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동진 Nov 13. 2016

소중한 존재들의 마음이, 마음의 존재들이 나를 살게 해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2016), 나가이 아키라

"딱히 어려울 건 없어요. 간단한 거래만 해주면 되니까."

"거래?"

"그래요."

"어떤 거래죠?"

"이 세상에서 뭐든 한 가지만 없앤다. 그 대신 당신은 하루치 생명을 얻는 겁니다."


(가와무라 겐키 지음,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 이영미 옮김, 오퍼스프레스, 2014, 22쪽.)



갑작스레 찾아온 자전거 사고, 30세의 주인공은 병원에서 더 이상 치료의 방법이 없는 뇌종양 말기라는 진단을 받는다. 얼마나 더 살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그날 밤 자신과 똑같은 형상을 한 '악마' 비슷한 존재가 나타나 거래를 제안한다. 세상에 없어도 별 영향 없을 하찮은 존재가 얼마나 많냐며 '없앨 것들의 목록'을 떠올려보던 주인공은 우선 '전화'를 없애겠다는 악마의 말에 다소 당황하지만 어느덧 그 대가로 얻은 하루의 삶을 살아본다.


전화에 이어 둘째 날은 '영화', 셋째 날은 '시간'을 없애겠다는 악마의 이야기에 주인공은 평소에 생각지 않아왔던 것들의 가치에 대해 돌아본다. 전화가 없어지자 전화로 인해 가능할 수 있었던 하나의 관계가 사라지고, 영화가 다른 것으로 바뀌자 영화를 계기로 맺어졌던 또 다른 관계가 사라진다.



과학 문명의 상징적인 산물을 없애고, 기억과 생각을 공유하는 매개체를 없애며, 나아가 관계의 흐름을 실감케 하는 물건에 이어 관계 속에서 나의 의미를 부여해주는 존재에 대해 그 부재를 가정하는 이야기는 감성적이되 절제하고 발랄하되 가볍지 않은 고유한 사고와 맞물린다. 원작과 달리 캐릭터의 활용이 조금은 무거워졌지만 그리하여 부재로 인해 존재의 의미를 깨닫고 지난 후에야 지나간 것의 소중함을 실감하는 사람의 가치판단의 심리를 효과적으로 반영한다.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은 어느날 문득 찾아올 수 있는 '내가 없으면 누가 나를 기억하고 슬퍼해줄까'라는 물음에 대해 답을 제시해준다. 이 세상에서 예고 없이 갑자기 사라질지 모르는 '나'를 살아있게 만들어주는 것은 나를 생각하는 소중한 존재들의 마음이다. 나의 '살아있을 수 있음'을 정의하는 것은 나와의 관계로 연결된 이 세상 다른 것들의 가치에 달려 있다. (★ 8/10점.)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世界から猫が消えたなら, If Cats Disappeared From the World, 2016)>, 나가이 아키라

2016년 11월 10일 (국내) 개봉, 103분, 12세 관람가.


출연: 사토 타케루, 미야자키 아오이 하마다 가쿠, 오쿠다 에이지, 하라다 미에코, 이시이 안나 등.


수입/배급: (주)크리픽쳐스





*좋아요와 덧글, 공유는 글쓴이에게 많은 힘이 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