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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Aug 17. 2019

삶을 점수로만 판단하는 세상은 행복할까

<블랙미러> 시즌 3 에피소드 1 '추락' 리뷰

*스포일러는 없습니다.



<블랙 미러>의 설정 자체이자 그 장점이라고 한다면, 특정 분야의 기술적 발전이 어떤 사회적 영향을 가져올 수 있을지 즉 미래적 배경을 다루되 그것이 너무 막연하고 먼 미래의 일처럼 보이지는 않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가령 인간의 기억을 영상으로 완벽히 저장하고 재생할 수 있는 사회(시즌 1, '당신의 모든 순간')에서도, 죽은 사람과 가상 채팅을 하고 그의 육체를 똑같이 재현한 인형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회(시즌 2, '돌아올게')에서도, 작중 사람들의 모습은 오늘날과 그렇게까지 달라 보이지 않는다. 초월적 미래를 구현하지는 않되 매스미디어의 특정한 속성, 혹은 과학기술의 특정한 분야의 발전을 부각하면서 그것의 부정적인 속성을 돌아보게끔 만든다.


넷플릭스가 처음 제작한 <블랙 미러> 시리즈인, 시즌 3의 첫 번째 에피소드 '추락'(Nosedive)의 테마는 소셜미디어다. 사람들은 단 하나의 소셜미디어 플랫폼만을 사용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그것보다 중요한 건 사용자마다 마치 신용등급처럼 평점이 매겨져 있다는 점이다. 5점 만점에 4.2 정도를 유지하고 있는 주인공 '레이시'(브라이스 달라스 하워드)는 남동생과 함께 살고 있다. 아침 운동을 하면서 동네 주민들과 인사를 나누고, 카페에 들러 음료를 테이크아웃 하며 출근을 한다. 이렇게만 적으면 평범한 일상 같지만, '추락'의 초반부는 확연히 드러날 정도로 평범하지 않은 게 하나 있다. 주인공을 포함한 사람들은 마치 기계적으로 설정한 것처럼 지나치게 밝고 상냥한 목소리로 인사를 하며 입에 발린 칭찬과 덕담을 한다. 한 가지 더 눈에 들어오는 건 자신의 스마트폰에서 특정한 누군가를 향한 채 그 사람에게 '평점'을 주는 행위.



그러니까 이상할 정도로 하이 톤의 목소리와 예의 바른 인사는, 상대에게 좋은 평점을 얻기 위해서 나오는 행동이다. 내 평점이 높아지면 좋은 점은? <블랙 미러> 다운 설정은 여기서부터 진짜 시작이다. 나름대로 안정적이고 평온한 일상을 보내던 '레이시'는 새로 살 집을 알아봐야 하는 상황에 놓이는데. '레이시'가 새로 알아본 집은 꽤 비싸다. 한데 평점이 4.5 이상인 사람은 입주비를 20%나 할인받을 수 있다는 것.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레이시'는 동네에서도, 직장에서도, 지금까지 그랬던 것보다 훨씬 더, 사람들에게 좋은 평점을, 즉 별 다섯 개를 받기 위해 혈안이 된다.


그러던 중 소셜미디어 계정을 통해 팔로잉만 하고 있던 옛 친구 '나오미'(앨리스 이브)로부터 자신의 결혼식에 신부 들러리로 서 달라는 청을 받는다. '나오미'는 평점 4.8이 넘는 고평점군의 사람이고, '나오미'의 결혼식에는 그녀와 비슷한 점수대의 사람들이 많이 올 것이다. 신부 들러리 역할을 멋지게 해내면서 축사로 사람들의 좋은 인상을 얻는다면, '레이시'의 평점은 어쩌면 목표한 4.5에 다가설 수 있을지도 모른다. 같은 '별 다섯'이라 해도, 평점이 높은 사람에게 받는 별 다섯은 그 영향력(가중치)이 더 크기 때문이다.


이야기 내내 펼쳐지는 '자신의 평점을 높이기 위한' 언행들은 대부분 가식적인 것처럼 느껴진다. 오프라인에서 만난 사람들에게만 평점을 주는 게 아니라, 소셜미디어 계정에 올라온 사진이나 영상 피드에도 사람들은 평점을 준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길에서 만난 낯선 사람에게도 그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기 위해 다정하고 상냥한 태도를 취하게 되며, 욕설이나 폭력 대신 (가식일지라도) 온화한 언어들을 주고받을 것이다. 정말 그런가?


저마다 특수한 렌즈를 착용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은 모두 서로를 보는 것만으로 상대의 평점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이야기에는 당연히 평점이 높은 사람들만 등장하지 않는다. 평점이 낮아 특정한 시설에 출입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레이시'의 동생은 평점이 3점대다. 후반에 가면 1점대의 등장인물도 있다. 여기서 '추락'(Nosedive)이라는 제목은 중의적으로 다가온다. 소셜미디어에 몰두하는 일은 반드시 일상을 망치기만 하는가? 혹은, 소셜미디어를 끊으면 반드시 행복해질 수 있는가? 영화와 드라마를 막론하고 좋은 작품일수록 스스로 특정한 정답이나 대답을 내놓지 않다. 보는 사람에게 생각과 판단을 맡긴다.



예를 들어 인스타그램에 사진 하나를 올린다고 하면, 가능한 자신의 기준에서 예쁘게 잘 나온 것을 고를 것이다. 사진에 적당한 코멘트와 해시태그를 덧붙여 올린다. 다시 말해 소셜미디어 계정에는 '자신이 올리고 싶은 것만' 선택해서 업로드할 수 있다. 전부가 아니라 올리고 싶은 것만 있다고 해서 그것은 가짜인가? 혹은 허세인가? 타인의 삶은 그 누구도 함부로 판단하고 평가할 수 없다. 누군가 자신의 계정에 어떤 사진이나 영상, 그리고 글을 올렸다고 할 때 우리는 그가 어떤 생각과 마음으로 그것을 업로드했는지 결코 모른다. (어떤 경우에도, '나'는 '당신'을 안다고 단언해서는 안 된다.) 여기서 하고 싶은 말은, 'SNS는 인생의 낭비다' 같은, 치트키 같은 인용만 남발할 게 아니라 소셜미디어가 삶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고 또 어떤 역기능이 있는지를 생각해보고, 이미 일상에 깊숙하게 자리하고 있는 저 소셜미디어 플랫폼들을 우리가 어떻게 대하고 활용할 것인지를 한 번쯤 각자 고민해보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블랙 미러> S3 EP1, '추락'은 그 역할을 훌륭하게 한다.


한 시간 남짓의 본 에피소드 초반부는 눈에 띌 만큼 파스텔 톤으로 가득한 영상으로 채워지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점차 파스텔 톤은 약해지기 시작한다. 일반적이고 자연스러운 색감의 영상으로 돌아온다는 의미. 요즘 식으로 말해서 파스텔 톤의 색감이 소위 '인스타 감성'에 적합한 요소 중 하나라는 점을 떠올려본다면, 본 에피소드의 제목인 '추락'처럼, 이 이야기는 결국 해피 엔딩이 아닌 것인가? 작품을 보지 않은 이들을 위해 자세한 설명은 아껴야겠다.



연출: 조 라이트(Joe Wright)

출연: 브라이스 달라스 하워드(Bryce Dallas Howard), 앨리스 이브(Alice Eve) 등

음악: 막스 리히터(Max Rich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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