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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Nov 12. 2016

영화가, 이야기가, 사람에게 영향을 주는 방식

<킹스 스피치>(2010), 톰 후퍼

어떤 영화가 얼마나 재미있거나 감동적이거나 영감을 주는지, 어떤 장단점을 지니고 나아가 영화사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아무리 이야기 해도 따라올 수 없는 것이 하나 있다. 나에게 얼마나 영향을 준 영화인지, 혹은 얼마나 나를 변화시킨 영화인지에 관한 이야기가 그것이다. '조지 6세'(콜린 퍼스)처럼 말더듬이는 아니었지만 나는 본래 다른 사람의 앞에서 말을 하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대학에 와서도 반드시 해야만 하는 발표 자리를 앞두고는 한동안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고, 얼마나 안절부절 하였는지 말로 다 표현하기 부족할 정도다. '나는 원래 이런 천성을 타고난 사람이구나'라는 일종의 체념을 하던 중에 접한 <킹스 스피치>(2010)는 내게 "사람은 변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영화라는 콘텐츠가 사람에게 가져다줄 수 있는 힘. 구구절절 이야기를 늘어놓자면 무수히 길어지지만 적어도 나는 사람들 앞에 서는 것,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물론 많은 사람들 앞에 나를 보인다는 것은 언제나 떨리는 일이다. 그리고 여전히, 어떤 부류의 사람들과도 말을 자연스레 섞고 금세 친해지는, 그런 사람과 나는 조금 거리가 있다. 그러나 일단 부담이 없다는 것. 오히려 기다려지기도 한다는 것. 그것만으로 지금의 나는 이전의 나와 확실히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내가 본 영화에 대해, 사람들이 본 영화에 대해, 사람들과 함께 본 영화에 대해 언제 어디서든 이야기하는 것이 두근거리고 기대되는 것은 그래서다. 사람을 행동하게 하고, 생각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 결국 이야기가 지니고 있는 가장 소중한 가치이자 힘이다.


익숙하고 평범한 개과천선식의 얼개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킹스 스피치>는 콜린 퍼스와 제프리 러쉬라는 배우의 힘을 분명히 실감하게 해준다. 특별히 빼어나지는 않더라고 모든 면에서 부드럽되 긴장감을 주기도 한다. 잔잔한 것도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흔한 것도 흔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보여준다. '라이오넬'(제프리 러쉬)로 인해 잠재된 용기를 끌어낸 '버티'(조지 6세)는 그의 느리지만 힘 있는 연설로 영국 국민들에게 희망을 줬고, 마침내 그들을 대변하는 진정한 왕이 되었다. (비록 실재로는 소수의 직계 왕족을 제외하면 국왕의 이름을 함부로 부를 수 없었지만, 이야기로서 영화의 완성을 위해서 충분히 용인해 줄 수 있는 부분이라 본다.) 자신의 잠재력을 알아보는 사람, 그것을 끌어내도록 영향을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우리의 삶에서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일인가. 그러나 '조지 6세'는 스스로의 그늘에 외롭게 갇혀 마음의 진정을 얻지 못했던 과거를 떠올리며, 전쟁으로 불안에 떠는 국민들에게 "Keep Calm and Carry On"이라는 메시지를 전할 수 있었다.



그 유명한 "Keep Calm and Carry On" 만큼이나 반드시 언급하고 싶은 이야기가 하나 더 있다. <킹스 스피치>의 각본을 쓴 '데이빗 세들러' 역시 어릴 적 말을 더듬는 사람이었다. 그는 실제로 제2차 세계대전 중 조지 6세의 연설을 들으며 자랐고 그에게서 용기를 얻었다. <킹스 스피치>로 그는, (이듬해 <미드나잇 인 파리>(2011)의 우디 앨런(당시 76세)에 의해 기록이 바로 바뀌었으나) 당시 74세의 나이로 아카데미 각본상을 수상한 최고령의 인물이 되었다.


그가 연습했던 방식처럼 자기 앞의 마이크를 부숴버리겠다는 각오로, 노래 부르는 듯한 느낌으로 물 흐르듯 말을 해보자. 본래 말주변이 없던 내게 '라이오넬'과 '버티'의 이야기는 그리하여 실제로 영향을 줬다. 국내외에서는 미국 아카데미 12개 부문 노미네이트(4개 부문 수상)가 다소 과하다고 회자되기도 했으나 나에겐 고맙고 각별한 영화다. (물론 같은 해 경쟁한 데이빗 핀처의 <소셜 네트워크> 역시 완벽에 가까운 뛰어난 영화다.)



인생을 살면서 쌓여가는 나의 경험치에,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어떠한 작용을 일으켰을 때 일어날 수 있는 일생의 변화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생의 최고의 멘토는 격의 없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동반자, 친구라는 것을 <킹스 스피치>는 남긴다. (헬레나 본햄 카터의 정상적인(?) 연기를 볼 수 있다는 것도 나름의 포인트!) (★ 8/10점.)


<킹스 스피치(King's Speech, 2010)>, 톰 후퍼

2011년 3월 17일 (국내) 개봉, 118분, 12세 관람가.


출연: 콜린 퍼스, 제프리 러쉬, 헬레나 본햄 카터, 가이 피어스, 티모시 스폴, 제니퍼 엘 등.


수입: (주)영화사그랑프리

배급: (주)화앤담이엔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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