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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Nov 16. 2016

내재된 공포를 구체화시키는 방법

<우주전쟁>(2005), 스티븐 스필버그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에서 몸을 사리지 않는 액션을 갈고닦은‘톰 아저씨’가 정체 모를 외계인의 무차별 폭격에 맞서 우여곡절 끝에 딸을 지켜내는 이야기. <마이너리티 리포트>(2002) 이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과 톰 크루즈가 다시 만난 영화 <우주전쟁>(2005)의 골자다. 다른 SF 영화에서도 종종 접할 수 있는 단골 소재인 탓에 그 자체로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자신의 의사나 경험과는 무관하게) 언제나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의 나라를 선사하는 ‘피터팬 신드롬’의 대명사처럼 여겨져 온 이전까지의 ‘스필버그 영화’와는 다르게 <우주전쟁>은 마치 이제 희망적인 미래 같은 건 없고 인류는 그저 외계인의 침략 앞에 무기력하게 당하고야 말 것이라는 것처럼, 결코 밝지 않은 영화다.


(아래 글은 영화의 결말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우선, 결말부터 보자. 구체적인 과정이 제시되는 것이 아니라 몇몇 단편적인 신과 함께 후반 내레이션으로 ‘트라이포드’가 죽는 이유가 설명된다. 초반부의 굉음과 함께 등장하는 위엄과 사람들을 가루로 만들어버리는 파괴력에 압도당한 관객이라면 조금 싱거울 수 있는 후반부다. 여기서 중요한 건, 이 트라이포드 외계인을 물리치는 데 사실상 인류가 한 일은 없다는 것이다. 그 어떤 총탄과 화기도 이들의 방어막 앞에서는 무용지물이다. 트라이포드가 살아남지 못한 건 지구의 오랜 역사와 함께 해 온 미생물들 때문이다. 지구의 환경을 속속들이 알지 못하는 그들이 미생물이라는 것의 존재를 알 리 없을 것이다.



위 결말의 요지는 인간이 지구의 주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엣지 오브 투모로우>(2014)의 미믹 족이든 이 영화의 트라이포드든 혹은 <맨 오브 스틸>(2013)의 조드 장군이든 지구에 언제든지 나타날 수 있고, 인류 역시 언제든지 지구를 떠나야 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인간이 자연의 주인이 아니라는 것’은 <쥬라기 공원>(1993)에서도 이미 체험했다. 생각해보면 스티븐 스필버그는 언제나 <E.T.>(1982)에서처럼 아이들에게 환상을 심어주거나 “그렇게 행복하게 살았답니다”식의 결말만을 대중에게 안겨준 것은 아니다. 오히려 언제든지 우리 주변에 공포스러운 위협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상기하는 것만 같다. <우주전쟁>에서 톰 크루즈가 연기한 레이 페리어는 그 고생을 하고 딸 레이첼을 구했지만 결국 가족과 함께 있지 못한다. 트라이포드가 오기 전이나 후나, 그는 혼자다. 이는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의 변화를 넘어 점차 독신가구가 늘고 가정이 해체되는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 끝내 희망적인 결말로 마무리하기는 하지만, 영화에서 레이가 집이나 소중한 사람의 곁으로 돌아가는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우주전쟁>은 이야기의 골자는 흔한 것 같으면서도 세부적인 것들은 다른 점이 많다. 이를테면 뉴욕 등 대도시의 빼곡한 빌딩 숲을 파괴하는 장면이 나오지 않고, 타지마할 같은 명승지를 파괴하지도 않는다. 과학자나 정치인, 혹은 군인을 내세우지 않는다(이 영화에 등장하는 제일 높은 계급의 군인은 육군 대위다. 그것도 단역으로 짧게 스쳐간다). 사태의 심각성을 기자가 보도하는 모습이 직접적으로 묘사되지 않으며 인류의 지성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지도자들이 모여 지도를 펼쳐놓고 회의하는 장면도 없다.


이 모든 것들은 <우주전쟁>의 주인공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미국도, 미군도, 톰 크루즈도 아니라는 것으로 연결된다. 직접적으로 등장하진 않지만 <우주전쟁>의 주인공은 (외계인이 언제든 지구에 찾아오거나 이미 지구 표면 깊숙한 곳에 숨어있을지 모른다는) 공포와 불안 그 자체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외계인이 있을지 모른다는, 혹은 외계인이나 UFO를 이미 봤다는 사람들의 증언이나 목격담을 실제로 믿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목격담들 사이에는 단순한 우연이나 환상이라고 치부할 수 없는 어떤 일관성이 있다고 말이다.



영화의 주인공이 ‘공포’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또 있다. 트라이포드가 왜 지구를 찾아왔는지 끝내 설명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유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는 듯 무차별적으로 사람들을 가루로 만들다가 어느 순간 허무하리만치 무기력하게 미생물 앞에 무릎을 꿇는다. H.G. 웰스의 원작 소설에서는 설명이 되지만 영화에서는 제외됐다. <우주전쟁>은 이들이 누구이고 왜 지구의 불청객이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은 제쳐두고 이들이 지구를 공격하고 있다는 것 자체와 매 순간의 긴장감을 관객에게 전달하는 데 주력한다. 처음 땅 속에서 굉음과 함께 등장할 때는 물론이고, 레이와 레이첼을 숨겨준 남자의 집에서의 숨바꼭질은 SF 영화라기보다는 스릴러를 방불케 한다. 트라이포드 말고 ‘진짜 외계인’의 모습은 몇 장면 나오지도 않는데 말이다.


그렇다면 결국 <우주전쟁>은 무얼 말하고 싶은 영화일까. 외계인은 인간보다 강하니까 체념해라? 언제든 공포가 도사리고 있고 실존할지도 모르니 불안에 떨며 살아라? 물론 그것보다 여전히 스필버그는 <인터스텔라>처럼 가족애에서 한줄기 희망을 제시하고 있는 건지 모른다. 어쨌든 영화에서 인류는 살아남았으니 말이다. 다만 <우주전쟁>은 2차 대전 이전의 홀로코스트가 그랬고, 2차 대전 이후의 냉전 시대가 그랬으며, 20세기 말의 ‘종말’에 대한 막연한 공포가 그랬듯 언제나 도처에는 인류의 행복을 위협할 수 있는 요소가 있어왔다는 점을 상기하고 있다. 그래서, 스티븐 스필버그가 그려내는 '공포'는 종종 아름답다는 생각을 해본다. 실재하지 않지만 도사리고 있을지 모르는 그런 미지의 존재에 대한 그의 확고한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마이 리틀 자이언트>(2016)와 같은 최근작에서 스필버그는 다시 낭만적이고 우직한 거인으로 관객들에게 다가갈 수 있었을 것이다. (★ 8/10점.)




<우주전쟁(War of the Worlds, 2005)>, 스티븐 스필버그

2005년 7월 17일 (국내) 개봉, 116분, 12세 관람가.


출연: 톰 크루즈, 다코타 패닝, 팀 로빈스, 저스틴 채트윈, 미란다 오토 등.


수입/배급: UIP 코리아 (현 UPI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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