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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Nov 14. 2016

우리가 보지 못하는 차원의 사랑에 관해

<인터스텔라>(2014), 크리스토퍼 놀란

[이하 결말에 대한 상세한 스포일러가 있습니.]


1. 어떻게 끝난 것인가?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터스텔라>(2014)의 결말은, '멘붕'을 일으키거나 논란을 야기할 만큼의 복잡한 결말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 장대한 상영 시간과 스케일만큼이나, 생각하고 정리하기에 간단한 것만은 아닐 것이다. 브랜드 박사(마이클 케인)가 중력 방정식을 이미 40년 전에 풀어놓고도 일부러 쓰지 않은 것은, 그게 반쪽 짜리 해답에 불과했고 나머지 절반은 블랙홀을 직접 살펴봐야만 알 수 있는 데이터(영화 속에서 진주, 그리고 특이점(Singularity)이라고 표현된 것)들이 더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빛조차 빨아들이는 블랙홀을 직접 가볼 수 없기에 그는 결국 해답을 찾지 못했다. 좀 더 엄밀하게는 포기했다고 할 수 있다. 게티(토퍼 그레이스)에게 "박사님은 포기했지만 난 답을 찾을거야"라고 말하는 머피의 말에서 알 수 있다. 하지만 쿠퍼(매튜 맥커너히)와 타스가 결과적으로 블랙홀 안에 들어갔기에 (좀 더 엄밀하게는, 타스만 실질적으로 블랙홀의 깊숙한 곳까지 들어갔고 쿠퍼는 그렇지 않다) 타스는 그 필요한 데이터를 얻을 수 있었고, 또한 이진법으로 변환했으며 쿠퍼가 머피(제시카 차스테인)에게 어릴 때 남겨준 시계의 초침을 이용해 점과 선의 데이터로 전달할 수 있었다.


머피는 어릴 때 책장에서 봤던 유령이 아빠였다는 것을 깨달았음은 물론, 브랜드 박사가 풀지 못한 반쪽짜리 해답도 찾아낼 수 있었다. 쿠퍼가 구조돼 깨어난 곳은 토성 궤도를 돌고 있는, 딸의 이름을 딴 '쿠퍼 스테이션'이었고(쿠퍼가 깨어난 곳은 에드먼즈 행성이 아니다), 쿠퍼와 타스가 바벨의 도서관을 연상케 하는 그 블랙홀 안에서 이야기했던, '지금의 인류가 만들 수 없고 우리가 아는 4차원을 넘어 (5차원까지) 진화한 문명'은 그렇게 구현돼 있었다. (정확히 5차원의 문명이라고 할 수는 없다. 여전히 3차원의 문명이되 인공중력(아이작 아시모프의 작품에도 나오는)을 통해 유지되는 스테이션을 만든 것이라고. 다만 나는 쿠퍼와 타스의 대화를 미뤄볼 때 미래의 그들(즉 자신)은 지금의 3차원 문명이 만들지 못하는 것을 만들어냈기 때문에, 결국 3차원을 뛰어넘는 문명이 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야구장에서 배트에 맞은 공이 위로 향해 반대편의 창문을 깨버리는 것에서 3차원을 뛰어넘었음을 알 수 있고, 농경지의 모습에서 지구의 식량 문제를 지구 밖에서 해결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여기서는 <엘리시움>의 한 장면이 떠오르기도 한다.) 쿠퍼가 블랙홀 안에서 떠도는 그 짧은 시간도 지구에서는 수십 년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물론 산소가 얼마 남지 않은 상태에서 구조된 것은 (사랑의 힘이라 하기에) 기적에 가까운 일이라 할 수 있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에드먼즈 행성에 식민지를 건설한 것으로 보이는 아멜리아(앤 해서웨이)가 나온다. "아마도 지금은 인류의 새로운 터전에서 새로운 태양의 빛을 받으면서 긴 잠을 잘 준비를 하고 있겠죠"라는 늙은 머피(엘런 버스타인)의 말처럼, 브랜드는 그곳에서 (아마도 쿠퍼가 돌아오길 기다리며) 동면을 시작할 준비를 하고 있었을 테다. 그리고 머피의 이야기를 들은 쿠퍼는 다시 우주선을 타고 브랜드를 찾아 나선다. 그것으로 이야기는 끝난다.


2. 가족이냐 인류냐


이 영화에서 마지막까지 생존한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은 다소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다. 바로 가족에 대한 사랑을 중시하고 희망, 개척정신을 품고 있던 이들과, 인류를 위한다는 막연한 대의 혹은 개인의 영달과 생존을 우선시했거나 희망이라는 것이 없었던 이들로 말이다.


