연애방'과 '맛집방'의 부방장을 맡고 있다. 방장님은 "앨리(닉네임)님 마음대로 하세요"라며 내게 거의 전권을 일임했다. 공지 설정이나 사용자 내보내기 등 일정한 권한을 가진 위치에 있게 되다 보니 사소한 발언에도 조심하려 하고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수긍하며 이용할 수 있도록 수시로 방의 규칙에 빠진 부분이나 개선점이 없을지도 자주 생각한다.




오픈채팅이 이름처럼 '오픈'된 '채팅'이다 보니 사용자, 특히 새로 들어오는 이들이 어떤 사람들인지와 구성원들이 어떤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는지 등에 따라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다. 공지사항을 제대로 안 읽는 경우는 다반사이고 노골적으로 방의 정책에 어긋나는 (정치 주제 등)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꺼내거나 채팅방을 자신의 특정한 홍보 목적으로 이용하려 한다든지, 방 주제와 맞지 않는 발언에 대한 여러 사람들의 질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방의 운영 정책을 탓하며 운영진을 찾는다든지 하는, 일일이 나열하기도 어려울 만큼 '군상'을 접하게 된다. 사람이 많아지면 자연히 이상한 사람도 생기기 마련이지만 이건 특별히 요즘만의 현상은 아닌 것 같다. 그러나 소셜미디어나 커뮤니티와 같은 온라인 공간에서의 언행을 주로 익명성에 기대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이들이 늘어나는 듯 여겨지고 이는 비단 세대의 문제 같은 시대적 화두가 아니라 단지 사용자 개인의 태도에 기인한 일일 것이다. 결국은, 후술할 문제로 얼마나 '나와 다른 사람들에 대한 이해와 존중의 노력을 기울이는가' 하는 점이 중요한 요소가 된다. 익명의 채팅방이 모든 사람들에게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는 없고 채팅방의 이용에 어떤 강제성을 두기는 어려우니 어쩌면 넓은 의미로 메신저나 소셜미디어가 갖는 태생적인 한계인 것인지도 모르겠다.


연애방에서는 예를 들면 소개팅 진행 과정에서의 소위 '연락 타이밍' 등 갖가지 가벼운 생각거리라든지 연인과의 다툼 같은 일종의 '고민상담'도 제기되고 사소하게는 이성을 만나는 방법, 맛집 등 장소 추천, 그 외에 넓은 의미로 카톡 '읽씹'과 '안읽씹'에 대한 이야기까지 제법 다양한 주제가 등장한다. 대화에 자주 활발하게 참여하는 사람도 있고 주로 눈팅을 하는 사람도 있는 등 저마다의 특성이나 패턴 같은 것도 보인다. 이 채팅방이 있은 지 2년 가까이 되다 보니 보이지 않는 정 같은 것도 있다. 같은 업무 종사자가 다수이다 보니 미팅 등으로 자연스럽게 안면을 트게 된 경우도 있고 채팅방 차원에서 '정모' 등 오프라인 모임을 하지 않지만 일부 사람들과는 비교적 친분이 생겼다. 그럼에도 일정한 선 같은 것은 있어서 이곳에서 나는 어디까지나 '김동진'이 아니라 '앨리(ALLY)'다. 잡담이 많은 방인 만큼 가장 경계하는 건 특정 소수 간의 친목화다.




업무정보방 등 그룹 채팅방 내 다른 방들과 달리 (파생방이라 부르는) 이곳은 외부 검색에도 오픈이 되어 있다 보니 어떤 사람이 들어올지 더욱 가늠하기 어렵다. 온라인게임의 길드 활동도 오래 했고 지금도 개인 인스타그램 계정을 오랫동안 유지하고 있어 나름대로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을 비-오프라인에서 많이 접해봤다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다 안다고는 할 수 없다. 모르는 사람들. 한편으로 서로 모르기에 오히려 잘 유지되는 면도 있겠지만 경계를 넘어 더 알려고 노력하지 않는 한 그로부터의 어떤 한계점도 동시에 내포한다. 적어도 대화를 오래 나눠보기 전까지는 우리는 서로를 모르고 저마다 닉네임 뒤에 숨은 각자의 '나'들일 뿐이니까. 그런 사람들이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자유롭게 대화하는 공간에 있으니 나 또한 참여자의 한 사람으로 그렇게 있으면 되는데, 스태프의 한 사람으로 있다 보니 쉽지 않다. 특히 최근에는 조금 다른 생각을, 실은 오래전부터 느껴왔지만 다시 한번 하게 됐다. '사람들이 오픈채팅 같은 것에 특별히 의미를 두거나 그리 진정으로 임하고 있지는 않는구나' 하는 것을.


