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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Mar 01. 2018

음지에서도 아이들은 그저 웃는다, 그것이 빛이라고

<플로리다 프로젝트>(2017), 션 베이커

정신없어 보일 만큼 부산스레 아이들의 뒷모습을 따라가는 카메라. 남의 차에 침을 뱉고, 그걸 닦고, 동네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다 떠들썩하게 소리 지르고, 담장 아래에 숨어 건너편 수영장의 어른들을 관찰하는 아이들. 놀고 있는 아이들은 그 수단과 목적 같은 것에는 별 관심이 없다. 그저 "놀고 있다"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이고, 곁에 또래가 있어 그저 가만히 있어도 에너지를 주체하지 않는다.


<플로리다 프로젝트> 스틸컷


가장 적극적이고 격렬하게 '놀고 있는' 아이들 중 가장 활동적인 '무니'(브루클린 프린스) 덕에 엄마 '핼리'(브리아 비나이트)의 집에는 수시로 어른들이 찾아온다. 글쎄, 이 아이가 내 차에 침을 뱉었다니까요. 무니가 관리실에 몰래 들어간 폐쇄 회로 영상이 있어요. 엄마의 반응은 사실상 "그래서요?"에 가깝다. 그 요인은 크게 보면 두 가지인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애들이 좀 그럴 수도 있지 너무 뭐라 그러지 말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핼리'는 딸보다도 실은 당장 하루하루 먹고사는 문제가 너무나 시급하기 때문이다. 변변한 직업 없이 친구에게 돈이나 음식을 빌리고, 모텔에 불법으로 장기 투숙을 하고 있는 '핼리'와 그녀의 딸 '무니'.


보통의 영화였다면 이들이 어쩌다 그런 환경에 놓이게 되었는지(가령, '무니'의 아빠는 누구인지를 포함해서), 그 과거의 사연을 따라가거나 혹은 사회 안전망의 부재와 같은 것에 대한 문제의식을 직, 간접적으로 드러냈을 것이다. 게다가 <플로리다 프로젝트>(2017)의 카메라는 마치 KBS [다큐 3일]이나 [인간극장]처럼 그 생생함이 극영화라기보다 차라리 다큐멘터리처럼 시종 여겨진다. (아이폰으로 촬영된 결말의 어떤 신 하나를 제외하면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디지털이 아닌 필름으로 촬영되었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는 그런 비판이나 혹은 가정사를 이해하려는 시도가 중요하지 않다. '무니'와 아이들의 일상을 따라가는 데 있어 어른들의 사정은 불필요하다. (나는, 영화 속 아이들이 자신들의 형편을 제대로 알고 있는지의 여부 역시도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플로리다 프로젝트> 스틸컷


뭐가 그리 신이 나는지 서로의 이름만 불러도 까르르 즐거운 아이들.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자극적 갈등이나 사건보다 무엇이 이 아이들을 살게 하는지, 그 생동하는 에너지에 집중한다. 그리고 서사 중심의 전개보다 이것이 오히려 영화의 공간적 배경에 대해 관객들이 친숙해지게 만든다. 짜 맞춘 것처럼 보랏빛으로 칠해진 '매직 캐슬'의 외관 역시 아이들의 세상을 천연의 아름다움으로 치장한다. 그들을 바라보는 모텔 관리인 '바비'(윌렘 대포)의 캐릭터는 고스란히 관객의 시점과 거의 동일하게 관찰자로서 기능한다. 아니, '바비'는 영화 속에서 몇 개의 신들을 통해 '무니'와 '핼리' 가족을 표나지 않게 도와주기도 한다. 다만 영화의 태도가 그러하듯 '바비'의 행동은 이들에 대한 연민이나 측은함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자꾸만 눈에 밟히는 이들의 삶을 조금이나마 거리를 좁혀 이해하게 된 쪽에 가깝다. 허름하고 어설퍼 보이지만 그는 모텔의 여러 가지 잡무들을 꽤 성실히 수행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플로리다 프로젝트> 스틸컷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타인을 섣불리 판단하거나 동정하는 대신 그 눈높이에서 차분히 일상을 관찰하며 영화의 시간과 공간을 점점 채색해나간다. 게다가 온전히 중립적 시선에서 말이다. 그 균형이 가장 빛나는 순간은 다른 것보다도 결말이다. 만약 바로 그 결말에서 단 몇 분, 단 몇 걸음이라도 더 나아갔다면 순수하고 천연한 아이들의 마음을 다치게 하지 않으려는 영화의 태도와 달리 오히려 이질적인 끝맺음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상황을 알게 된 '바비'가 어떤 반응이나 행동을 하기 직전, 그리고 '무니'와 '핼리'의 가정에 찾아온 변화가 본격적으로 실행에 옮겨지기 직전, 영화가 멈춘 지점 혹은 도착한 바로 이 지점은 오로지 아이들만이 있는, 다른 그 무엇도 중요하지 않은 곳이다. 약자를 바라보는 온화한 마음을 잃지 않으면서도, 그들에게 더 해가 될까 노심초사하면서도, 섣불리 거리를 좁히거나 균형을 깨뜨리지 않는다. 바로 얼마 전 개봉한 <탠저린>(2015)을 비롯해 감독 션 베이커의 전작들의 연장선에서,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영화 속 누군가가 비하적으로 표현한 '쓰레기 같은' 세상에서도 끝내 아이들을 위한 작은 응원을 보낸다. 그것도 영화가 취할 수 있을 만한 가장 아름답고 인간적인 방식으로 말이다. 누군가에겐 시궁창이어도, 이들에게는 아직 찾아오지 않은 내일을 위해 살아가는 곳이니까. (★ 9/10점.)



<플로리다 프로젝트> 국내 메인 포스터

<플로리다 프로젝트>(The Florida Project, 2017), 션 베이커

2018년 3월 7일 (국내) 개봉, 111분, 15세 관람가.


출연: 브루클린 프린스, 브리아 비나이트, 윌렘 대포, 발레리아 코토, 크리스토퍼 리베라, 멜라 머더 등.


수입/배급: 오드


<플로리다 프로젝트> 국내 메인 포스터
<플로리다 프로젝트> 스틸컷
<플로리다 프로젝트>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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