전자는 물론 쿠퍼와 머피, 아멜리아로 볼 수 있고, 후자에 해당하거나 후자 쪽에 좀 더 가까운 건 나머지 사람들이다. 도일(웨스 벤틀리), 브랜드(마이클 케인), 로밀리(데이빗 기아시), 만 박사(맷 데이먼)가 그렇다. 도일은 임무를 완수하겠다는 사명감이 뛰어나긴 했지만 쿠퍼에게 가족보다는 인류를 우선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즉, 가족을 포기하라고 말이다. 브랜드 박사는 쿠퍼에게 자식을 위해 우주로 가라고 말했지만 애초부터 플랜 A에 대해서는 가능성을 생각하지 않았고 그저 대의를 위해서 형식적으로 만들었을 뿐, 처음부터 지구를 버리고 외부에 새로운 거주지를 만드는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딸에게 그걸 말하지 않았다. 로밀리는 얇은 알루미늄 벽 때문에 불안해했고 시종 멀미약을 찾았으며, 처음 밀러의 행성으로 쿠퍼와 아멜리아 일행이 나간 동안, 그들이 돌아올 거라고 믿지 않았다.


도일과 로밀리에 대해서는 이렇게 전자와 후자로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이 조금 애매할 수는 있다. 하지만 가장 흥미로운 것은 바로 만 박사다. 대원들이 우주로 떠나기 전, 만 박사는 나자로 미션을 수행하러 떠난 12인의 레인저 대원 중 가장 뛰어난 인물로 거론된다. 그 뒤로도 인물들의 대화를 통해 여러 차례 그가 언급되는데, 여기서도 나머지 11인을 설득한 위대한 인물로 다뤄진다. 영화에서는 초반에도 다른 나자로 미션 대원들의 얼굴 사진이 들어간 액자를 보여주다가 만 박사가 나올 때 장면을 전환해버린다. 이는 후반에 밝혀지는 만 박사의 실체와 대비되는 것으로서 관객에게 반전의 느낌을 더 크게 준다.


만 박사는 인듀어런스 호를 접수하면서 쿠퍼에게 "이건 자네와 내 목숨만을 위한 게 아니라 인류 전체를 위한 일이야"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에 앞서 자신이 찾은 행성이 인류가 거주할 수 없는 행성이라는 점을 밝히고서는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서는 인듀어런스 호가 꼭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입으로는 인류를 위한 대의를 이야기하지만 그저 살아서 지구로 돌아가고 싶어서 다른 대원들을 져버렸을 뿐이다. 또한 이미 자신은 죽음을 겪은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한다. 쿠퍼를 죽음으로 몰고 갈 뻔했지만 그걸 지켜보지 못했고, (자신의 말처럼) 죽음을 간접적으로 이미 겪어봤음에도, 결국 만 박사는 겁쟁이였다. "겁쟁이"라는 쿠퍼의 말에 "Yes, Yes, Yes, Yes"라고 네 번이나 말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우린 가족만 신경 쓰고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는 차갑게 무관심하다"는 만 박사의 말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3. 생존 본능과 사랑


그렇다. 생존 본능은 만 박사가 이야기했듯 가장 강력한 영감의 원천이다. 사랑처럼 말이다. 만 박사는 브랜드가 선발할 때부터 의도했듯 가족이 없다. 그래서 사랑이란 것을 모른다. 나자로 미션을 처음 수행할 당시에는 정말로 인류의 미래를 짊어졌다는 사명감으로 가득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혼자서 미션을 수행하다 보니 너무나 외롭고 고독하다. 함께 하던 로봇마저 파워 소스를 위해 해체해버리면서 완전히 우주에 남겨진 미아 같은 존재가 됐다. 게다가 자신이 찾은 행성도 인류가 거주하기에 부적합하다. 그때의 좌절감은 상당했을 것이다. 동면에 들어갈 때도 기한을 설정해놓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래서 쿠퍼가 처음 그를 깨웠을 때 그토록 눈물 흘리며 오열했던 것이다. 우주라는 공간은 크리스토퍼 놀란이 이야기했듯, 오히려 인간의 내면을 탐구하기에 안성맞춤인 공간일지 모른다.


