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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Mar 13. 2019

당신은 어떤 이야기가, 더 마음에 드십니까?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2012)로부터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저서 『정확한 사랑의 실험』(2014, 마음산책)에서 이안 감독의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2012)를 가리켜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라고 적은 바 있다. 단지 3D로 개봉했기 때문만이 아니라 이야기의 층위를 셋으로 나눌 수 있기 때문에 3D 영화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액자 안에 액자가 하나 더 있는 것일 텐데, '파이'(이르판 칸)가 자신을 찾아온 작가(라프 스팰)에게 묻는 말은 바로 관객들에게 닿는 질문이기도 하다. "어떤 이야기가 마음에 드십니까?"(So, which story do you prefer?) <라이프 오브 파이>는 '파이'의 회상 속으로 들어가, 두 이야기 중 주로 하나를 중점적으로 보여준 뒤, 나머지 하나를 짧게 들려준다. 두 이야기는 어느 하나가 명확히 진실이거나 거짓임을 구분할 수 없도록 짜여 있는데, 생각해보면 삶에서 선택해야 하는 많은 순간들이 대체로 그렇지 않을까. 당장 점심이나 저녁 메뉴를 고르는 데에도 '선택 장애'라는 말이 농담처럼 쓰이는데, 그런 사소한 일이 아니더라도 생의 갈림길 앞에서 우리는 종종 둘 모두를 아쉬워하며 결국 하나를 택할 수밖에 없음을 받아들이게 된다. (여기서 그 선택의 의미 자체를 다룬다면 자코 반 도마엘의 <미스터 노바디>(2009)를 언급하는 편이 좋겠다) 그보다 <라이프 오브 파이>는 우리의 삶에서 현실인 것과 상상인 것, 혹은 날것 그대로의 것과 가공된 것, 이야기를 이야기하는 데 있어 두 가지 방식에 대한 물음을 남긴다. 어떤 이야기가 더 마음에 드느냐는 물음에 이야기 하나를 택한 누군가에게 이유를 묻는다면, 누군가는 '더 나은 이야기'(better)이기 때문이라고 할 것이고, 누군가는 '더 흥미로운 이야기'(interesting)이기 때문이라고 할 것이다. 혹은 누군가는 '반드시 그 이야기여야만 하기 때문'이라며 대답 대신 또 하나의 이야기를 꺼낼지도 모른다. 나는, '파이' 역시 영화에서 공개되지 않은 자신만의 버전으로 또 하나의 이야길 갖고 있으리라고 믿는다. (2019.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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