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경, 『사람풍경』(예담, 2006)을 읽고(사람풍경에서 2012년 재출간된 책으로 읽었다) - 트레바리 [씀에세이-노트](2024.09)
글쓴이의 서술을 따라가면서 그것을 그대로 수용하는 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독자 자신의 감정을 생각해보게 하고, 분노, 우울, 질투 등과 같은 다양한 종류의 감정들에 대해 특정한 이론적 입장을 토대로 긴 호흡의 글로 표현했다는 점에서는 읽을 만한 책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정신분석에 대한 프로이트와 융의 관점을 지나치게 끌어들여 여행 중 스쳐간 사람들에 대해 단편적인 언행이나 에피소드를 가지고 과도하게 그 삶을 재단하려 하는 서술이 책 전체에 걸쳐 깔려 있어 상당수 서술에 대해 동의할 수 없을뿐더러 불편감을 주는 부분들도 적지 않았다. 예를 들어 "대중을 유혹하는 재능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공통점이 있는 것 같다. 그들이 대체로 불우한 유아기를 보냈다는 점이다."(231쪽)와 같은 문장들.
문장이 어렵지 않지만 읽다가 막히거나 걸리는 부분들이 많았다. 예를 들면 이 대목처럼.
거의 모든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을 '유아기의 결핍', '불우한 가정환경' 같은 키워드로만 분석하면서 그들의 유년기나 가족관계, 인간관계 등에 대해 잠시 스쳐가는 대화나 짧은 기간 동안의 동행을 토대로 추론하는 과정은 저자 본인이 비전공자이자 비전문가임을 전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한계를 내보인다. 타인의 말과 행동에 대해 그것을 묘사하거나 혹은 스스로의 생각을 표현하는 정도를 넘어서 전문의도 신중해야 할 정신분석의 영역으로 타인의 성격과 삶 전체를 재단하는 대목이 출간 당시에는 달리 읽혔을 수 있으나 이 책에 대해 2024년에도 "문학적 향기가 나는 정신분석서"와 같은 단평을 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지 않을는지. 분야는 다를지라도 올리버 색스의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알마, 2016) 등과 같은 좋은 선례들이 있다.
『사람풍경』을 읽으며 분야는 판이하게 다르지만 형식과 장르적인 측면 그리고 책 전반에 대한 감상의 측면에서 룰루 밀러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곰출판, 2021)를 떠올리기도 했다. 저자의 경험을 '어류'라는 계통 분류에 대해 지나치게 확장해서 적용한 결과 다소 치밀하지 못한 비약에 이르렀다는 인상을 받았던 바 있다. 『사람풍경』 역시 감정을 먼저 분류하고 (예: Chapter 1 - 무의식, 사랑, 대상, 분노, 우울, ... , Chapter 2 - 의존, 중독, 질투, 시기심, ... ) 여행기를 거기에 접목한 책의 구성을 미루어 볼 때 저자가 매료된 정신분석 자체가 먼저이고 거기에 여행지에서의 소회를 도식적 내지 자의적으로 적용한 것이 아닐는지 생각하게 된다.
'변화 - 세상을 보는 시각과 삶의 방식 수정하기' 중에서
그럼에도 저자 본인의 심리에 대한 서술은 소설가의 문장답다고 여겨지는 대목도 있었고, "끊임없이 욕망하는 이기적이고 불완전한 존재"(337쪽)라는 인간에 대한 자조와 "생이란 그 모든 정신의 부조화와 갈등을 끊임없이 조절해 나가는 과정"(338쪽)임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수긍되는 면도 있었다. 사소하게는 요즘 산문집과 에세이의 경향성에 비해 훨씬 긴 호흡의 글들로 이루어진 책이라는 점은 마음에 들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의 감정을 긴 호흡의 문자언어로 풀이해 가는 과정은 그 자체로 어떤 글쓰기의 가치 내지 글이 갖는 힘과도 맞닿는 면이 있을 것이기도 하겠다. (2024.09.05.)
트레바리 [씀에세이-노트](2024.09) 모임에서 이 책에 대해 함께 이야기했다.
참고: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후기를 기록(2022.03.05.)한 적 있다.
"(...) 그러나 ‘어류’라는 분류에 관해서 제기되는 책 후반부의 서술은 일면 주제의 비약 혹은 저자의 사적인 의미 부여로 다가오는 측면도 적지 않다. 우리가 알고 믿어온 것이 불변의 진리이기만 할 수는 없다는 점에서 시사점을 제시하지만, “어류가 조류나 포유류 등과 달리 하나의 분기군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고 측계통군으로 이루어져 있다”라는 점이 사람의 직관을 틀린 것 혹은 단지 편의를 위한 것으로 전부 취급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분량의 한계를 고려하더라도 비약이 있다. “과학은 늘 내가 생각해왔던 것처럼 진실을 비춰주는 횃불이 아니라, 도중에 파괴도 많이 일으킬 수 있는 무딘 도구라는 것을 깨닫는”(267쪽) 과정이 비교적 충실하게 짜인 것과 달리 오히려 이론적 치밀함에는 이르지 못하는 듯 읽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