4. 감성의 진폭


<인터스텔라>에서 감성을 자극하는 순간들은 주로 지구에 남겨진 자와 우주로 떠난 자 사이의 거리감과 당장 그들이 함께할 수 없다는 슬픔이 밀려오는 순간이다. 처음 밀러 행성을 다녀온 후 23년간 쌓인 메시지들을 쿠퍼가 보는데, 어린 톰이 하는 이야기는 학교에서 몇 등을 했고 무슨 수업을 들었고 여자친구가 어떻고 하는, 지극히 지구에서는 당연하게 보고 겪는 일상적인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그런 일상적인 순간조차 모니터로만 짧게나마 볼 수 있고 가족과 함께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슬픔, 그리고 어린 머피에게 상처를 줬다는 죄책감에 쿠퍼는 하염없이 오열한다.


영화는 물론 23년간 숱하게 쌓였을 메시지 전체를 다 보여주지는 않고 점프한다. 장성한 톰(케이시 애플렉)은 결혼을 했고, 첫 자녀인 제시를 얻었다가 잃는다.(먼지로 인해 폐가 급격히 악화되어서였을 것이다. 톰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적응해왔지만, 새로 태어난 세대는 그렇지 못하다.) 그리고 장인 도널드(존 리스고)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톰으로부터 확인한다. 여기서 또 한 번 쿠퍼의 슬픔이 이어지는데, 20년 넘게 지구로 소식을 전해오지 않는 아버지를, 시아버지를, 톰의 아내는 이제 그만 잊으라고 하고, "이제 그만 아버지를 놓아드려야 할까 봐요" 톰 역시 아버지의 부재를 점점 확인하고 체념하는 듯한 표정과 말투를 보인다.


슬픔은 멈추지 않는다. 어린 머피의 모습 대신 장성한 머피(제시카 차스테인)의 얼굴이 나온다. 떠나기 전 쿠퍼는 시계를 주며 "아빠가 돌아올 즘엔 너와 나이가 같아져 있을지도 몰라. 재밌지 않아?"라고 했다. 그런데 이제 머피가 정말로 아빠가 지구를 떠났을 때의 나이가 되었다. 자신이 어린 머피에게 했던 말을 당연히 기억하고 있을 쿠퍼는 오열할 수밖에 없다.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할만한 장면들은 이뿐만이 아니라 임종 직전의 머피와 '124세'의 쿠퍼의 마지막 대화 신을 비롯해 더 있다. 처음 머피와 쿠퍼가 헤어져야 하는 순간의 장면은 어떻고, 가족을 남겨두고 떠나면서 혹시나 머피가 차에 타있기를 바라며 담요를 들추는 장면은 또 어떤가. 이게 일반적인 드라마나 멜로 장르의 영화였다면 익숙했을 텐데, <인터스텔라> 같이 SF 장르로 규정할 수 있는 영화에서는 다소 낯설고 이질적으로 다가올 수 있는 점은 사실이다. 그간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다른 작품에서도 죽은 아내를 향한 그리움과 죄책감을 모두 안고 있는 코브처럼 사랑에 대한 얘기가 다뤄지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이번 작품처럼 사랑과 가족애가 전면에 드러난 것은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처음인 거나 마찬가지다. 과도한 신파로 볼 것이냐, 호소력 있는 감성적인 터치로 볼 것이냐는 취향에 맡기겠다.


5. 우리 조금 멀리 돌아왔지만


쿠퍼가 떠난 후 톰과 머피는 모두 상처를 받았다. 아버지가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것에, 아버지가 자신들을 버렸다는 것에. 톰은 "날 키워준 건 할아버지야. 엄마와 제시 곁에 묻혔고."라고 말하며 아버지의 존재를 부정하고 남은 가족에게만 신경 쓰지만, 머피는 아버지에 대한 원망은 남아있음에도 여전히 그가 남기고 간 숙제를 끝까지 풀려고 한다. 톰은 순종적으로 농부의 길을 걸었지만 머피는 어릴 때부터 모든 것에 호기심을 가져왔고, 쿠퍼 역시 그 호기심을 억누르지 않고 잘 발현시켜줬기 때문이다. 가족에 대한 사랑 역시 자신이 자란 환경이나 생각에 따라서 같은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결국 쿠퍼는 돌아오겠다는 딸과의 약속을 지키긴 했지만, 시간이 너무나 지나버렸다. 외모는 거의 변함없지만 자신은 124세 노인이 되었고, 딸 역시 자신이 떠난 동안 많은 가족을 거느린 채 죽음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노년의 머피(엘렌 버스틴)의 말처럼 부모가 자식의 죽음을 지켜볼 필요는 없다. 부모가 자식을 가슴에 묻는 것도 큰 상처이자 아픔이라 하지 않는가. 어쨌든 돌아왔다는 것이 중요하다. 답을 찾아서 말이다. 그리고 그 답은 사랑이었다. 쿠퍼를 살아돌아오게 한 유령 같은 존재인 '그들'은 바로 미래의 자신이었다. 지구로 돌아가 사랑하는 가족을 만나겠다는 일념 하나로.


