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당신의 메일은 스팸으로 분류되었습니다.

사람이 만들어낸 것의 한계

by 김동진

격일 영화리뷰 연재 [봐서 읽는 영화]의 다섯 번째 이메일을 구독자에게 전날 밤 예약 발송했다. 그 중 몇 건이 발송 실패했다며 메일로 알림이 와 있었다. 전체 구독자 중 메일이 전달되지 않은 사람은 총 세 명인데, 세 명 모두 다음/한메일 계정 사용자라는 것 외에는 공통점이 없었다. (이 대목에서 중요한 점은 아니겠지만, 내 메일 계정은 네이버다.) 아무튼 발송 실패 건을 확인하고는 일시적인 문제이겠거니 하고 동일한 내용의 메일을 새로 발송했다. 이번에도 보내지지 않았다. 소중한 구독료와 시간을 들여서 내 글을 메일로 받아보는 구독자 분이 갑작스럽게 나를 스팸으로 분류했을 리는 없고! 이틀 전 네 번째 이메일까지도 아무 이상 없이 발송이 되었는데! 왜 이럴까! 하며 나는 그 원인을 찾아보기로 했다.



mailfailure_daum.jpg 다음 메일 서버님,,, 왜 이러세요...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의 다소 수위 높은 폭력, 액션, 그리고 욕설이 등장하기에"


내 네이버 계정으로 보낸 메일이 구독자 중 다음/한메일 계정 사용자에게 보내지지 않았다는 문제. 그러니까, 메일이 보내지지 않은 건 위 문장 때문이었다. 앞뒤 문맥은 이렇다. "바로 내일 개봉이므로 여건이 닿는다면 보시길 권하고 싶지만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의 다소 수위 높은 폭력, 액션, 그리고 욕설이 등장하기에 보시게 된다면 다소 마음의 준비가 필요할 것이라 여겨지기도 합니다. <악질경찰>에 대해서는 제 브런치 계정에도 곧 별도의 리뷰를 작성해 올릴 것이므로, 그 또한 참고가 되신다면 좋겠습니다."


저 문장은 [봐서 읽는 영화 vol.01] 다섯 번째 에피소드로 발행한 글의 본문이 아니라, 글 앞에 매번 다른 내용으로 영화에 대한 소개를 적는 대목에 있다. 발송 실패 사유는 'Your mail is blocked automatically by anti-spam system.'이라 했고 말인즉 다음 메일 서버가 어떤 메커니즘에 의해 내 메일을 스팸으로 인식했다는 것. 단순히 일시적인 오류가 아닐 거라고 생각한 나는 메일 본문에서 몇 가지 대목을 넣었다 뺐다 하는 방식으로 내 네이버 계정에서 내 다음 계정으로 이메일을 여러 번 보내며 문제가 되는 부분을 찾아보려 했고, 맨 앞에 적은 저 대목이 포함된 메일은 어김없이 보내지지 않았다.



KakaoTalk_20190319_220336279.jpg
KakaoTalk_20190319_220425215.jpg
네이버 메일 앱과 다음 메일 앱을 오가며 몇 가지 테스트(?)를 했다. 특정 단어와 문장을 넣었다 뺐다 하면서 다행히 그 원인을 발견했다. 수많은 테스트의 흔적들.


독특한 점이라면 저 부분에서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의 다소 수위 높은'과 '폭력, 액션, 그리고 욕설이 등장하기에'를 잘라 두 번의 메일로 나눠 보내면 양쪽 모두 발송이 되더라는 점이다. 이는 '나름대로' 스팸 메일을 인식하는 데 있어서 단순히 키워드가 아니라 문맥을 고려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는데, 여기서 사람이 만들어낸 것은 사람이 하는 일을 완벽히 그대로 행하지 못한다는 생각을 다시 했다. '미래에 사라질 직업' 따위에 대한 조사나 연구에 '작가'나 '번역가'가 언급되곤 하는데, 적어도 지금으로서는 그 응답이나 판단에 동의하지 않는다.


KakaoTalk_20190319_220502158.jpg 본문 내용과 관계없음, 어제 시사회를 위해 방문한 롯데월드몰&롯데월드타워


황현산 선생님의 책 『황현산의 사소한 부탁』(난다, 2018)에 이런 대목이 있다. "'한컴오피스 한/글'(2014년판)의 맞춤법 검사 기능은 매우 유용하다. 그런데 '감옥에 들어갔다'고 쓰면 '감옥'에 붉은 줄이 그어진다. '교도소'로 고치라는 것인데, 모든 감옥이 교도소는 아니다. '말은 하기 쉽다'고 쓰면 '하기'에 붉은 줄이 그어진다. '다음'이나 '아래'로 고치라는 것이다. '키가 크다'라고 쓰면 '키'에 붉은 줄이 그어진다. '열쇠'로 고치라는 것이다. (...) 언어는 사람만큼 섬세하고, 사람이 살아온 역사만큼 복잡하다. 언어를 다루는 일과 도구가 또한 그러해야 할 것이다. 한글날의 위세를 업고 이 사소한 부탁을 한다. 우리는 늘 사소한 것에서 실패한다."(96-97쪽에서)


오전 중 다음 메일의 스팸 분류에 대한 가이드 같은 자료들을 유심히 살피던 나는 다음 고객센터에 문의 넣기를 포기하고 내 다음 계정으로 위의 동일한 메일을 구독자 계정에 '기다리시게 해서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보냈다. 동일한 내용이지만 받는 메일이 아니라 보내는 메일인 덕에 아무 문제없이 발송이 되었다. 누군가는 대수롭지 않게 넘길 사소한 일이겠지만, 어떤 일은 사소한 것에서 모든 것이 달라지곤 한다. 글을 굳이 쓰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하나의 세계는 언제나 결론이 아니라 과정에 있고, 생각을 언어로 전하는 일은 바로 그 과정에, 맥락에 달려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2019.03.19.)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