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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Jan 13. 2016

영화, 시간을 선물하는 일

지나간 어떤 한 해를 떠올릴 때 종종 영화 하나를 기억하곤 합니다. 이를테면 작년은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재작년은 <인터스텔라>, ... 그 한 편의 영화만이 기억할 만한 영화였던 게 아니라, 어느 하나의 대표적인 각인이 나머지 학습을 대신하여 더 강렬하게 자리잡는 것입니다. 전자는 극장에서 네 번을, 후자는 여섯 번을 봤습니다. 그쯤 되면 슬슬 다음 장면이 그려지고 그 다음 장면에서 누가 어떤 말을 할지 대략 감이 잡혀서 새로움은 차츰 줄어만 가는데도, 그저 그 상영관의 그 자리에 앉아있는 것이 마냥 좋은 것이었습니다. 혹은 이럴 때도 있습니다. 냉정하게 보면 여러가지를 고려할 때 만듦새는 정말 별로였는데도 어쩐지 좋은 기억으로 안착된 작품 하나. 돌이켜보면 그 영화를 같이 본 사람이나 순간, 혹은 그저 어떤 장면 하나에 대한 기억 때문입니다. 잊지 못할 기억이었죠. 그걸 기억한다는 게 현재의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한 부분을 차지해 지금의 조각 하나를 만들었을 뿐.



그냥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때 그런 일이 있었구나, 음악이나 책도 양상은 차이가 있겠으나 본질은 별반 다르지 않을 겁니다. 그저 표값을 지불하고 두 시간 자리에 앉아 내 의지와 관계없이 영상을 흡수하고 이내 배출해내는 게 아니라, 어떤 의미로든 간에 적어도 '그 영화를 봤다'는 것 이상의 기억은 남겨두고 싶은 것입니다.



그런 기억을, 그런 시간을 선물하고 싶습니다. 지금은 그저 주어진 영화를 어떻게든 (좋은 의미로) 포장하고 가치를 끄집어내는 일을 비교적 수동적으로 하고 있지만, 언젠가 꼭 나의 안목으로 골라낸 한 편의 영화가 누군가에게 잊을 수 없는 명작으로 다가오길, 그런 순간이 내게 찾아오길 기대하며 오늘의 일도 내일처럼 해보고 있습니다.


회사에서 최근 오우삼 감독의 1986년작 <영웅본색>의 재개봉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정작 저는 그 영화를 보지 않았습니다. (이제 보게 되겠지요, 드디어.)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장국영이나 주윤발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수많은 장면들이 뇌리를 스쳐가며 아득해지는 영화일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요즘 말로 흔히들 하는 '가오'의 원조라 할 수 있는 작품일 겁니다. 어떤 식으로 포스터와 같은 선재물의 컨셉을 잡아갈지는 아직 첫 회의도 거치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이미 몇 번의 재개봉을 거친 영화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일단은 설렙니다. 언제나 좋기만 한 것은 아니지만 일을 하면서 설렐 수 있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합니다.



3년 정도 전일까요, 막연하게 '영화를 알리는 일을 하겠다'고 생각했을 때, 갖췄다고 할 만한 건 이른바 스펙이 되었든 내세울 수 있는 특별한 점이든,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일을 하면서 문득 그 시절들을 돌아보니, 생각하는 것만으로, 말하는 것만으로 정말로 그것이 나를 조금씩 움직이게 하고 이끌어오고야 마는구나 싶습니다. 또 3년이 지나고 나는 어떤 모습일지, 무슨 일을 어떻게 왜 하고 있을지, 아득히 알 수 없기에 막연히 떨리고 그저 즐겁네요. 야근의 틈 속에서 조금의 여유로운 퇴근을 맞이하고 나니, 이런 주체 없는 끄적임을 남길 시간도 생기게 됩니다.


이제 후배 직원 하나 막 들어온, 주임 직함도 가지지 못한 일개 사원일 뿐이지만 무언가를 해나가고 있다고 생각하니, 또 무언가를 하게 될 거라 생각하니 출근할 때 퇴근 생각하고 퇴근하면서 다시 출근 생각하는 그런 평일의 쳇바퀴 같은 일상이 썩 나쁘지는 않습니다. 읽을 여유도 없는 책 한 권 끼고 지하철 오가는 것도 마음 속에 무엇인가 꺼져버리지 않을 빛 한 줄기 품고 다니는 기분을 들게 합니다.



누군가에게 시간을 선물하고 기억을 만들어주는 일을 한다는 것. 아마도 저는 앞으로도 쭉 영화를 좋아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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