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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Jan 22. 2017

슬픔이 사라지지 않아도 삶은 살아진다는 관찰

<맨체스터 바이 더 씨>(2016), 케네스 로너건

주인공은 말이 없다. 힘도 없다(주먹은 좀 쓴다!).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메마르고 무기력하게 하루씩 벌어 먹고 산다. 특별한 재주 없이 막힌 변기를 뚫고 쓰레기를 정리하는 등 다세대 주택 건물의 잡역부로 일하며 보스턴에서 혼자 살고 있는 '리'(케이시 애플렉)는 그렇게 어제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오늘을 살던 중 뜻밖의 전화 한 통을 받는다. 형이 위급한 상황으로 병원에 실려갔다는 소식을 듣고는, 근무 일정까지 바꿔가며 차로 1시간 30여 분을 달려 병원에 도착하지만 '리'는 형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다. 그러나 어찌할 바를 모를 뿐 그는 슬프지 않다. 슬프겠지만 적어도 슬프지 않아보인다. 감정을 주체하지는 못하나 결코 오열하지 않는다. 아니, 이 영화에서 누군가가 우는 장면은 137분 중 채 5분도 되지 않을 것이다.


"나보고 조카의 후견인이 되라고요?"


가족이, 그것도 내 형제가 죽었는데 슬프지 않을 리가 있나. 당연하게도 슬프다. 슬픔의 우열과 정도를 계량할 수는 없지만 인간의 삶에 있어서 그 대척점에 있는 죽음이라는 것보다 더 큰 슬픔이 얼마나 있겠는가. 다만 <맨체스터 바이 더 씨>가 관객들에게 다가가는 방식은 그렇지 않다. 줄거리만 보면 슬프고 어두운 영화일 것처럼 보이지만, 이 영화는 실상 조금도 슬프지 않다. 심지어 적지 않은 장면에서 유머와 위트까지 담아낸다. 게다가 그러한 장면들은 전혀 이야기를 방해하지 않고 오히려 상처, 슬픔, 고통, 절망, 이런 단어들이 우리의 삶에서 내포하는 현실성을 자연스럽게 극대화한다.


단역으로 직접 출연한 케네스 로너건 감독


이 영화의 각본과 연출을 맡은 케네스 로너건 감독이 한 인터뷰를 통해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제가 기분이 안 좋다고 해서 소파의 색이 어두워지지는 않아요. 제 친구들이 죽는다고 갑자기 비가 내리지도 않고요. 그럴 때도 물론 있겠지만, 안 그럴 때도 있는 거죠. 이야기 속 인물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든 세상의 모든 것이 그들과 연관이 있지는 않습니다." 영화의 미장센과 프로덕션이 이야기를 이끄는 방식에 대한 한 가지 견해다. 절제에 대한 이야기다. 많은 영화들이 하지 않거나 하지 못하는 것. <맨체스터 바이 더 씨>는 오로지 인물의 감정선을 간접적으로만 대변하고 투영할 뿐, 절대로 스스로 앞서나가지 않는다. 제목 'Manchester by the Sea'는 단지 미국 매사추세츠 주에 실존하는 지명을 뜻하는 동시에, 조금도 특별하거나 특출나지 않은 인물을 데려다 그의 삶 안팎을 고스란히 바라보는 영화의 탁월한 관찰력을 떠올릴 때 그 이상 좋은 제목일 수 없는 이름이다. 아니, 인물을 데려다놓았다는 표현은 정확하지 않다. 바로 내 가족과 이웃을 직접 겪듯이 관객을 그 옆에 자연스럽고 찬찬히 앉혀놓는다.


슬픔이 사라져야만 삶이 살아지는 것은 아니다. 이는 단지 "슬픔도 힘이 된다"는 이야기와는 그 맥락이 같지 않다. 때로는 슬픔은 그 자체로 조금도 힘이 되지 않는다. 잊고 살다가도 기어이 문득 튀어나와 내 안을 들춰놓고 망가뜨리곤 한다. 아주 회생할 수 없을 지경이 되지는 않을 딱 그만큼. 그러나 결코 완전히 사라지거나 치유되지 않고 내 안에 영원히 남아 있을 만큼. 비록 나 하나 슬프다고 이 세상이 결코 어떻게 되지 않지만, 내 세상은 그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 '불가능함'이 남을지라도 거기에 이르는 과정에서 우리는 미약하게나마 또 다른 '가능'을 찾을 수 있을 따름이다.


"마음이 많이 아팠어, 당신도 아팠을 텐데"


영화가 애써 감정을 해소하려 하지 않을 때 관객에게 전달되는 그 파장의 크기와 깊이는 훨씬 더 파급력을 지닌다. <맨체스터 바이 더 씨>는 발상, 각본, 연출, 연기, 편집, 음악, 그 시작점부터 이야기가 맺어지는 지점에 이르기까지 완연히 '리 챈들러'의 1인칭 시점과 3인칭 시점 모두에서 전개된다. 이처럼 그 두 시점이 완전히 하나가 된 영화는 (적어도 나는) 지금껏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이미 나는 올해의 영화를 만났다. 이 영화로 케이시 애플렉이 제74회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것과, 제70회 영국 아카데미 작품상, 각본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여우조연상, 편집상 후보에 오른 것은 매우 지당한 일이다. (★ 10/10점.)



<맨체스터 바이 더 씨(Manchester by the Sea, 2016)>, 케네스 로너건

2017년 2월 16일 (국내) 개봉, 137분, 15세 관람가.


출연: 케이시 애플렉, 미셸 윌리엄스, 카일 챈들러, 루카스 헤지스, C.J. 윌슨 등.


수입: (주)아이아스플러스

배급: THE픽쳐스



<맨체스터 바이 더 씨> 메인 예고편 (링크)


<맨체스터 바이 더 씨> IMDB (링크)


<맨체스터 바이 더 씨> 로튼토마토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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