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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Jan 10. 2016

운명을 받아들이는 인간의 주체성에 관하여

<이웃집에 신이 산다>(2015), 자코 반 도마엘

<이웃집에 신이 산다>의 '새로운 신약성서'보다 좀 더 친근하게 번안된 국내 개봉명은 설정 자체의 대담함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러나 인간의 운명을 화두로 삼기 위해 운명에 관해 흔히 거론되곤 하는 창조주의 성격에 관한 상상력을 빌어왔을 뿐 <이웃집에 신이 산다>는 신에 대해 유의미한 이야기를 늘어놓지 않는다. 오로지 세상의 피조물을 만든 신의 성격이 모나서 재난이나 짜증 따위를 인간계에 가져왔고, 이는 그의 딸 '에아'가 전 인류의 남은 수명을 유출해버리는 행동의 계기로 작용하는 것에 불과하다.


감독의 전작 <미스터 노바디>가 갈 수 없는 길을 미리 걸어볼 수 있다는 가정으로 주체적인 선택의 당위성과 가치를 역설했다면 <이웃집에 신이 산다>는 가고 있는 길의 종착점을 미리 설정해버림으로써 운명에 관한 한 인간의 주체성을 설파한다. 전작이 주인공이 처했거나 처하게 될 여러 상황 설정 자체에 의미를 부여했다면 이번에는 같은 상황을 마주하는 다양한 군상들의 행태를 보여주는 것으로써 사건보다는 그 설정 하의 행동에 의미를 불어넣는다.


영화의 주인공은 신이나 그의 자녀가 아니라, '새로운 신약성서'를 써내려가는 여섯 명의 '사도'들이 되는 것이며 신의 딸 에아는 그들의 이야기를 대신 전하는 화자에 해당한다. 범인들에게 주어진 종착지와 그들이 에아에 의해 사도로 선택된 과정은 자신의 의지와 관계 없는 것이었지만 그들이 자신의 남은 길을 걸어가는 여정은 여전히 인간의 영역으로 남겨둔다. 그래서 이야기의 결론은 객체가 아닌 주체로서 주어진(혹은 주어졌다고 여겨지는) 것(들)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개인이 지니는 영향력으로 향한다.


이런 작품에서 바탕이 되는 설정이 무엇인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으며 그 소재를 사용하게 된 이유나 실타래를 풀어가는 방식이 핵심이 된다. <이웃집에 신이 산다>는 신의 '신성'에 대한 창작자의 상상력이 그저 상상으로 그치지 않고 상당 부분이 실질적이고 명시적인 세계관으로써 구현된다. 그리하여 감독의 작품 세계의 연장선에서 유효한 메시지를 전달하며 그 철학적 사유를 가볍고 유쾌하게 담아내는 능력이 탁월하다. (풍부하지만 남발되지 않는 음악까지!) 다만 영화 전체의 뿌리가 되는 사건이 다소 일찍 벌어지는 탓에 여섯 명의 사도를 다루는 이야기의 정형화된 패턴이 조금 일찍 읽힌다는 점은 아쉽다. (★ 7/10점.)



<이웃집에 신이 산다(Le Tout Nouveau Testament, 2015)>, 자코 반 도마엘

2015년 12월 24일 (국내) 개봉, 115분, 청소년 관람불가.


출연: 필리 그로인, 브누와 뽀엘부르드, 욜랜드 모로, 로라 베린덴, 프랑수아 다미앙, 로망 젤랭, 까뜨린느 드뇌브, 마코 로렌지니, 서지 라리비에레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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