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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Nov 12. 2024

한걸음 떨어져 지켜보게 만드는 태교 소동극

영화 '딜리버리'(2024) 리뷰

가벼운 코미디와 한바탕 헛소동을 기대하고 갔다가, 그 이상의 이야기를 만나고 왔다. 부산국제영화제와 무주산골영화제 등에서의 공개를 거쳐 오는 20일 극장 개봉을 앞둔 영화 <딜리버리>(2024) 이야기다. 제목인 '딜리버리'는 배달, 배송을 뜻하는 동시에 분만을 뜻하기도 한다.


영화 '딜리버리' 스틸컷


<딜리버리>의 인물관계는 간명하다. 넉넉하지 않은 환경에서 계획하지 않았던 임신을 하게 된 미자(권소현)와 달수(강태우) 부부가 있다. 임신 중절을 위해 산부인과를 찾은 두 사람은 산부인과 의사 귀남(김영민)에게서 수술을 받는데 얼마 뒤 수술이 잘 되지 않았음(즉, 태아가 살아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수술이 잘못된 것일까. 다시 병원을 찾은 미자와 달수에게 귀남과 우희(권소현) 부부는 아이를 그대로 키워서 낳을 것을 '제안'한다. 즉 미자가 순산해서 그 아이를 자신들에게 전해 달라는 것. 마침 귀남과 우희 부부는 불임으로 아이를 가지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는데, 우희의 아버지 태식(동방우)이 자기 재산을 상속받기 위해서는 아이를 낳아야 했기 때문이다.



일차적으로 <딜리버리>를 보며 생각하게 되는 점은 아이를 낳는 것이 어떤 환경에서 이루어져야 바람직한가 하는 것이다. 미자-달수 부부와 달리 귀남-우희 부부는 평창동의 고급 주택가에 살며 귀남은 산부인과 의사, 우희는 소셜미디어 인플루언서로 활동하고 있다. 그렇다면 반드시 재정적으로 넉넉한 곳에서 태어난 아이가 더 행복할까? 모든 일이 그렇듯 이 또한 그렇게 단순하게 선을 그을 수 있는 문제는 아니겠다.


다음으로 그 연장선에서 새겨봐야 할 것은 부모의 자질에 대한 것이다. 물론 세상 일이 사랑만으로 다 풀릴 수는 없겠으나, 미자-달수 부부와 귀남-우희 부부 중 누가 더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 한쪽은 원치 않던 임신을 중단시키지 못하고 금전적 목적을 위해 일종의 계약 관계에 따라 귀남-우희가 마련해 준 아파트에서 지내며 뱃속의 아이를 키우게 된다. 다른 한쪽은 비뇨기과 등을 전전하다 입양 등을 고민한 끝에 우연한 계기로 미자의 아이를 넘겨받기로 하며 그동안 임신한 행세를 한다.


영화 '딜리버리' 스틸컷


즉 <딜리버리>의 이야기는 거짓과 거짓으로 점철된 하나의 사건으로 시작되었다. 출발부터 이 이야기는 어떤 인물의 됨됨이에 대해 가치판단을 내리기 위한 목적보다는 그저 그 군상 자체를 조명하는 데 목적이 있음을 내비친다. 이건 국내외의 수많은 희극적, 풍자적 영화들이 그러한 것과 마찬가지다. (어떤 인물이 도덕적으로 좋은 사람인지 아닌지는 그 영화의 장르적 완성도 내지 성취와 별다른 관련이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관객들은 <딜리버리>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서두에 쓴 바와 같은 한바탕 소동극을 기대한다면 곳곳에서 예상과는 어긋나는, 어쩌면 기대한 바와 다른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홍보용 장르로는 '살벌한 공동 태교 코미디'라는 워딩을 사용하고 있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유쾌한 기분만 전달되기보다는 한편으로 어떤 무게감 내지 여운을 안고 극장을 나서게 될 수 있다는 것.


그렇다고 해서 <딜리버리>가 포장과는 다른 이상한 내용물을 '배송'하는가 하면 그리 단정하기는 어렵다. 특정한 장르의 결을 반드시 따를 필요는 없다는 점에서도 그렇고, 출산과 육아라는 소재 자체를 가벼운 방식과 톤으로만 다룰 수는 없기 때문일 것이다. 미자-달수 부부의 서사와 귀남-우희 부부의 서사는 아슬아슬한 동거를 이어가다 후반부 어떤 지점에 이르러 마침내 돌이킬 수 없는 충돌 내지 반환점을 맞게 된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이 이야기는 특정한 인물에 이입해 도덕적 판단을 내리기보다는 그저 한 걸음 멀리 떨어져 상황을 지켜보게 만드는 데 연출 주안점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아이를 갖게 되었을 때, 그 아이를 넘겨달라는 제안을 받게 되었을 때, 그리고 아이를 낳게 될 때. 매 순간 영화 속 인물들은 그리고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 것인가 돌아보게 된다.


아마도 의도적으로 <딜리버리>는 영화 곳곳에서 점프를 거듭한다. 어떤 장면에서는 인물의 특정한 선택을 선뜻 수긍하기 어렵거나 그 이면의 사연에 대해 궁금증을 갖게 된다. 인물의 자연한 동기라기보다 영화가 의도한 설정에 따라 전개되는 서사 가운데서도, 생생한 배우들의 생활 연기와 명확한 갈등 구조에 힘입어 <딜리버리>는 뒷맛을 남기며 막을 내린다. 이제 좋은 이야기가 으레 그러한 것처럼, '나'라면 어떤 입장이 될지 생각해 볼 차례다.


영화 '딜리버리' 메인포스터


-11월 20일 개봉, 101분, 15세 이상 관람가

-제작: 한국영화아카데미(KAFA)

-배급: 마노엔터테인먼트


*영화사로부터 시사회에 초청받아 관람 후 주관적으로 리뷰를 작성하였습니다. (11/11(월) CGV 용산아이파크몰)


https://www.youtube.com/watch?v=G2SmIMASNmc


*인스타그램: @cosmos__j

*모임/강의 등 공지사항: linktr.ee/cosmos__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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