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동진 Feb 13. 2020

믿음과 구원에 관한 묵직하고
날카로운 질문

영화 '문신을 한 신부님'(2019) 리뷰

영화 <문신을 한 신부님>(2019)에 관해 이야기하기 앞서 제목부터 말해야겠다. 원제인 'Boze Cialo', 혹은 'Corpus Christi'는 가톨릭의 축일 중 하나인 '성체축일'이라는 뜻의 단어(라고 한)다. 이 '성체'가 상징적으로 영화의 주된 의미를 지니지만 제목만으로는 영화의 소재나 내용에 대해 선뜻 감을 잡기 쉽지 않을 수 있겠으므로, 좀 더 주인공 '다니엘'(바르토시 비엘레니아)이라는 캐릭터를 직접적으로 설명하는 '문신을 한 신부님'이라는 제목은 영화를 보고 나면 꽤 괜찮은 작명으로 다가온다.


작년 베니스국제영화제, 토론토국제영화제 등을 통해 일찍이 화제가 되었으며 이번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 국제장편영화상 부문 후보에 (<기생충>과 함께) 올랐던 <문신을 한 신부님>소년원에 있던 '다니엘'이 경험하는 어떤 영적인 일들로 시작한다. 그러니까 소년원에는 목공 일이라든지 신부의 설교라든지 하는 일과들이 있는데, '다니엘'은 그 일과들을 보내며 어떤 깨달음 내지는 영감(여기서는 이를테면 '영적인 감응'이라 해야 할까)을 얻고 신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다니엘'은 범죄 전력으로 인해 신부가 될 수 없다.


영화 <문신을 한 신부님> 스틸컷

그러던 중 소년원 밖의 어느 소도시에 자리한 목공소로 파견 근로를 하러 갔다가 우연한 계기들로 '가짜 신부'가 되는 '다니엘'. 글을 쓰는 사람이 이렇게 표현하자니 아주 적절하진 않지만, '다니엘'이 '토마스 신부님'이 되기까지의 일들은 글로 표현하기 조금 미묘한 면이 있다. 신학대를 나오지는 않았지만 마침 사제복을 (아마도 소년원에서 훔쳐서 몰래) 가지고 있었고 목공소가 속한 교구의 '진짜 신부님'이 자리를 비우는 일이 생긴다.


비록 진짜 신부는 아니지만 '다니엘'이 '토마스 신부'로 벌이는 일들은 지역 사회에 어떤 변화를 가져온다. 이건 우화나 풍자라기보다 차라리 직설적이고 직접적인 이야기이자 질문이다. '다니엘'이 '진짜' 신부가 아니라고 해서, 그의 설교나 행동이 마을 사람들에게 가져다주는 변화는 곧장 '가짜'인 것이 될까. 만약 그 변화가 종교적으로나 지역 사회적으로나 좋은 쪽을 향한다면 그것은 설령 가짜라고 해도 나쁜 것이 되나.


영화 <문신을 한 신부님> 스틸컷

<문신을 한 신부님>은 격식을 깨는, 파격에 가까운 '다니엘-토마스' 신부의 활동 과정에서 조금씩 이 마을에서 과거 있었던 어떤 충격적인 사건을 들춰냄으로써 질문을 한 단계 더 확장시킨다. 잔잔하면서도 전복적이게. 더불어 내게는 생소한 폴란드 영화계 가운데서도 특히 새로운 얼굴로 다가왔던 배우 바르토시 비엘레니아의 이야기를 이끄는 힘 역시 놀랍게 다가온다.


영화의 각본을 쓴 마테우스 파체비치는 이 이야기가 실화로부터 영감을 받은 것이라고 전한다. 주인공의 범죄 전력은 픽션으로 만들어진 것이지만, 한 마을에서 과거 여러 명이 희생되는 비극적 사건이 있은 후 마침 해당 지역 교구에 신부로 오게 된 인물이 지역 사회에 가져온 변화에 주목한 것. 비극의 후유증을 겪는 마을에 찾아온, 한 '가짜 신부'의 이야기. 자신을 희생하면서도 스스로에게 주어진 책무를 묵직하게 받아들이는 <문신을 한 신부님> 속 이야기는 비종교인이 감상하기에도 큰 무리가 없다. 오히려 영화 관람 전 짐작했던 것 이상의 간접 체험을 안겨준다. 이는 물론 얀 코마사 감독의 안정적인 연출력 덕분이기도 할 것이다.




영화 <문신을 한 신부님> 국내 메인 포스터

<문신을 한 신부님>(2019, Boze Cialo), 얀 코마사 감독

2020년 2월 13일 (국내) 개봉, 116분, 15세 관람가.


출연: 바트로시 비엘레니아, 엘리자 리쳄벨, 토마시 지엥텍, 알렉산드라 코니에츠나, 레섹 리호타, 루카즈 시므라토 등.


수입/배급: 알토미디어


영화 <문신을 한 신부님> 스틸컷


(★ 7/10점.)

*영화 <문신을 한 신부님> 예고편: (링크)

*CGV 아카데미 기획전 관람 @CGV 신촌아트레온 (2020.02.02.)


*매월 한 명의 영화인을 주제로 다루는 영화모임 '월간영화인': (링크)

*원데이 영화 글쓰기 수업 '오늘 시작하는 영화리뷰' 모집: (링크)

*4주 영화 글쓰기 수업 '써서 보는 영화'(2/23~3/15) 모집: (링크)
*글을 읽으셨다면, 라이킷이나 덧글, 공유는 글쓴이에게 많은 힘이 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삶을 거시적으로만 살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