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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Sep 17. 2015

그 남자는 내가 될 수 있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을 행동하게 한 그 아이

7호선 지하철 안, 출입문을 향해 서 있는데 뒤편에서 액체가 조금 높은 위치에서 바닥으로 떨어질 때의 그 소리가 났다. 술렁이는 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그 액체는 한 남자의 입에서 나온 것이었다. 다행히도(?) 냄새가 심하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바닥이 흥건해졌고, 다들 피하고 표정을 찡그리는 와중에 나 역시도 그게 나와 가까운 곳에서 일어난 일이 아닌 것에 안도하기라도 하듯,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내 귀에 꽂힌 이어폰이 마치 같은 지하철 안의 그곳과 거리를 두는 어떤 장벽과도 같았다.


곁에 있던 몇몇 사람들이 자리를 옮기거나 하는 와중에, 열 살도 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이는 꼬마가 다가와 휴대용 티슈 뭉치를 건넸다. 내 또래로 보이는 남자는 꼬마에게 애써 웃으며 고맙다고 했다. 자리로 돌아간 줄 알았던 꼬마는 다시 그에게 돌아가 사용한 휴지를 담을 수 있는 비닐봉지를 건넸다. 내 가방에도 휴지는 언제나 들어있고 마침 물티슈도 가지고 있었는데 부끄러웠다.


또 한 청년이 물티슈를 건넸고, 곁에 있던 또 다른 남자는 자신의 휴지도 꺼내서 그 남자와 함께 바닥을 닦았다. 출입문 유리에 비친 그들을 바라보면서, 마음속의 무언가가 함께 닦이는 기분이었다. 조금만 용기를 내서 행동하면, 얼어붙은 마음을 녹일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남자는 그 남자가 아니라 내가 될 수도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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