이미 그룹 채팅방 내에 속해 있는 우리 업계 종사자들 외에 연애방에 외부에서 유입되어 새로 들어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연애' 등의 키워드를 검색해서 입장한다. 입장 환영 및 공지 안내 기능을 하는 오픈채팅봇의 설정된 멘트 뒤에 따라오는 그들의 "안녕하세요" 뒤에는 일정한 이야기가 따라온다. 저마다 고민이 있다. 갖가지 사연을 들으면 안타깝기도 하고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거기에 저마다의 생각이나 코멘트를 들려주고 또 진심으로 시간을 들여 고민을 함께해 주는 이들도 적지 않다. 어느 정도 이야기가 진전되고 나면 대체로 그 마무리는 이것이다.


<으쓱으쓱 어피치 님이 나갔습니다.>


그럴 수 있지. 나갈 수 있지. 들어올 땐 마음대로지만 나갈 땐 아닙니다 라고 규칙 정해놓은 것도 아니니까. '사정이 있으신가 보다' 하고 넘기기에는 위와 같은 패턴이 꽤 자주 반복된다. 피자 먹다 자는 무지 님이 나갔습니다. 돈다발 들고 좋아하는 무지 님이 나갔습니다. 베개를 부비적대는 라이언 님도 나갔습니다. 소심한 네오 님도, 신나는 프로도 님도, 아이스크림 든 네오도, 엄지척 제이지 들도. 각종 카카오프렌즈 들이 계속해서 들어왔습니다. 계속해서 나갔습니다.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은 닉네임/오픈프로필 설정을 따로하지 않으면 이렇게 카카오프렌즈 캐릭터로 무작위 대화명이 만들어진다.

여기서 걸리는 점은 마치 제 이야기처럼 고민을 함께 들어주고 진지하게 자기 생각을 전해준 사람들의 정성과 그에 담긴 시간이다. 한 사람은 단지 채팅방을 퇴장하면 그만이지만, '채팅'방은 문자 언어로 기록이 남는 공간이기만 한 게 아니라 거기 참여한 이들의 유무형의 흔적이 깃든 곳이다. 기존 사용자들이야 종종 해외여행 중 스마트폰 배터리 관련 등 사유로 들락거리기도 하지만, 새로 들어온 사람이 자기 이야기만 꺼내고 나가면 채팅방 내 사람들의 일종의 허탈함 섞인 반응들이 하나 둘 나오기 시작한다. 이런 현상이 반복되자 어느새 새로 입장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다른 몇몇 사람들의 이런 언급이 따르게 되었다. "혹시나 채팅방 나가실 땐 미리 인사라도 한마디 해주세요~" 예의를 떠나 인사 한마디 하는 게 손해 볼 일도 아니고 사람 사이의 대화인데 최소한의 맺음이라도 있어야 하는 게 아닐는지. 어떤 사람은 (이야기가 끝난 뒤) 거기에 "네~" 한마디 하고 나가기도 하고, 그 외 많은 사람들은 그러거나 말거나 필요한 조언 등을 얻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나간다.


'당부의 말씀'이라는 제목으로 그 뒤 새로운 공지를 썼다. 그 일부는 다음과 같다. "이곳은 내 감정을 배설하기 위한 공간도, 필요할 때에만 찾는 공간도 아닙니다. 필요한 정보가 있거나 해결하고 싶은 고민이 있을 때에만 채팅방을 찾는 사람을 저희는 원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도움을 얻었다면 최소한의 인사와 감사 표시를 해주세요. 이곳에 있는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살며 사랑하며 매 순간 고민하고 노력하는 사람들임을 헤아려주세요."