6. 3차원과 5차원, 그리고 뉴턴의 제3법칙



"그들은 아무 곳에나 접속할 수 있지만 동시에 어디에도 묶여있지 않아서 3차원의 세상과 소통하지 못하는 거야" 쿠퍼와 타스가 블랙홀 속 책장에서 나누는 대화 중 일부다. 여기서 영화에서 계속 언급되는 '그들'이 과연 누구인지, 혹은 3차원과 5차원의 세계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연결된 것인지 영화를 보면서 궁금해지는 건 분명 사실이다. 하지만 쿠퍼의 대사에서 언급된다. "브랜드가 옳았어. 머피에 대한 나의 사랑, 그게 열쇠가 될 거야. 사랑이야, 타스. 아직도 모르겠어?" 여기서 3차원에 '시간'과 '중력'이 더해져 5차원이 되는 것일까. 적어도 영화 속의 장면과 대화들을 통해서는 그렇다고 볼 수 있다. 즉 5차원의 '그들'이 쿠퍼와 타스가 정보를 전달할 수 있게 3차원의 '큐브'를 만든 것이다.


쿠퍼와 타스의 대화를 통해 상당히 많은 정보가 제공된다. 당장의 인류는 자신들이 지금 들어와있는 큐브 같은 것을 못 만들지만, 4차원을 넘어선 인류는 해낼 거라고. 중력을 극복하고 그걸 조정할 수 있게 된다면 가능할 거라고 말이다. 여기서 과거로 돌아가거나 하는 다른 영화와 연관해 생각할 수 있는데, '만약 내가 과거로 돌아가서 누군가를 죽이거나 하게 되면 미래에 있는 그 사람의 자녀는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와 같은 문제다. <인터스텔라>에서도 시간의 개념을 생각하면 사실 너무 복잡하다. 쿠퍼의 말처럼 결국 머피에 대한 사랑의 힘이 모든 걸 해결한 열쇠이자 초자연적인 현상을 일으킨 원동력이 되었다고 대충 넘길 수도 있고, 미래의 인류가 웜홀과 블랙홀을 통해 지구인들이 답을 찾을 수 있도록 도움을 준 것으로도 볼 수 있는 것이다. 지구인들이 답을 못 찾으면 미래의 인류는 존재하지 않으니까.


다만 쿠퍼와 타스의 대화를 볼 때 바로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미래의 인류 자신이 쿠퍼가 아닌 머피를 선택한 것이고, 쿠퍼가 블랙홀에 들어왔을 때 시간과 중력을 초월한 그곳에서, 과거의 머피를 본 것이다. 큐브 속에서 쿠퍼가 보는 것은 머피의 방에 대한 모든 것들이다. 혼자서 책장의 '유령'을 보는 머피, 'STAY'라는 메시지를 찾는 머피, 아빠와 떨어지기 싫어 슬퍼하는 머피. 시공을 초월해 발전한 인류가 과거의 그들 자신에게 보낸 메시지. 중반부 웜홀을 통과할 때 아멜리아가 웜홀에서 나오는 빛(?)에 손을 뻗었을 때 만진 뭔가가 바로 쿠퍼의 손이었다는 점을 통해서 좀 더 이쪽에 무게를 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시공을 초월해 과거를 볼 수는 있었지만 소통은 할 수 없었던 것에서, 소통을 가능케 한 것은 바로 사랑. 그리고 데이터가 머피에게 전송되자, 대사에서 직접 언급되듯 큐브가 닫힌다.


머피는 그를 통해 브랜드가 찾지 못한 반쪽 자리 해답을 해결했고, 유레카를 외친다. 즉 브랜드가 성공하지 못할거라고 봤던 플랜A 역시 결국은 성공한다. 플랜B는 에드먼즈 행성에 도착한 아멜리아를 통해서 성공한다.

