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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Mar 09. 2019

이 세상에 잘 살려고 왔지, 오래 살려고 온 게 아냐.

책 『가만한 당신』을 읽고

최윤필 저 『가만한 당신』을 읽고 (마음산책, 2016)


"기자는 진실을 말해야 한다. 거짓도 과장도 안 된다. 물론 세상은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는 듯하다. 더 놀라울수록 더 잘 팔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우리는 맥락을 통해, 삶을 조형하는 복잡한 힘들을 드러내려 최선을 다해야 한다." (242쪽)


"글을 쓴다는 건 소통이 가능하다는 것, 그들 안에 선량함이 있다는 것을 믿는 것이고 그들의 관대함과 더 나아지려는 희망을 일깨울 수 있다는 믿음을 실천하는 행위다." (281쪽)





생을 완전히 연소한 이들의 죽음은 가만하다. 부고가 실리지 않았더라면 몰랐을지 모를 이들의 죽음. 그리고 수천 킬로미터 밖 타국의 삶이었기에 내게는 더욱 닿지 않았을지 모를 죽음. 최윤필『가만한 당신』은 한국일보 기자인 저자가 외신에 실린 보도를 바탕으로 조사하고 보충하여 2년간 지면에 연재한 것들 중 추려낸 '35인의 부고'다. 오늘날 상식으로 여겨지거나 혹은 당연하게 누리는 것들, 그러나 불과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그렇지 않았던 것들 - 이를테면 낙태 합법화나 동성 결혼, 존엄사, 표현의 자유 등 - 에 대해 저마다의 옳다고 믿는 방식과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기반으로 생을 걸어 추구하고 성취했던 사람들의 생에 대한 기록이디.


저자는 "이 책의 어떤 대목이 읽을 만하다면, 책 속 그들의 삶과 그들이 추구한 세상이 아름다워서일 테고, 책 바깥 독자들의 세상이 너무 고약해서일 테다. 그 간극을 메우는 데 이 책이 조금이나마 기여하기를 바란다"라고 썼다. (책머리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지구 반대편의 머나먼 나라에서, 당장 누가 알아주거나 인정하지 않는다고 해도, 눈앞의 영달이 아닌 스스로의 삶을 '살 만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전력을 다했던 사람들의 '길게 쓰인 부고'인 이 책은, 그러나 모두가 숨은 영웅이었다고 말하는 책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이 세상 모두에게 자신이 아니고서는 결코 말해질 수 없고 가능할 수 없는 이야기가 있고, 어떤 삶은 그 이야기를 말하거나 씀으로서만 살아내어 진다는 바를 깨닫게 한다.


미국 인디애나 주 최초의 합법적인 동성 결혼으로 인정받은 니키 콰스니(1976-2015)는 난소암으로 세상을 떠나기 몇 개월 전까지 자신의 사망 진단서에 자신의 아내가 '배우자'로 기록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생의 마지막을 다했다. 미국 연방대법원에서 동성 결혼을 법제화한 건 그의 사후 4개월 뒤인, 2015년 6월이었다. 이와 같은 35인의 이야기는 지금 이 순간 일개 독자인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과, 그리고 글을 쓴다는 일에 감사히 여기게 한다. 부끄럽게 여기게도 한다. 책의 인트로에 해당하는 페이지에는 이런 말이 쓰여 있다. "나는 이 세상에 잘 살려고 왔지, 오래 살려고 온 게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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