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동진 Jan 17. 2017

잊어선 안 되는, 이름에 뒤따른 마침표가 주는 의미.

<너의 이름은.>(2016), 신카이 마코토

길을 걷다 무심코 눈이 마주친 누군가가,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것처럼 낯설지 않게 느껴진다면 그 '느낌'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 단지 기분 탓? 우리는 그런 일이 있을 때 결코 "그 사람의 생김새가 어떻고 표정이 어땠는데 내가 아는 누굴 닮은 것 같고 지난번에 논현역 앞에서 지나친 적이 있는 것 같아" 식의 설명을 늘어놓지 않는다. 설명의 영역이 아니라 단지 느낌의 영역이기 때문이며, 설명할 수 없는 경험이기 때문이며, 설명할 수 있다면 그건 애초 그 느낌을 주지 않는 다른 영역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 정도로 설명할 수 있으면, 그건 이미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아는 사람일 것이다!)


<너의 이름은.>을 보기 전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전작을 보지 않았어도, 작품 속에 등장하는 '무스비' 같은 용어가 낯설어도, 이 작품의 테마 중 하나를 칭하는 문화 용어인 '세카이계'를 몰라도 내용을 이해하는 데 지장이 없는 건, 바로 누구나 한 번쯤 겪음직한 그 느낌을 관통하기 때문이다.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이 세상을 구성하는 중요하고도 명시적인 요소로 자리한다는 것에 공감하는 관객이라면 <너의 이름은.>을 통해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전하고자 했을 그 의식 역시 보이지 않는 끈을 통해 그 관객에게 능히 닿고도 남을 것이다.



일면 10대 남녀의 풋풋한 사랑을 배경으로 삼고 있는 것처럼 보이나 <너의 이름은.>은 연령과 관계없이 보편적인 경험을 그 모티브로 한다. 누군가를 단지 잊지 않겠다는 것만이 아니라, 반드시 잊지 않아야 하는, 잊으면 안 되는 한 사람을 향한 절절한 마음이 담긴 탓에 자연스럽게 중요한 순간마다 효과적으로 감정을 고조시킨다. (종종 음악 등의 장치를 통해 일부 인위적으로 조성되는 감정의 순간이 있기도 하지만) 만나질 수 없는 만남에 대하여 그 만남의 한쪽 끝에 선 이의 감정은 언제나 그렇다.


그처럼 절박하고 안타까운 순간에 10대 소년과 소녀의 풋풋한 사랑의 감정과 메신저를 통한 트렌디한 일상의 교감들이 개입하자 <너의 이름은.>의 두 주인공의 끈은 단지 두 사람만의 고리가 아닌, 만남으로 아파해본 적 있는 이들을 통과하는 보편적인 실타래가 된다. 여기서 고조되는 감정을 단지 '오글거림' 같은 단어로 폄하해버리는 것도 물론 관객 개인의 몫이나, 12년 만에 국내 박스오피스에서 일본 영화가 1위를 이어가는 광경을 두고 그 이질감의 주요한 요인은 '한국 영화'와 '할리우드 영화' 식 감성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이라는 판단에 힘을 실어보게 된다.



조금 더 의미를 부연하자면, "당신의 이름은?"이 아니라 <너의 이름은.>인 것은, 중요하다. <너의 이름은>이 아니라 <너의 이름은.>인 것도 중요하다. 비록 이름을 미처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그 사람이 내게 반드시 잊어서는 안 될 만큼 중요한 사람이라는 것, 혹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나에게 분명하게 전부가 될 사람이 있다는 것, 그 마음을 안다는 것이 물음표가 아니라 마침표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제는 겉으로 대변되는 이름 자체가 중요한 것만은 아니라는 확고한 (후반부의) 다짐을 내포하기도 한다. 구어로는 잘 쓰이지 않지만 'あなた'보다 더 친밀함을 내포하는 '君'의 사용이, 존재 자체가 먼저고 이름이 나중인 것을 가능하게 만든다. 이는 영화 속 혜성의 충돌처럼 다수에게 아픔을 주는 사건을 겪은 이들을 모두 보듬고야 마는 하나의 방법이다.  나와 당신의 모든 소중한 사람들을 위하여. 이어질 수 없는 것을 끝내 이어보고 싶은, 모든 '무스비'를 꿈꾸는 이들을 위한 헌정으로서의 영화다.


길을 걷다 처음 마주친 누군가가 어쩐지 낯설지 않다면, 어쩌면 내가 잊고 지냈던 누군가의 존재를 환기해주는 것이라고, 혹은 누군가에게는 이제는 더 이상 함께일 수 없는 지나간 인연의 고리가 일시적으로나마 다시 찾아온 것일지 모른다고, 그 사람이 혜성처럼 나타나 공허한 마음을 어루만져준 것이라고, 그리 생각해보자. 삶과 죽음, 과거와 현재, 그곳과 이곳, 그런 것들 사이에 설명할 수 없는 다리 하나를 놓아주고 나면, 어느새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된다. 실은 후반부에 이르러 설정상의 몇 가지 구멍들이 분명 드러나지만, 그것들을 굳이 감안하지 않아도 될 만큼 힘 있는 작품이라는 뜻이다. 작화만큼이나 흠결 없는 설정까지 뒷받침되었더라면, 그때는 그야말로 이 세계에 빨려 들어가는 느낌을 주지 않았을까. (★ 9/10점.)


<너의 이름은.(君の名は。, 2016)>, 신카이 마코토

2017년 1월 4일 (국내) 개봉, 106분, 12세 관람가.


(목소리) 출연: 카미키 류코스케, 카미시라이시 모네, 나리타 료, 유우키 아오이, 시마자키 노부나가, 이시카와 카이토, 타니 카논, 나가사와 마사미 등.


수입: 미디어캐슬

배급: 메가박스(주)플러스엠





*좋아요와 덧글, 공유는 글쓴이에게 많은 힘이 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시대를 앞서간 영화를 볼 때의 어떤 감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