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가 한 사람이 아닌 둘 이상으로 구성되는 것이라면

영화 '프로젝트 헤일메리'(2026) 리뷰

by 김동진

한 사람에 불과한 내가 어떤 한 사람에게는 세상 전부가 될 수도 있다는 이문재의 시(「어떤 경우」, 『지금 여기가 맨 앞』, 문학동네, 2014)를 읽은 11년 전과는 달리 지금의 나는 딱히 사람(Humankind)에 대한 애정도 별로 없고 인류애 같은 거창한 단어와는 철저히 거리가 먼 사람이 되어 있는 것 같다. 모두를 사랑하기보다 그저 소중한 한 사람과 그 곁이라도 지켜낼 수 있는 만큼의 마음과 믿음이라도 잃지 않는다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읽고 쓰는 한 사람으로서 거기에 덧대어 지키고 싶은 게 있다면 어떤 스토리텔러가 가지고 있는 진심을 함부로 지나치지 않을 수 있는 독자이자 관객일 수 있다면 좋겠다는 것.

앤디 위어 소설 『프로젝트 헤일메리』와, 드류 고다드가 각색한 <프로젝트 헤일메리>(2026)는 어떤 면에서 그런 내게 다시금 한 사람과 한 세상의 관계를 상기해 줬다. 사이언스픽션의 외피를 빌리지 않더라도 누군가를 구하는 이야기, 또는 세상의 수명을 연장해 내는 이야기의 주역은 대부분 자기가 그럴 만한 그릇이 안 된다고 철저히 믿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제가요?" "왜 나를?" 그런 자들은 대체로 얼떨결에, 끌려가듯, 체념하듯 어떤 미션의 주역이 된다.


영화 ‘프로젝트 헤일메리’ 스틸컷


모종의 이유로 이 작품에서는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주인공이 주변 환경을 분석하면서 기억을 찾는 동시에 떠나온 곳과 지켜야 할 곳을 인식하기 시작한다. 이는 전적으로 뻔한 장르적 도상을 비트는 장치로서 의도된 플롯이다. (앤디 위어 본인도 어느 인터뷰에서 자신은 캐릭터보단 플롯에 강점이 있다고 말한 적 있다) 학계를 떠나 중학교 교사로 일하던 과거의 그레이스(라이언 고슬링)는 대단한 일 같은 건 하지 못하는 실패자로 스스로를 낙인찍는다. 그러나 작중 현재의 그레이스는 과학자답게 변수에 대응하고 위협에 대처하며 작품이 의도한 문제의 답을 찾아나간다.

여기에 감정을 더하는 건 <E.T.>(1982)나 <미지와의 조우>(1977) 같은 옛 SF의 향수가 진하게 나오는 그레이스와 로키의 관계 구축이다. 별이 소멸되지 않은 게 생명체의 존재 때문이라면, 생명이 꺼지지 않을 수 있는 해답이 저 별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발상이 한 존재를 살리기 위해 생명을 걸고 벽을 깨고 나오는, 서로가 서로를 구하는 두 존재의 움직임과 유대감으로 시현된다. 의지할 이도 없고 돌아갈 연료도 없을 때, 그는 무엇으로 생존할 수 있을까.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내게 한 세상은 한 사람만으로 구성될 수 없다고 말해주는 것 같다. 피도 눈물도 없을 것만 같은 프로젝트 책임자 스트라트(산드라 휠러)가 가라오케 신에서 부른 노래에는 이런 말이 지나간다. "Why are we always stuck and running from the bullets, the bullets?" (Harry Styles, 「Sign of the Times」) 사실상 저 노래는 스트라트가 그레이스에게 도망치지 말 것을 주문하는 말이다. 정말 이 세계가 끝나더라도, 넘어설 수 없는 불안 앞에서라도, 당신 지금 뭐 하고 있냐고 왜 거기 갇혀 있냐고 일갈하는 듯한.


영화 ‘프로젝트 헤일메리‘ 스틸컷


생김새도 다르고 눈도 못 마주치며 포옹도 할 수 없는 저 돌덩어리 같은 생명체는 그레이스에게는 물론 관객에게도 용기란 유전자 같은 게 아니라 그저 용기를 내게 할 존재가 있으면 발현되는 것임을 일깨워준다. 믈론, 이 영화를 돌비시네마 상영관에서 관람했다고 내게 대범한 결기 같은 게 갑자기 생겼을 리는 없다. 오히려 나는 점점 나약하게 안주하는 사람이 되고 있는 것만 같고 질문보다 평서문이 익숙해진 사람 같은데, 그렇지만. 내게 정말로 용기가 필요한 순간이 닥쳐오게 된다면 그때는, 그 무언가로부터 쉽게 도망치지 않는 사람이 되어 있었으면 좋겠다. 정말 세계가 한 사람이 아니라 두 사람이 있어야만 지켜질 수 있는 무엇이라면.


영화 ‘프로젝트 헤일메리’ 돌비 포스터
"긍정적인 면에 집중해야 한다. 나는 살아 있다. 친구들이 왜 죽었는지는 모르지만 그게 나까지 죽이지는 못했다. 나는 우주선을 타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는 우주선에 타고 있고 우주선은 제대로 작동하는 것 같다.
게다가 내 정신 상태도 나아지고 있다. 그건 확실하다.
나는 바닥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는다. 능동적으로 행동할 차례다. 나는 두 눈을 감고 정신이 마음껏 헤매고 다니게 놔둔다. 아무 거나, 뭐가 됐든 기억을 짜내고 싶다. 무슨 기억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단지 기억을 촉발하고 싶을 뿐이다. 그런 다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자."

(...)

"에어로크가 휙 돌고, 나는 혼자가 된다. 그동안도 내내 혼자였지만, 이제는 정말로 혼자다. 나는 최소 몇 광년 내에 살아 있는 유일한 인간이다.
이제 뭘 하지?"

(앤디 위어 원작 '프로젝트 헤일메리' 발췌)


어떤 경우에는
내가 이 세상 앞에서
그저 한 사람에 불과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내가 어느 한 사람에게
세상 전부가 될 때가 있다.

어떤 경우에도
우리는 한 사람이고
한 세상이다.

-이문재, 「어떤 경우」, 『지금 여기가 맨 앞』

*Bill Wilson, "To the world you may be one person, but to one person you may be the world."

<프로젝트 헤일메리>(Project Hail Mary, 2026)

2026년 3월 18일 국내 개봉, 156분, 12세 이상 관람가.

감독: 필 로드, 크리스토퍼 밀러

각본: 드류 고다드 (원작 앤디 위어 ‘프로젝트 헤일메리’)

촬영: 그레이그 프레이저

음악: 대니얼 펨버턴


출연: 라이언 고슬링, 산드라 휠러, 제임스 오티즈 등.


제공/배급: 소니 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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