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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지만 단단하게

그렇게 브런치에서 만 10년

by 김동진

생각을 정리하는 일에는 느리고 서투르기 이를 데 없었지만, 신기하게도 그걸 글로 적다 보면 조금씩은 마음이 갖추어지고 단단해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걸 내 마음이라고 하자.* 쓰고 난 글을 물끄러미 훑으면서 그렇게 제목을 가늠해 보는 날들이 있었다. 어쩌면 그리 잘 골라내어진 마음들은 나보다 더 대단할지도 몰라. 시간이 이야기를 빛나도록 비추어 줄 거야.


어느 정도는 정말 그렇게 됐다. 내 브런치의 어떤 글을 계기로 하여 기고를 요청해 오거나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하는 고마운 곳들이 있었다. 2015년 9월 4일. 운 좋게 이 공간에 제법 일찍 둥지를 만든 덕분이었다. 몇 년 동안 무언가 계속하다 보면 이야기하고 싶거나 할 수 있는 것들이 생긴다. 거기 언제나 글이 있었고 글을 써서 실어 보낼 이 공간이 있었다. 누가 읽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디선가 발행된 글들이 그저 허공을 떠돌고 있지는 않다고 깨닫게 해주는 순간순간들이 있었다.


어느 정도는 대단히 빛나는 이야기가 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영화를 리뷰하거나 비평하는 일은 퇴사 수기나 여행 에세이, 심리 상담 일지, 기술의 미래 같은 것들에 비하면 왠지 설 자리가 적은 것 같았다. 그래도 괜찮았다. 더 잘 쓰면 결국 어딘가에서 더 읽히게 될 거라는 낙관이 있었으니까. 쓰다 보면 이 기록이 날 어딘가로 인도해 줄 거야.



실제로 해가 바뀌고 발행한 글들이 늘어날수록 성실성과 꾸준함을 무기이거나 장점이라고 칭해주는 동지들이 있었으니까. 그래서 매년 매거진을, 브런치북을, 하나씩은 새로 만들면서 내 글에 덮인 먼지를 털었다. 누군가의 손길들이 이 책들에 닿길 기대하며 책방의 문을 열고 환기하는 사람처럼. 그렇지만 모두가 중심이 될 수는 없고 내 느리고 우직하려는 기록들은 바쁘게 쏜살같이 흘러가는 세상의 기호나 취향과는 몇 걸음 변방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2025년. 브런치가 만 10년을 맞은 것처럼 브런치에서의 내 글도 그만큼 나이를 먹었다.


브런치에서는 이런 것들을 하거나, 얻었다.

-제1회 브런치북 프로젝트 은상 수상
-브런치 무비패스 1기, 2기, 3기, 4기, 5기 활동
-넷플릭스 스토리텔러 - 최우수 작가 선정
-POD 출판을 통해 『그 영화에 이 세상은 없겠지만』이라는 영화리뷰/에세이 모음집을 출간했다.
-그리고 브런치를 통해 많은 시사회 초대를 받았고, 영화제 프레스 참석 등의 기회를 얻었다.
-온/오프라인 글쓰기 강의, 영화 관련 모임, 온라인 및 지면 기고 등의 기회가 있었다.
-무엇보다, 각자의 위치에서 쓰는 여러 선후배 및 동료 작가들을 알거나 교류하게 됐다.



브런치는 내게 '작가'라는 울타리를 벗어나지 않게 해 준 넓고 한결같은 품이다. 주변일지라도 작가라는 세계에 계속해서 있을 수 있도록 해준. 언젠가 내 글에서 "앞으로 살아갈 스스로의 성실함 내지 항상성 같은 것을 낙관하는 마음"이란 표현을 썼다. 이곳이 그 마음을 지킬 수 있게 해 주었다. 내일도 내가 쓰는 글은 실제의 나보다 더 그럴듯하게 정돈된, 잘 꾸며진 나일 것이다. 여전히 나는 느리지만 그래도 지나온 글들은 마치 단어와 어미를 길어 올릴 토양 같다. 딛고 선 자리가 있어 나는 대단치 않아도 영화 한 편이 끝나고 난 뒤 그 기분 좋은 행복감과 떨림을 이곳에 심어보겠다. 여기 나 말고도 함께 평범한 기록을 읽고 쓰고 나눌 동료 작가들이 있으니까. 마음을 낭비하지 않고 제대로 다해 성실히 쓰는 것. 그게 앞으로도 내 바람이다.


*황인찬의 시집 제목 『이걸 내 마음이라고 하자』(문학동네, 2023)로부터.



*인스타그램: @cosmos__j

*모임/강의 등 공지사항: linktr.ee/cosmos__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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