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시라트'(2025) 리뷰
관객이 어디인지 사전 정보가 없다면 쉽사리 짐작하기 어려운 어느 황량한 사막에서. 영화가 시작한 뒤 첫 장면은 앰프처럼 보이는 무거운 음향 장비를 사람들이 하나씩 옮겨 쌓는 장면이다. 사막 한가운데 모인 사람들은 파티를 준비 중인 것 같다. 금세 장면이 바뀌고, 약에 취한 건지 술에 취한 건지 모를 사람들은 거의 실오라기 같은 걸 걸친 채 강렬한 베이스의 음악에 흐느적거린다.
작년 칸국제영화제 심사위원상을 수상한, 올리베르 라셰 감독의 영화 <시라트>(2025)의 도입이다. 스페인 영화이고 작중 배경이 모로코 남부 사막지대라는 걸 굳이 상기하지 않아도 된다. 시대 배경 또는 벌어지는 사건의 맥락 자체를 정보의 형태로 파악하는 게 필수적이지는 않은 영화임을 관람하다 보면 자연히 알게 된다. 앞서 소개한 파티는 돌연 투입된 군인들에 의해 (뭔가 일이 벌어졌다는 걸 알리며) 중단되고, 사람들은 군인들의 인솔에 따라 어디론가 단체로 이동을 하는데 작중 주인공에 해당되는 몇 명의 사람들은 군인의 지시를 거스르고 핸들을 틀어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2015)를 연상케 하는 외딴 주행을 시작한다. 이들은 어디로 가려는 것일까?
도입부의 '레이브 파티' 한가운데, 소식이 끊긴 딸을 찾는 아버지 루이스가 있다. 아마도 파티를 좋아하는 딸이 출몰할 법한 파티 장소 여기저기를 떠도는 모양인 그의 곁에는 아들 에스테반과 반려견 피파가 있다. 또 다른 파티가 열릴 예정이라는 곳을 향해 먼저 시동을 건 사람들은 이미 캠핑카 내지 트럭 등을 타고 가는데 '파티' 이야길 들었던 루이스는 그곳에 혹시 딸이 있지는 않을까 하는 기대로 무작정 (그리고 따라가 보자는 에스테반의 제안에) 그들을 따라간다. 루이스가 몰고 있는 승합차는 오프로드 주행에 언뜻 보기에도 적합하지 않다.
그러면 흔한 내러티브에 익숙한 관객은 이후 추이를 상상하거나 가늠하게 된다. 과연 대열을 무단 이탈한 걸로 보이는 이들을 군인들이 따라오면서 추적극의 형태가 될 것인가, 아니면 무작정 따라나선 파티에 또 다른 위협이 도사리고 있을 것인가. 또는 루이스가 찾아 나선 딸에게 어떤 사연이나 사건이 있고 가족을 둘러싼 일종의 진실을 파헤치는 방식으로 극이 펼쳐질 것인가. 아마도 <시라트>를 만나는 상당수의 관객들은 이 영화의 전개에 다소 어리둥절한 채 빠져들게 될지도 모른다. 파티 장소에 같이 온 듯한 깊은 울림과 비트가 돋보이는 사운드트랙, 쉽사리 예측하기 어려운 전개까지 어떤 의미로 2차 매체가 아니라 극장에서의 관람에 최적화된 작품이라는 감상을 엔딩 크레디트가 오르는 동안 망연히 생각한다.
아포칼립스인지 파티인지 분간이 안 되는, 어딜 봐도 온통 먼지뿐인 세상에서 어느 쪽으로 가고 있는지도 모르는 채 걸음을 떼다 보면 문득 내가 밟고 있는 것이 지뢰일 때가 있다. 운 좋게 안 밟았다면? 이번 걸음 대신 다음 걸음에 그게 기다리고 있었을 수도 있고. 배경과 상황을 부러 특정하지도 설명하지도 않는 이 질주가, 어쩌면 영화 <시라트>가 말하는 사막에 빗댄 인생사일지도 모른다.
(2026년 1월 21일 (국내) 개봉, 114분, 15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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