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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Sep 10. 2015

채찍이 과정을 밟고 흉기로 올라서다

<위플래쉬>(2014), 데미언 샤젤

우리에게 채찍질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행동하지 않는 누군가를 위한 동기부여의 채찍일 수도, 이 정도면 충분하다며 스스로 쉽게 만족해버리는 누군가를 위한 자극의 채찍일 수도, 혹은 누군가의 스스로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반석 같은 채찍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채찍이 향하는 대상이 본래부터 건전하지 못한 사고를 지녔다면 채찍의 순기능은 변질된다.


플렛처(J.K. 시몬스)의 채찍은 네이먼(마일즈 텔러)을 향한다. 최고의 재즈 드러머가 되겠다는 생각 외에 그의 머릿속을 꿰차고 있는 것은 별로 없어보인다. 스튜디오 밴드에 뽑힐 즈음 사귀었던 여자 친구도 자신의 꿈에 걸림돌이 될 거라 생각해 헌신짝처럼 버리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가족과 친지들이 모인 저녁식사 자리에서는 풋볼 3부 리그에서 뛰는 사촌더러 NFL에는 근처에도 못 갈 거라며 무시한다. 션 케이시의 사례를 통해 잠시 다뤄지지만 플렛처의 지도법에 대해서는 윤리적인 논란의 여지가 물론 있다. 독기를 자극하기 위해 고의로 폭력적인 언어를 사용한다든가, 살아남아야 한다는 공포감을 조성하기 위해 의자를 던지는 것과 같은 행동들 말이다.


그러나 "제2의 찰리 파커라면 좌절할 리가 없다"는 플렛처의 말은 일견 타당하게 들린다. 정말로 자신이 최고의 자리에 오르고자 갈망한다면, 과정에서 찾아오는 어떤 것도 이겨내겠다는 각오가 선행되어야 한다. 다만, 네이먼처럼 누군가를 밟고 상처를 줘도 상관없다는 식의 마음가짐이라면 곤란하다. 결과가 좋으면 과정이 아무래도 괜찮다는 방향으로 이어질 수 있다. (물론, 이른바 '인간적인 경쟁'이란 이상적인 것에 불과하다. 경쟁은 근본적으로 내가 상대보다 나아야 하고, 더 독하고 강해져야만 하는 생리를 지닌다.)


영화의 오프닝, 어떤 장면이나 이미지도 없이 드럼소리만을 들려준 후, 연습실에서 혼자 드럼을 치는 네이먼을 향해 천천히 다가가는 카메라의 시선. 이는 관객이 처음 마주하게 되는 <위플래쉬>의 도입부인 동시에 곧 플렛처 교수의 시선이기도 하다. 그러나 클로징에 이르자 카메라의 앵글은 플렛처의 시선이 아니라 네이먼의 시선 혹은 땀과 피투성이가 된 드럼 자체에 가깝다. 오히려 이를 바라보는 플렛처에 대해서는 그의 눈만을 보여줄 뿐, 정확한 표정을 간파할 수 있는 입모양을 일부러 보여주지 않는다. 주인의 손을 떠난 채찍이 올바른 교육의 도구가 아니라 일종의 흉기로 거듭나는 순간이다. 그래서 <위플래쉬>는 교육과 인성에 대한 치열하면서 차가운 드라마다. (사실 홍보/마케팅 등의 과정에서 스스로를 음악영화라 포장하지는 않았다.) 아마 드럼을 치고 싶다는 생각이 영화를 보면서 들기보다는, 플렛처의 교육 방식과 네이먼의 성격 같은 것들이 더 기억에 남을 것이다. 영화를 재차 다시 보니 새삼, 우리의 학교와 교육을 돌아보게 된다. (★ 10/10점.)


<위플래쉬(Whiplash, 2014)>, by 데미언 샤젤

2015년 3월 12일 (국내) 개봉, 106분, 15세 관람가.


출연: 마일즈 텔러, J.K. 시몬스, 멜리사 베노이스트, 폴 레이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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