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개츠비>(2013), 바즈 루어만
한 사람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그 사람을 향하여 맞추었으나, 정작 그 사람을 채우지 못했던 개츠비(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이야기. 이상을 믿었으나 기약 없는 기다림 끝에, 현실로 돌아가기를 택한 데이지(캐리 멀리건)의 이야기. 경탄과 경이를 안고 찾아온 곳에서 두 남녀를 만나 환멸과 회의를 얻어 돌아간 닉(토비 맥과이어)의 이야기. <위대한 개츠비>(2013)의 포스터 속, 손을 맞잡고 있으나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는 개츠비와 데이지의 이미지는 보기만 해도 이미 내용을 그려봄직하다.
제이 개츠비, 혹은 제임스 개츠는 과연 왜 '위대할'까. 위대함은 별보다 높아보였으나 일순간 갑작스럽고 허망하게 추락한 것에 대한 반어의 표현이다. 모두가 앞만 보고 달려가던 시대에 아무도 지키지 않던 것을 생을 걸고 끝까지 지키고자 한 것에 대한 기념의 표현이다. 가진 것 없었던 범인이 한 시대의 한 도시를 뒤흔들 수 있었던 것에 대한 감탄의 표현이기도 할 것이다. 인생을 바꿀 기회를 알아보고 놓치지 않았으며 사랑이라는 것에 그 바뀐 인생의 전부를 내걸었던 남자를 바라본, 또 다른 남자의 그를 향한 술회의 표현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남자를 위대하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도,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도 수십 가지에 이를 것이다. 희망을 사랑한 그도, 그가 사랑한 여자도, 그 사랑을 파국으로 이끈 남자(조엘 에저튼)도, 그 시작과 끝을 지켜본 남자와 여자(엘리자베스 데비키)도, 모두 그만큼의 다양성에 입각해서 볼 수 있는 풍부하기 그지없는 인물들이다.
그가 손을 뻗어 그토록 그리던 녹색 불빛은 본래 안개가 자욱해 빛 너머의 실체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손이 마침내 5년의 시간을 뚫고 닿는 순간, 평생을 걸고 찾아왔던 그 빛은 온 인생을 밝히는 빛이 아니라, 그저 거기 덧없이 있어 발하지 못하는 빛이 되고 말았다. 오래도록 품어왔던 이상은 품어온 시간만큼의 환상이 되고, 그것이 현실로 다가오는 순간 모든 것을 넘어서는 비현실성이 된다. 높이 쌓아올린 이상의 무게가 현실이라는 기반보다도 무거웠다. <위대한 개츠비>는 존재하지 않거나 존재하기 어려운 것을 바탕으로도 하나의 (허물어지기 쉬울 지라도) 거대한 세상을 구축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 세계가 누구를 위한 것이든, 어디로 향하든 말이다.
다만, 그가 자신의 장례식장에 오지 않은 다른 사람들처럼 현실의 삶을 부단히도 무난히 살아갔다면, 그는 '위대함' 혹은 그 근처의 무엇도 되지 못했을 것이다. 영화 속 화자 닉 캐러웨이의 펜 끝은, 개츠비 성의 불이 꺼져도 그가 가슴 속에 죽어서도 간직한 불빛 하나를 알아봤기에 그의 이름 위에 "The Great"을 새겼다. 이 세상에는 냉정한 현실도, 뜨거운 희망도 모두 필요하다. (★ 7/10점.)
<위대한 개츠비(The Great Gatsby, 2013)>, by 바즈 루어만
2013년 5월 16일 (국내) 개봉, 141분, 15세 관람가.
출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토비 맥과이어, 캐리 멀리건, 조엘 에저튼, 엘리자베스 데비키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