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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Mar 08. 2019

잘 읽고 있습니다.

이제는 올해가 되어가는 이야기들

이 글은 지난 12월, 새해를 맞이하며 당겨 써둔 이야기다.


미안한 말일 수 있으나 전에는 '잘 보고 있어요' 같은 말이 무성의하다고 생각했다. 뭘 어떻게 보았고 무슨 생각을 하거나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가 담겨 있지 않으니 하지 않는 것만 못한 기계적인 리액션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조금 돌아보면 보았고 읽었다는 사실 자체를 알려주는 것만으로도 큰 역할이 있겠다 여기게 되었다. 그러지 않는다면 읽는 건지 염탐을 하는 건지 읽었지만 별로였는지 읽을 마음이 없는지 어떤지 등등 알 길이 결코 없으니까. 언젠가 오프라인에서, 나의 글에 그 어떤 반응 한 번도 한 적 없는 사람이 '잘 읽고 있습니다'라고 했을 때의 그 멋쩍은 기분을 아직 기억한다. 그에게는 진심이기도 했을 테지만 내게는 그게 인사치레를 넘어서는 의미로는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꾸미고 포장하는 일을 하지 못하고 예의상으로 하는 말 같은 건 잘할 줄 몰라서 그렇게 느꼈을 수 있다.

나 역시 스스로 쓰는 것에 집중하지 다른 이들의 이야길 하나하나 읽지 못하는 편이라 (나는 글을 읽지 않은 피드에는 좋아요를 누르지 않는다.) 누가 내 것을 읽는다는 게 잘 실감 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겠다. 크고 작은 일들을 이 작은 공간에서 5년을 겪는 동안, 많은 생각들이 바뀌었고 또 어떤 것들은 변하지 않았다. 지금껏 함께인 사람만큼이나 떠나간 사람이 결코 적지 않음을 동시에 생각한다. 어떤 헤어짐에는 이유가 없다. 떠나가는 이들을 슬퍼했고 상실과 부재는 언제나 조금의 익숙함과 태연함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오래일 거라고 믿었던 것들의 단명함을 쓰라려하기도 했다. 스스로의 마음만 앞서서 누군가에게 오래 머물러주세요, 라고 덜컥 말했던 일도 있었고, 단지 거기까지였을지 모를 짧은 과정을 마치 영원처럼 여기며 노트에 롤랑 바르트처럼 애도일기를 끼적거리기도 했었다.

그러면서도, '아직'이나 '지금껏'과 같은 부사들을 필요치 않으면서 그 존재만으로 함께임을 느끼게 해 주는, 적지 않은 이들에게 고마움을 느꼈고, 여전히 느끼고 있다. 그 고마움에 집중하려 한다. 나는 스스로가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있어서 될 수 있는 한 늘 더 예민해져야 한다 생각하고 더 사려 깊은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고 있지 못함에도 때로는 과도하게 사적이고 때로는 지나치게 장황한 이 흔적들에 잠시의 시간을 할애해주고 또 거기 머물러주는 이들은, 당신들은 대체 얼마나 귀하고 고마운 사람들인가요. 이 계정을 만든 첫 해에 방영돼 그때 내내 빠져 지냈던 드라마 [미생]에서 가장 좋아한 단 하나의 대사는 다름 아닌 "내일 봅시다"였다. 당신을 본 오늘이 내게 헛되지 않았다는 마음과, 그런 당신이 오늘처럼 내일도 함께이고 싶은 가치로운 사람이라는 마음이 녹아든 문장. 반드시 내일이 아니더라도 나는 당신과의 시간을 기다린다는 말.

나는 당신을 내일도 볼 것이다. 흔한 문장이지만 내년을 믿어보기로 했다. 나는 혼자가 아닐 것이다, 라고. 책 [기록이 상처를 위로한다]에 이런 문장이 있다. "글은 쓰는 이의 마음부터 어루만진다." 처음부터 나는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목적성을 지닌 글이 아니라 단지 내가 쓰고 싶다고 생각하고 써야 한다고 믿으며 매 순간 쓸 수 있다고 믿는 문장을 써왔다. 말하는 것보다 글 쓰는 걸 편히 여겨왔기 때문에 그것이 더 자연스러워졌다. 앞으로도 나는 그럴 것이다. 쓰는 행위로 말미암아 살아 있다고 느끼는 사람. 그저 쓸 수 있는 문장을 눌러 적어보는 사람. 자주 고쳐 쓰고 다시 쓰고 그러다 멈추고 호흡을 가다듬지만 그래도 계속해서 쓰는 사람. 나는 대단한 작가가 되고 싶은 게 아니라 매일 스스로에게 쓸 만한 기록을 남기기 위해 하루하루를 더 성실하게 살고 싶은 것이다. 쓸 만한 사람이 되어가면서 걷다 보면 그 자리가 길이 되어 있을 것이라고 믿으며, 지나온 곳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영화를 보기 위해 글을 쓰고 있습니다, 라는 스스로의 문장을 되짚는다. 새해의 나는 더 잘 쓸 것이다. 사진 공유를 위해 만들어진 플랫폼에 글자 수 가득가득 채워가며 문장들을 쏟아내는 이 행위에 누군가의 작은 동참이나 동행이 깃들 수 있다는 게 아직 낯설고 부끄러워서. 또 그런 글을 나만 쓰는 건 아니라는 데에 위안을 얻기도 해서. 글은 짧아지지 않을 것이고, 그치지도 않을 것이다. 좋은 영화를 보고 좋은 책을 읽을 것이며, 늘 깨어 있고 열려 있으려 노력해볼 것이다. 내가 살아 있음이 결코 단지 나 혼자만으로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늘 생각할 것이다. (2018.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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