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강명 르포 '먼저 온 미래'(2025)를 읽고
"제가 문학적으로 살지는 못해도 저는 문학을 믿습니다. 제가 비록 불가능을 잊는다 하더라도, 불가능이 저를 기억할 것입니다."
-이성복, 『고백의 형식들』
"구체에서 추상으로, 비천한 데서 거룩한 데로 나아가는 시는 '무한화서'가 아닐까 해요.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하려다 끝없이 실패하는 형식이니까요."
-이성복, 『무한화서』
"우리가 초능력이 있어서 미래를 내다보고 앞일을 미리 알고 그러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그렇지 않거든. 세상 제아무리 똑똑한 사람이라도, 단 한 치 앞도 못 본다 이거예요. 그래서 난 미래를 예측하겠다, 추론하겠다는 사람은 믿지 않아요. (...) 내가 아까 우리 중에 미래를 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했죠? 그런데 현재를 제대로 보는 사람도 많지 않아요. 사람이 과거에 사로잡혀 있거나 미래에 홀려 있으면 현재를 제대로 보지 못해요."
-장강명,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며칠 전에는 이렇게 먼저 썼다.
인간의 바둑이라는 게 뭘까. 무엇이 인간이 두는 바둑과 그것을 두는 인간을 정의할 수 있을까. 불완전한 직관과 불명확한 단어들, 기세? 장강명의 르포만 차갑고 명철한 것은 아닐 것이다. 장강명의 소설만 행복이 무엇이고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묻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먼저 온 미래』를 읽으면서 장강명의 이성은 얼핏 보이는 서늘함 뒤에 늘 인간적인 것을 치열하게 지키고 싶어 하는 어떤 절박함을 내포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싶어 계속해서 글자 너머를 생각하게 됐다. 위대한 작품이 하루에 288편이 쏟아져도 하루에 288번씩 감동할 수는 없는 게 인간이라는 것, 그 느리고 한계 가득한 인간이 여전히 좋은 상상을 하고 미래를 바꿔나갈 수 있다는 작은 희망. 과학기술의 선 밖에서 아내를 기다리며 기도하는 사람. 실체도 모른 채 먼저 와 버린 미래를 경고하면서도, 이 인간 작가는 희망을 아직은 놓지 않고 있다. 확답할 수는 없지만 같이 분석하고 고민해 보자고 이 이야기로 손을 내미는 인간 작가의 간곡함이 이 책을 읽는 일을 어쩐지 울컥하게 만들었다. (2025.09.27.)
트레바리 클럽 [씀에세이-노트]에서
'인간적'인 것은 무엇이고 과연 어떤 것이 인간적인 것과 아닌 것을 구분하는가. 우리는 이 질문에 대해 한참을 이야기 나누었다. 불완전한 인간은 자신이 감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가치'란 무엇이고 탁월함과는 다른 '위대함'은 무엇이며 어디서 나오는지 제대로 답하지 못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언어의 한계로 그것을 정확히 표현하지 못하는 순간을 마주할 뿐 표현하지 않아도 '그것'을 알고 있고 '느낌'을 공유한다. 내게 인간적인 것은 직관과 불완전함, 그리고 언어화될 수 없는 것을 끊임없이 언어로 표현하고 전하려는 시도 자체다.
다른 예를 들어볼까. 가령 '어류'는 조류나 포유류 등과 달리 단일한 분기군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고 측계통군으로 이루어져 있다 라고 해서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단언할 수 있는가? 불완전한 언어와 규범으로 직관을 제거하는 시도는 불완전하다. 우리는 생후 몇 개월부터 이미 개와 고양이를 설명해주지 않아도 서로 '다른' 종이라고 구분하니까.
사람은 계속해서 실수하고 끊임없이 흔들리고 불안해하는 존재다. 우리는 언어로 무언가를 전하려고 간절하게 그래도 시도한다. 이것은 완전해질 수 있다는 낙관에서 비롯하기도 하고 '언젠가는' 표현할 수 있거나 전해질 수 있으리라는 믿음에서도 비롯한다.
『먼저 온 미래』에서 인간 작가 장강명이 진정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는 9장과 10장에 있다. 불확실성 역시 소중한 가치임을 우리가 너무 늦게 깨닫게 되지는 않을까 우려하는 마음. 과학에 대한 순진한 낙관주의도 낭만으로 가득한 자연주의도 모두 위험할 수 있다는 것. 기술이 가치를 이끌도록 하지 말고 가치가 기술을 이끌도록 해야 한다는 것. 이 말은 그가 소설가이기 때문에 할 수 있다. 이럴 때일수록 힘 있는 인문학이 필요하다는 말. 나는 책을 읽는 내내 여기에 인간적인 간절함이 깃들어 있다고 강하게 믿으며 때로는 울컥하는 마음으로 책장을 넘겼다. '아직'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간절함. 이미 어떤 곳에서 먼저 와 있는 미래를 보면서 아직 그것이 도래하지 않은 곳에서도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는 서늘한 경고에는 우리 함께 더 많이 이야기 나누자는 간곡함이 깃들어 있다. 날 선 밑줄을 긋는 마음이 단지 무력감과 공포감을 주는 경고가 아니라 진심으로 염려하는 데서 비롯하기도 한다는 것. 이 인간 소설가의 마음이 오래 남았다. 여전히 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하며 우리는 더 진지하게 기술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고. 그래야만 정확히는 표현할 수 없거나 알지 못할 것들 앞에서도 우리가 미래에도 인간적인 것을 잃지 않게 될 수 있다고. (2025.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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