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크 크레이지>(2011), 드레이크 도리머스
지난 사랑을 하면서 나는 늘, 관계는 영원하지 않다고 믿었다. 그러나 모든 아름다운 것들은 그 유한함에서 미적 속성을 드러낸다, 고 적어도 생각해왔다. 그러니까 사랑이라는 감정, 혹은 연애라는 관계 역시도 마음으로는 낭만적 영원, 영원한 낭만을 꿈꾸지만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이다. 이는 반드시 비관적 사고만을 담고 있지는 않다. 우리는 영원하지 않을 수 있지만, 혹은 영원할 수 없겠지만, 언제까지가 될지 모르지만 가능한 그 '언제까지'를 길고 늦게 만들기 위한 서로의 마음씀을 담아서, 함께 만나고 있는 동안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서로 사랑하자, 라고 말할 수 있다. 꼭 사랑에 미친 사람처럼.
<라이크 크레이지>는 <뉴니스><이퀄스> 등을 선보인 드레이크 도리머스 감독의 2011년작이지만 국내 극장에서는 정식 개봉한 적이 없다. 이야기의 배경은 미국 LA다. 대학에서 만나 서로 가까워진 '제이콥'(안톤 옐친)과 '애나'(펠리시티 존스). '제이콥'은 미국인이고 '애나'는 영국인이다. 행복한 캠퍼스 데이트를 누리던 중 '애나'의 학생 비자가 만료돼 그녀는 영국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상황에 놓인다. 이제 두 사람은 어떻게 될까? 지금 언급한 내용은 영화의 비교적 도입 부분에 해당한다. 이야기는 실질적으로 이제부터 시작이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Out of sight, out of mind')는 말을 믿지 않는다. 관계는 전적으로 마음에 달린 일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관계를 이어나가기 위해 뒤따르는 여러 현실적 문제를 무시하는 말이 아니다. <라이크 크레이지>의 학생 비자 문제 같은 것이 그렇다. '강제 롱디'를 하게 된 '제이크'와 '애나'는 떨어져 있는 상대의 마음을 끊임없이 확인하고 싶어 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마음조차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게 된다. 영국으로 돌아간 '애나'와 미국에 남은 '제이콥'에게는 각각 '사이먼'(찰리 뷰리)과 '사만다'(제니퍼 로렌스)가 등장한다.
아주 섬세한 영화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라이크 크레이지>의 장면과 대사는 인물의 표면 너머를 헤아리기에는 (비교적 짧은 러닝타임에 비해) 부족하지 않다. 과연 현재의 관계를 지탱하는 것은 지금 그 자체일까, 아니면 처음 만났을 때의 그 마음일까. 이 대답은 간단하게 내릴 수 없는 것이기에 여기서는 조금 아껴야겠다. 다만 당신이 지금 이 사람을 바라보면서 이 사람의 다른 시간을 떠올린 적이 있다면. 조금 다르게 표현하자면 더 이상 현재에 충실할 수만은 없는 시간이 기어이 찾아오게 된다면. 우리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일까. <라이크 크레이지>의 두 사람의 모습은 우리가 서로에게 진정으로 열렬했던 시간의 흔적을 떠올리게 한다.
누군가는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라고 했지만, 변하는 건 사실이다. 다만 그 변화가 서로에게 가능한 좋은 방향이도록 이끌어주는 게 그간 쌓아올려진 신뢰의 감정일 것이다. 한귀은은 자신의 책에서 찰스 호손의 '젊은 남자와 여자'(1915)라는 그림에 대해 이렇게 적어놓았다. "남녀가 손을 꼭 잡고 있다. 여자는 잠시 딴 곳을 바라본다. 발을 헛디딜 수도 있다. 여자가 다른 곳을 보는 것은 남자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남자를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 잠시 눈을 돌릴 수 있는 것이다. 사랑이 지속되는 이유는, 사랑 자체가 지속되기 때문이 아니라 상대가 늘 자신을 지켜주리라는 믿음 때문이다." ([그녀의 시간], 73쪽, 예담, 2015) (★ 7/10점.)
<라이크 크레이지>(Like Crazy, 2011), 드레이크 도리머스
2018년 5월 30일 (국내) 개봉, 90분, 12세 관람가.
출연: 안톤 옐친, 펠리시티 존스, 제니퍼 로렌스, 찰리 뷰리 등.
수입/배급: (주)팝엔터테인먼트
*브런치 무비패스 관람(2018.05.03 메가박스 코엑스)
*<라이크 크레이지> 해외 예고편: (링크)
*<라이크 크레이지>는 메가박스 단독 개봉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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