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동진 Nov 01. 2017

과거의 뉴욕에도 예술보다 사랑이 있었네 (1)

<리빙보이 인 뉴욕>(2017), 마크 웹

"...Half of the time we're gone but we don't know where
And we don't know where
Here I am
Half of the time we're gone, but we don't know where
And we don't know where
Tom, get your plane right on time
I know that you've been eager to fly now
Hey, let your honesty shine, shine, shine
Like it shines on me..."

(Simon & Garfunkel 'The Only Living Boy in New York' 가사 중에서)



이 영화의 제목(The Only Living Boy in New York)은 사이먼 앤 가펑클의 노래 제목이기도 하다. 사이먼 앤 가펑클은 본래 그 이름으로 불리기 이전에 '톰과 제리'라는 듀오로 먼저 활동했는데, 공교롭게도 <리빙보이 인 뉴욕>의 메인 캐릭터(인 것처럼 보이는 인물)는 '토마스'(칼럼 터너)이다. (감독의 출세작인 <500일의 썸머>(2009)에서도 주인공의 이름은 '톰'이었다.) 이렇게 감독이 심어놓은 소품 같은 잔재주들이 영화에 빈번하게 등장하는데, 여기에는 '예이츠'나 '루 리드' 같은 시대를 풍미한 인물들의 이름도 언급된다.


이 이름들에서 감을 잡았다면, 정말로 그러하다. <리빙보이 인 뉴욕>에서 <500일의 썸머> 같은 로맨스를 기대했다간 적잖이 당황할 수밖에 없다. 캐릭터를 보여주는 방식과 편집 기법 등은 유사하지만 내용에 있어서는 얼핏 보면 감독의 전작들과의 유사점을 찾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초반부 '제랄드'(제프 브리지스)가 "뭔가를 놓치고 있다"(Something's missing and we all feel it.)는 요지의 이야기를 내레이션으로 하는데, 실은 여기에 주목할 필요가 있겠다.


영화 <리빙보이 인 뉴욕> 스틸컷


말하자면 <리빙보이 인 뉴욕>은 꽤나 복고적이다. (촬영도 디지털이 아니라 35mm다.) 영화 속 화자에 따르면 지금의 '뉴욕'은 과거에 비해 '뭔가'가 달라져 있으며, 예술에 있어 개인적 취향과 개성이 많이 약해진 것으로 회자되며, 심지어 '영혼을 잃었다'고 언급되기까지 한다. 그리고 그 잃은 것이 무엇인지를 찾는 과정이 영화의 한 축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한 축에는 갓 대학을 졸업한 작가 지망생 '토마스'를 필두로 자신의 미래를 찾지 못하고 뉴욕을 방황하는 이들이 있다. 짝사랑하는 여인 '미미'(키어시 클레몬스)와의 관계에 진전이 없던 '토마스'는 우연히 아버지 '에단'(피어스 브로스넌)이 어머니가 아닌 다른 여성 '조한나'(케이트 베킨세일)과 함께 있는 현장을 발견하게 되고, 그녀의 뒷조사를 하기 시작한다.


영화 <리빙보이 인 뉴욕> 스틸컷


부유한 아버지의 동네를 떠나 로어 이스트 사이드의 허름한 집에 사는 '토마스'는 출판업으로 성공한 아버지가 자신의 문학적 열망이나 재능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느낀다. '토마스'와 '조한나' 사이에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은 자연히 아버지 '에단'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여기서 영화를 보고 나면 기본적인 설정 일부만으로는 역시 사이먼 앤 가펑클의 노래 제목이기도 한 영화 <졸업>(1967)을 떠올릴 수도 있는데, 남는 의문은 이런 캐릭터들이 이 영화에 필요했을까 싶은 대목이다.


분명히 영화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문학적 레퍼런스들과 좋은 사운드트랙, 뉴욕이라는 공간적 배경은 매력적이다. 관록 있는 배우들의 연기도 각본을 잘 지탱해주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마크 웹의 감각적인 연출도 이 영화의 각본과는 잘 조화되지 못한다. 여러 차례의 수정과 퇴고가 있었겠지만 이 영화의 각본이 10년이 넘도록 할리우드 '블랙 리스트'에 있었다는 점은 조금 의아한 지점이기도 하다. 청년의 방황을 다루는 방식과 공간을 대하는 시선, 그리고 주변 인물에 대한 묘사가 제각기 불협화음을 일으킨다. 다만 <리빙보이 인 뉴욕>을 끝까지 볼 수 있었던 이유는 다름 아닌 '뉴욕'이 배경이며 사적으로는 불과 몇 개월 전 뉴욕을 다녀왔었기 때문이다. 각 부분은 훌륭하고 흥미롭지만 이것이 'The Only Living Boy in New York'에 과연 어울리는가에 대한 물음에는 쉽사리 답하기 어렵다. '졸업'하지 못한 청춘이 로맨스를 계기로 우연히 발견하게 된, 과거의 뉴욕에 대한 파편화된 향수들이라고 해야 할까. 자신의 뜻을 명확히 설명하지 않으면서 그것이 뚜렷하다고 믿는 각본이, 스스로 답을 내려둔 채로 관객에게 질문을 툭 던진 뒤 갑작스레 매듭을 짓는 인상이다. 러닝타임이 30분 정도는 더 길었다면 훨씬 더 와닿았을 것으로 여긴다. (★ 6/10점.)



영화 <리빙보이 인 뉴욕> 국내 메인 포스터

<리빙보이 인 뉴욕>(The Only Living Boy in New York, 2017), 마크 웹

2017년 11월 9일 (국내) 개봉, 89분, 15세 관람가.


출연: 칼럼 터너, 제프 브리지스, 케이트 베킨세일, 피어스 브로스넌, 신시아 닉슨, 키어시 클레몬스 등.


수입/배급: (주)더쿱


영화 <리빙보이 인 뉴욕> 스틸컷
영화 <리빙보이 인 뉴욕> 스틸컷




*좋아요와 덧글, 공유는 글쓴이에게 많은 힘이 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모든 여정을 알면서도, 그 끝을 알면서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