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동진 Dec 06. 2016

우리는 꿈 앞에서 확고한 바보가 되어야 한다

<라라랜드>(2016), 데미언 샤젤

원하고 뜻하는 바를 이루어 그러한 길을 살아가는 일은 결코 쉽게 성사되지 않는다. 수많은 좌절과 무력감과 열등감을 마주하며 "나는 의지만 가지고 도저히 이룰 수 없는 불가능한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자괴감에 빠져든다. 모두가 삶의 기로에 다가서고, 모두가 그 터널 끝에서 다른 빛을 맞이한다. 대충 현실과 이상이라는 단어로 간편히 설명되곤 하는 이야기다.



<라라랜드>의 주인공 '미아'(엠마 스톤)와 '세바스찬'(라이언 고슬링) 역시 그 과정의 한가운데에 놓인 인물들이다. 재즈가 외면받는 현실에도 자신의 재즈 바를 꿈꾸는 '세바스찬'과, 배우의 길을 그리며 연극을 준비하는 '미아'. 최악의 하루에 마주친 그들은 우연한 만남을 이어가며 서로에게서 어떤 마법의 순간을 발견한다. 가장 순수하고 아름다운 순간의 그들은 길에서도 노래하고 춤춘다.



그 춤과 노래의 순간에서 <라라랜드>는 놀라울 만큼,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 옮겨가던 시절의 뮤지컬 영화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고 음악이 영상과 만나는 황홀한 무대로 관객을 이끈다. 가사는 고스란히 이야기와 부합하고 카메라가 악보를 따라가며 연기도 음악이 되는 순간 '보는 음악'의 경지에 도달한다. 불과 2천만 달러 정도의 제작비로, 나름의 스케일과 디테일을 결코 놓치지 않는, 재즈 애호가의 애정과 섬세함과 기획이 제대로 연출로써 반영된, 진짜 감독의 경지다. 전작 <위플래쉬>와 재즈 외에는 이렇다 할 공통점이 별로 없을 만큼 전혀 다른 색깔의 영화에서, (재능과 성공을 향한 삐뚤어진 집착과 광기를 그린 전작과 너무나도 다른 주제의식과 분위기 탓에 어쩔 수 없이 염려가 되기도 했었다.) 흑백의 고전을 그대로 옮겨와 컬러로 변환만 거친 것 같은 그런 순수한 사랑의 순간들을 발견한다.



완성도 높은 보통 개별 신들이 그 자체로 뛰어나고 흐름이 좋을 뿐 아니라, 전체를 놓고 볼 때 서로 간의 유기성도 탁월하다. 가령 타이틀이 나오기 전 오프닝 시퀀스의 가사는 한낮의 공원에서 '미아'와 '세바스찬'의 대화와 그 맥락을 같이 하고, 재즈 바에서의 첫 만남 역시 그 사소한 차이가 꿈의 안과 밖을 나누며 두 사람이 극장에서 관람하는 영화조차 그저 헛되게 지나치지 않는다. 크게 4개의 '막'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에서 1'장'은 4'장'에 이르러서야 진면목을 뒤늦게 드러내고, 2장과 3장은 계절의 흐름과 관계의 양상, 삶의 우연들을 풍부히 담는다. 뮤지컬 영화가 태동하던 시절 음악이 영화의 어떤 축을 담당하는 것이었다면, <라라랜드>의 그것은 곧 영화의 모든 것이다. 혹은, 영화 안팎의 모든 요소들이 한 편의 음악을 이룬다. 이 영화의 '아이맥스' 개봉이 조금도 어색하게 다가오지 않는 이유다. 초기 뮤지컬 영화는 일부 대형 스튜디오만 시도할 수 있었을 만큼 '비싼' 장르였던 걸 상기해보면, <라라랜드>는 제작비가 전부가 아니라는 걸 훌륭하게 보여주면서도 프로덕션의 완성도 자체가 정말 높다.



굳이 필요했을까 싶은 장면들도 (모든 영화가 그렇듯) 후반부에 들어서면 반드시 그 장면이 있어야만 하는 당위를 제시한다. 영화도 그렇고 꿈도 그렇다. 우리의 삶도 그렇다. 꿈의 마법은 모든 과정에서 있었을 인고의 시간만큼 아름다운 색을 띠고, 마음이 진정으로 담긴 정도만큼의 명도로 빛난다. 모든 아파하는 가슴들에게, 망가진 삶들에게, <라라랜드>의 세상은 그것들이 결코 덧없지 않으므로 어떻게든 잃지 말라고 한다. 그 쉽지 않지만 한결같은 움직임이 그리 아름다울 수 없을 만큼. 당신의 꿈들이 그 고운 결을 잃지 말길, 데미언 샤젤 감독은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것을 가장 사랑하는 방식으로 그려냄으로써 따뜻이 노래하는 것이다.



영문 포스터에는 이런 태그라인이 적혀 있다. "Here's to the fools who dream." 우리는 모두 꿈 앞에서 확고한 바보가 되어야 한다. 꿈은 무조건 이루어진다는 식의 덧없는 낭만이 아니다. ('세바스찬'은 어느 대화 중 '낭만'이라는 단어 자체를 현실과 동떨어진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하는 것을 경계한다.) 우리의 삶에는 때로는 슬프게도 잃어야만 하는 것이 있으며 아픈 좌절의 순간이 반드시 따라오지만, 별은 끝내 빛나고야 만다는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어둠 속에서도 빛을 찾아낼 수 있는 뜨거움이 있다. (★ 10/10점.)




<라라랜드(La La Land, 2016)>, 데미언 샤젤

2016년 12월 7일 (국내) 개봉, 127분, 12세 관람가.


출연: 라이언 고슬링, 엠마 스톤, 존 레전드, J.K. 시몬스 등.


수입/배급: 판씨네마(주)


(2016.12.05(목) 브런치 무비데이 시사회, 롯데시네마 월드타워)




*좋아요와 덧글, 공유는 글쓴이에게 많은 힘이 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야기 속의 이야기들, 그쯤 어딘가에 살고 싶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