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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Dec 06. 2016

시대를 앞서간 영화를 볼 때의 어떤 감정

<델마와 루이스>(1991), 리들리 스콧

얼마 전 어느 배우의 트위터를 통해 '여배우'라는 단어가 화두가 된 적이 있다. 여자든 남자든 배우는 배우인데 '여배우'라는 단어가 굳이 필요할는지. 그 요지에는 공감했으나, 이 정보처리를 위해 존재하는 단어에 대해 차별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점은 용인할 수 있어도 과연 '혐오'의 잣대를 적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회의적이다. '대상화'를 적용하는 잣대에 대해서는 일찍이 기함을 했다.


그런 가운데 회사에서 재개봉을 준비 중인 <델마와 루이스>(1991)를 감상했다. <블레이드 러너>(1982), <킹덤 오브 헤븐>(2005), <프로메테우스>(2012), <마션>(2015)과 같은 리들리 스콧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통틀어 이 <델마와 루이스>의 위치는 다소 묘하지만, 스콧 경이 대체로 자신의 연출작의 각본을 직접 쓰지는 않으니 나는 곧이어 수잔 서랜든과 지나 데이비스라는 배우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역대 아카데미 시상식을 통틀어 한 영화가 두 명의 배우를 모두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린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우리, 계속 가는 거야.


아쉽게도 그 해 오스카는 <양들의 침묵>의 조디 포스터에게 돌아갔지만, <델마와 루이스>는 지금까지도 '여성 영화'의 손꼽히는 명작으로 칭해진다. (그랜드 캐년을 배경으로 1966년형 포드 썬더버드 자동차가 '날아오른' 그 마지막 장면은 영화를 보지 않은 이들에게도 익히 알려져 있다.) 영화의 시작은 가부장적인 남편과의 삶에 찌들 만큼 찌든 '델마'(지나 데이비스)와, 요즘 식으로 표현하면 '센 언니'쯤 되는 '루이스'(수잔 서랜든)의 캐릭터를 짧고 효율적으로 소개하며 시작한다. 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일탈이 두 사람에게 찾아오고, 늦은 밤까지 술을 마시거나 대낮의 사막 위 도로를 질주하는 쾌감은 이들에게도 허락된다. 그러나 남자들에게서 벗어나고자 시작되었던 두 여인의 여정은 남자들로 인해 꼬이기 시작한다.


이 영화에서 가장 상징적으로 각인된 장면


여정 자체보다 캐릭터가 서사를 이끌어가는 로드무비의 정석과도 같은, 영화의 여성성을 따지는 벡델 테스트 같은 것들은 모조리 통과할 것만 같은, 슬픈 결말까지도 오히려 통쾌하고 아름다운, 이 영화에 대해 내부 마케팅 회의를 하며 나는 어떻게 감상했냐는 실장님의 물음에 "저 시대 남자들은 정말로 저러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고 답했다. 요즘의 우리는 작은 것에도 쉽게 불편해하는 프로불편러의 삶을 살고 있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세상 많은 것들은 '좋은 게 좋은 것'이란 이유로, 혹은 남자이거나 여자라는 이유로 묵과되거나 간과되곤 했다.


"잡히지 말자, 계속 가는 거야."

당시만 해도 무명이었던 브래드 피트


그럴 때마다 변화의 전기를 마련하고 기틀을 닦은 사건은 어김없이 일탈이자, 모험이었다. 그러나 사회는 점점 일탈과 모험을 무모한 것으로, 먹고살기 위한 것 외의 나머지는 쓸모없는 것으로 대충 치부하는 '먹고사니즘'의 세계로 들어서왔다. <델마와 루이스>에서 브래드 피트, 마이클 매드슨 같은 배우들은 '델마'와 '루이스'에게 방해가 되거나 위협이 된다. 하비 케이틀은 모종의 도움을 주고 싶어 했지만 자신의 위치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여성을 동등한 성별로 취급하지 않는 폭력적인 남성 캐릭터들의 전형이지만 영화 속 바람둥이와 잡배들은 그때는 그렇게 사는 게 자연스러웠을 그 시기의 관성에 자연히 젖어 그게 잘못되었다는 생각조차도 하지 못 했을 것이다. 무엇이 '델마'와 '루이스'를 살인자와 강도가 되게 하고, 또 사지로 내몰았을까. 시대를 앞서간 영화를 보면 언제나 이 시대가 작아 보이곤 한다. 이 영화가 '여성 영화'의 대표격으로 칭해지는 데에는 다름 아닌 개봉 시기가 중요한 계기로 작용했을 것이다. (★ 8/10점.)



<델마와 루이스(Thelma and Louise, 1991)>, 리들리 스콧

1993년 11월 27일 (국내) 개봉, 124분, 청소년 관람불가.


출연: 수잔 서랜든, 지나 데이비스, 하비 케이틀, 마이클 매드슨, 브래드 피트, 크리스토퍼 맥도날드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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