새로 오는 이들에게 한 명 한 명 놓치지 않고 인사와 함께 간단한 규칙을 안내하고 공지사항을 꼭 읽어달라고 안내하지만, 그들이 공지를 얼마나 제대로 읽는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고 상당수 인원은 가볍게 쓱 훑고 내릴 것이다. 위 공지 이후에도 현상은 달라지지 않았다. 여러 어피치와 네오와 라이언과 무지 들이 들어왔다가 나갔다. 기존 사용자들의 의견도 살피고 방장님의 승인도 얻어 규칙을 하나 더 추가했다.


"고민상담이나 조언 요청 등은 입장 후 하루(24시간)가 지난 뒤에 해주세요."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운영자 관점에서의 첫 번째는 얼마나 규칙과 공지를 잘 숙지하고 따르는 사람인지 가늠하는 것. 사용자 관점에서의 두 번째는 일종의 쿨다운을 두는 것이다. 대개 방에서 나오는 고민들이 혼자 차분히 생각을 정리해보다 보면 해결책이 나오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생각보다 간단한 것인 경우가 많고 경우에 따라서는 이미 소위 '답정너'인 상태로 이야기를 꺼내는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



이 소위 '24시간 룰'을 추가하고 나니 신기한(혹은 어느 정도 예상했던) 현상이 나타났다. 새로 들어온 사람들은 무슨무슨 고민이 있어서 들어왔다고 채팅을 쓰다가 위 공지를 이야기하면 "네?" 하거나 "아 네..." 하거나 "좀 급한데 안 될까요" 하거나 "그렇군요", "..." 등의 반응 뒤에 아무튼 나갔다. 나름대로 시급한 고민거리도 있을 수 있는데 규칙이 너무 팍팍한가 싶었지만 예전에 잠시 들어가 있었던 (본 글에서 언급하는 채팅방들과 무관한) 팝송 추천방에서 보던 풍경이 떠올라 규칙을 바꾸지 않았다. 방에 들어오자마자 음성 녹음으로 매장에서 나오는 노래나 혹은 자신의 허밍 등을 담아 "이 노래 뭔지 좀 찾아주세요"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는데, 그들은 예외 없이 "급해요" "빨리요" 등을 외치더니 오래지 않아 나갔다. 그 채팅방에도 "팝송 질문은 30분 뒤에 해주세요"라는 규칙이 생겼다.


연애방에서도 아직까지는 "어차피 나갈 사람이 나갔네요"라며 위 '24시간 룰'을 잘 만들었다는 반응이다. 시간이 좀 더 지나거나 혹은 다른 종류의 사람들을 접하게 된다면 혹시라도 규칙이 바뀔지도 모르겠지만 아직은 아니다. 만약 채팅방의 운영 목적이 사람들의 유입을 늘리고 방을 더 활성화하는 데에 주안점을 둔다면 이건 적합하지 않은 규칙이다. 그렇지만 그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같이 대화하는 사람들의 시간과 마음이다. 이 채팅방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 또 여기 있는 사람들과 앞으로는 어떠한 느슨한 관계를 맺게 될지 그런 건 알 수 없고 굳이 알려고 하지 않지만 오늘도 거창한 의미로 좀 더 나은 '사용자 경험'을 위해 스태프의 한 사람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생각은 계속된다. 다만 채팅방에서의 사소한 발언 하나도 결국 '나'의 어떤 태도나 성격, 혹은 품격을 드러내는 경로 중의 하나라고 조금 더 무게를 두어 생각해 보면서.


"그냥 스쳐 지나가는 사람 하나하나에 대한 내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쌓여서 그 사람과 나의 기분 좋은 하루를 이루는 것 아닐까요."

-이동진, 『밤은 책이다』에서, 위즈덤하우스, 2011, 2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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