후반에 몇 차례 언급되는 '뉴턴의 제3법칙'은 운동의 작용과 반작용에 대한 것이다. 사실 이 이론은 영화에서 일반 상대성이론처럼 구체적으로 중요하게 활용된 것 같지는 않다.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다른 누군가가 대신 희생한다거나 하는 것과 같은, 액션과 리액션, 혹은 선택과 그에 따른 대가에 대한 의미로 살짝 응용한 것으로 봐도 될 듯 하다. 타스가 "뉴턴의 제3법칙. 남겨놔야 갈 수 있는 법이죠"라고 이야기하기 때문에 말이다. 또 "인류는 새로운 것을 얻으려고 항상 옛 것들을 버려왔죠"라고 말하는 데서도 그 정도로 생각할 수 있다.


7. 순순히 어두운 밤을 받아들이지 마오


브랜드 박사가 상당히 자주 우려먹은(?) 딜런 토마스의 시가 있다. 얼마나 많이 이야기했으면 만 박사도 그 시를 알고 있을 정도다. 순순히 어둠을 받아들이지 말라는 이 시의 내용은 결국 인간은 현재에 안주하지 말고 끊임없이 미래를 위해 탐험하고 개척해나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시가 가장 아릅답게 쓰였다고 여긴 순간은, 바로 쿠퍼와 대원들이 우주로 첫 발을 딛는 출발 장면에서의 내레이션이었다.


"순순히 어두운 밤을 받아들이지 마오.

노인들이여, 저무는 하루에 소리치고 저항해요.

분노하고, 분노해요. 사라져가는 빛에 대해."


하나 흥미로웠던 점은 20세기의 달 착륙을 소련을 대상으로 한 사기극으로 영화에서 설정한 점이었다. 아마도 이는 영화 속 인류가 당장 먹고 사는데 급급해 개척정신을 상실했다는 점을 부각하기 위한 게 아니었을까. 브랜드 박사가 죽을 때까지 중얼거리는 딜런 토마스의 시 역시, 큰 의미가 있다기보다는 개척정신을 상기하기 위해 반복적으로 사용된 것 같다. 쿠퍼가 결국 아멜리아를 찾아 나선 것도 단지 아멜리아가 있을 어딘가를 찾아 나서기 위한 행동일 뿐으로 보인다.


8. 크리스토퍼 놀란의 양극단



한없이 차가운 비관주의자인 크리스토퍼 놀란은 여전히 영화에서 인류의 무한한 가능성과 개척 정신, 희망을 놓지 않는다. 우주라는 비인간적인 공간에서 더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인간의 본성을 대변하는 존재인 만 박사가 "인간은 가족에게는 극진하지만 모르는 사람에게는 무섭도록 무관심하다"고 하는 건 인류애가 아닌 가족애가 종족을 발전케 한 동력이었음을 역설하는 것이다.


어려움과 친절함, 이성과 감성, 과학과 비과학, 차갑고 적막한 우주와 그곳을 유영하는 따뜻한 인간, 최첨단을 넘나드는 상상력과 옛것을 고집하는 제작 방식, 디스토피아적인 미래와 희망적인 미래, 절망과 가능성. <인터스텔라>는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이 보여줄 수 있는 양극단을 모두 담아낸 작품이다. (2017년 개봉을 앞둔 크리스토퍼 놀란의 <덩케르크(원제: Dunkirk)>를 기대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인터스텔라>는,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통틀어 다소 논란도 많고 한계점에 대한 지적도 많은 작품이지만, 나는 이 영화를 아끼고 사랑하는 이유에 대해 끝없이 늘어놓을 수 있다. 개봉 당시에는 극장에서만 여섯 번을 봤다. DVD를 구매한 것은 물론이다. (('비교'를 좋아하는 우리 인간은 언제나 순위를 따지고 '객관성'을 운운하지만, 문화 콘텐츠에 당연하게도 그것은 불가능하다.)'평점'이라는 것은 완성도의 지표가 아니라, 영화 간의 우열을 측정하는 방식이 아니라, 그 영화가 나에게 얼마나 잘 와닿았는지의 정도다. <다크 나이트>의 별 다섯 개와 <인터스텔라>의 별 다섯 개는 같은 의미가 아니라는 것.) 언제라도 주저 없이 10점을 주겠다. (★ 10/10점.)



<인터스텔라(Interstellar, 2014)>, 크리스토퍼 놀란

2014년 11월 6일 (국내) 개봉, 169분, 12세 관람가.


출연: 매튜 맥커너히, 앤 해서웨이, 마이클 케인, 제시카 차스테인, 맥켄지 포이, 케이시 애플렉, 웨스 벤틀리, 존 리스고, 빌 어윈, 조쉬 스튜어트, 맷 데이먼 등.


수입/배급: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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