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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Sep 03. 2019

이언 매큐언 대표작의 훌륭한 각색

영화 <어톤먼트>(2007) 리뷰

이야기하고 상상하며 지어내길 좋아하는 한 소녀의 이야기로 시작하는, 평생을 두고도 결코 돌이킬 수 없는 크나큰 비극. '브라이오니'(시얼샤 로넌, 로몰라 가레이, 바네사 레드그레이브)는 자신이 쓰는 소설에서나마 어린 날의 과거를 새로 쓰려 한다. 비극의 상황은 이미 그 자체로 벌어진 일이며 용서를 구할 수도, 받을 수도 없는 이야기라는 점이 <어톤먼트>의 내용이 주는 여진을 더욱 길게 만든다.


영화 <어톤먼트> 스틸컷

"지난 오십구 년간 나를 괴롭혀왔던 물음은 이것이다. 소설가가 결과를 결정하는 절대적인 힘을 가진 신과 같은 존재라면 그는 과연 어떻게 속죄를 할 수 있을까? 소설가가 의지하거나 화해할 수 있는, 혹은 그 소설가를 용서할 수 있는 존재는 없다. 소설가 바깥에는 아무도 없다. 소설가 자신이 상상 속에서 한계와 조건을 정한다. 신이나 소설가에게 속죄란 있을 수 없다. 비록 그가 무신론자라고 해도. 소설가에게 속죄란 불가능하고 필요없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속죄를 위해 노력했다는 사실이다."

(이언 매큐언, 『속죄』, 521쪽, 2003, 문학동네.)


작품의 3부에 해당하는, '브라이오니'가 쓴 소설 속 '로비'(제임스 맥어보이)와 '세실리아'(키이라 나이틀리), '브라이오니' 세 사람의 대화를 미루어 볼 때 적어도 그녀는 자신이 '속죄'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인지하고 있는 캐릭터로 봐야 한다. 그렇다면, '브라이오니'가 평생 스스로의 무게를 떠안으려 했다는 사실이 '로비'와 '세실리아'의 사랑이 지닌 비극성을 약화시키는가? 그렇지 않다.


영화 <어톤먼트> 스틸컷


나아가 영화 속 '던커크'(<덩케르크>(2017)의 배경과 동일한 곳) 해변 롱테이크 신을 통해 강렬한 인상으로 자리하게 되는, 전쟁 역시도 '브라이오니'의 행동과 뜻과는 무관하게 이미 일어날 일이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문학'과 '이야기'의 구조적 치밀함과 가치가 여기서 나온다. 누구의 '이야기'에 좀 더 감정적으로 혹은 이성적으로 이입하게 되는지에 따라서 이 비극은 같게 받아들여질 수 없다.


이언 매큐언의 소설이 종종 미래의 다가올 일을 암시하거나 혹은 그 시점에서의 회고처럼 쓰인 대목들이 있듯이 영화 역시 영화적 장치를 통해 복선 혹은 상황을 맥락에 맞춰 분석할 수 있게 도와주는 설계가 아주 탁월하다. 기계적, 장치적 성취는 끝내 강력하고 긴 파장을 남기고, 폭발하지 않는 가운데 생생히 살아 숨쉬는 캐릭터를 구축해낸다.


영화 <어톤먼트> 스틸컷

용서되지 않고 용서할 수 없는 비극의 제목을 『속죄』로 설정함으로써, 캐릭터의 직업을 소설가로 만듦으로써 <어톤먼트>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이야기는 계속될 수 있어"라는 '로비'의 내레이션은 영화가 끝나고도 끝내 멈추지 않고 귓전에 아른거린다. 이 시대에 문학이 필요한 이유는 특히 너무나 쉽게 '타인'이 될 수 있다고 착각하는 이들을 위해서다. 나이와 성별과 그 어떤 배경을 뒤로하고서도, '다름'을 인지할 때 불행은 가능한 줄어들게 되어 있다. (★ 9/10점.)


영화 <어톤먼트> 스틸컷

<어톤먼트>(Atonement, 2007), 조 라이트 감독

2008년 2월 21일 (국내) 개봉, 122분, 15세 관람가.


출연: 키이라 나이틀리, 제임스 맥어보이, 시얼샤 로넌, 베네딕트 컴버배치, 로몰라 가레이, 주노 템플, 바네사 레드그레이브 등.


수입/배급: UPI코리아


*본 글은 2017년 11월 25일에 블로그에 작성했던 글을 브런치에 옮긴 것이다.


영화 <어톤먼트> 스틸컷



*프립 소셜 클럽 '영화가 깊어지는 시간': (링크)

*관객의 취향 '써서 보는 영화' 9월반: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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