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영화에도 적용할 수 있는 것이기는 하나 특히 스릴러 계열의 영화일수록 뒤보다 앞이 중요하다. 주의가 산만한 상태에서 보는 초반부는 중요한 대목도 대수롭지 않게 넘기기 쉽고, 상영시간 내내 멈춤 없이 흘러가는 영화 특성상 보고 나면 앞보다는 뒤로 갈수록 더 뇌리에 선명하게 각인되어 앞의 것을 놓치거나 간과하기 쉽기도 하다. 잘 만든 영화는 처음부터 치밀하다. <마담 싸이코>(2018, 원제 'Greta')는 미리 말하자면 중후반보다는 초반을 잘 만든 영화다. 뒤로 갈수록 허점들이 눈에 띄기 때문인데, 98분에 불과한 짧은 상영시간에도 완급의 조절 면에서는 아쉬움을 남긴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영화를 볼 때의 영화적 재미를 좌우하는 게 논리보다 분위기인 경우가 많음을 생각하면 <마담 싸이코>는 아무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 것 같은 극초반에도 긴장감을 풍기고 '곧 뭔가가 벌어질 것' 같은 위기감을 고조시킨다. 그 공로는 영화적 장치보다는 이자벨 위페르라는 최고의 배우와 만난 '그레타'라는 캐릭터 자체에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아쉽게 여겨질 법한 요소들도 이자벨 위페르와 클로이 모레츠를 보는 것만으로 어느 정도 납득하게 될 정도다.
영화 <마담 싸이코> 스틸컷
1. "이자벨 위페르 자체가 개연성이잖아요"라고 말하듯이
<마담 싸이코>의 기반이 되는 소재 자체는 지극히 현실적이다. 지하철에 누군가 두고 간 가방을 우연히 발견한 '프랜시스'(클로이 모레츠)는 다음날 가방에 있는 주인의 주소를 찾아가고, 그 가방의 주인인 '그레타'(이자벨 위페르)는 감사의 표시로 차를 대접하겠다며 '프랜시스'를 집으로 들인다. 물론 그냥 지하철 분실물센터 같은 곳에 맡기면 될 것을 굳이 직접 주인을 찾아갈 필요가 있겠느냐,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마담 싸이코>는 마치 영화 밖에서 "가방 주인이 이자벨 위페르인데 당연히 직접 가야죠!"라고 말하듯이, 이 첫 만남 이후 '프랜시스'와 '그레타'가 서로 가까워지는 과정에 주목한다. 서로 대화를 나누던 두 사람은 마치 유사 엄마와 딸처럼 여길 만한 서로의 공통점을 발견하고, 예상외로 더 친밀해져 주기적인 만남을 이어간다.
영화 <마담 싸이코> 스틸컷
2. '그레타'는 단순한 '싸이코'일까, 단지 친구가 필요한 외로운 사람일까
예고편에서 알 수 있듯 '그레타'는 정말로 핸드백을 깜빡하고 두고 내린 게 아니라 '일부러' 지하철에 둔 것이었다. 누군가 자신을 찾아오길 바라면서. '그레타'의 집에서 함께 저녁식사를 하던 '프랜시스'가 우연히 수납장 안에 한가득 들어 있는, 자신이 찾아준 것과 똑같이 생긴 가방들을 발견하면서 <마담 싸이코>의 분위기는 급 반전되기 시작한다. 후반에 가면 나름대로 '그레타'의 과거가 밝혀지게 되는데, '프랜시스'에게 하는 행동을 보면 단순한 싸이코 범죄자인 것만은 아니지만 '그레타'의 모든 것이 섬뜩하게 다가오기 시작한다. 똑같이 친절한 말과 행동도 '프랜시스'가 '그레타'의 실체를 알게 되는 순간 전혀 다르게 받아들여지는데, 영화가 분위기를 급반전시키는 것만큼이나 이자벨 위페르라는 대배우의 작은 움직임과 시선처리 하나에 그 디테일이 담긴다.
영화 <마담 싸이코> 스틸컷
3. 캐릭터, 캐릭터, 캐릭터 - '그레타' 하나만 믿고 달리는 영화
'프랜시스'와 '그레타' 사이에 일종의 변수로 작용하는 건 '프랜시스'의 친구이자 룸메이트인 '그레타'(마이카 먼로)의 존재다. 그는 처음부터 '그레타'와 너무 친해지지 말라고 '프랜시스'에게 경고하는데, 관객은 자연히 "내 말이!" 하고 생각하게 되겠지만 '프랜시스'가 '그레타'의 실체를 깨달았을 때, 그는 이미 '프랜시스'의 집 앞에도 찾아오고 일하는 레스토랑에까지 찾아오며, 수십 통의 부재중 전화와 문자 메시지를 남기며 끝없는 집착을 보여준다. '그레타'가 흔한 범죄 스릴러 영화의 악역처럼 강력한 신체적 능력이 있는 것도, 험상궂은 인상과 거친 말투로 주인공의 기선을 제압하는 것도 아니건만, '그레타'는 웃으면서 쳐다보는 것만으로 상대를 공포에 질리게 만드는 캐릭터다.
영화 <마담 싸이코> 스틸컷
영화 <마담 싸이코> 스틸컷
<마담 싸이코>는 얼핏 '낯선 사람의 과도한 친절을 경계하라'거나 '타인에게 너무 함부로 친절을 베풀지 말라'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리는, 말하자면 도시괴담과 현실 공포 사이에 있는 영화다. 98분에 불과한 짧은 상영시간에도 불구하고, <마담 싸이코>는 꽤 밀도 높은 긴장감을 주는 스릴러다. 종종 구멍이 보이기도 하고 앞서 소개한 '에리카'를 비롯해 '프랜시스'의 아버지 등 다른 캐릭터의 활용 면에서는 여러 가지 아쉬움을 남기기도 하지만 오직 이자벨 위페르만을 보고 나아가는 영화이기도 하다. 몇 해 전에 뉴욕 여행을 다녀왔고 <마담 싸이코>에 등장하는 뉴욕의 여러 장소들을 보면서 잠시 추억에 잠기기도 했지만, (특정 지명이 구체적으로 명시되지는 않지만, 영화를 함께 본 동반인과 영화 속 장소에 대해 이야길 나누기도 했다) 영화를 보고 나면 일상적이고 현실적인 소재 탓에 충분히 귀가하는 길이 두렵게 다가올 수도 있을 만큼의 인상을 남긴다. 더불어 배우 이자벨 위페르의 다른 출연작들을 한동안 잊을 수도 있을 만큼의 '그레타'라는 캐릭터 하나만큼은 부정하기 힘든 소름과 몰입도를 선사한다. 수많은 공포 영화들이 대체로 현실적 소재를 기반으로 하고 있지 않은가. <마담 싸이코>는 말하자면 호러에 가까운 스릴러이며, 강렬한 캐릭터로 분위기를 끌고 가는 드라마다. (6월 26일 국내 개봉, 98분, 15세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