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두8.] 가지 않은 길의 그늘, 걷는 길의 빛

"놓아버린 가능성 중, 여전히 당신의 뒤를 밟는 건 무엇입니까?"

by COSMOS
"우리가 계획한 삶을 기꺼이 버릴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삶을 맞이할 수 있다."





우리는 살아가며 무수히 많은 갈림길에 섭니다. 하나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나머지 문들은 닫힙니다. 우리는 종종 닫힌 문 뒤에 펼쳐졌을지 모를 '가보지 않은 삶'을 막연히 동경하거나 후회하며, 정작 지금 내가 걷고 있는 이 길의 풍경을 놓치곤 합니다.

미련은 그림자와 같습니다. 떼어내려 할수록 더 짙어지지만, 빛(현재)을 정면으로 바라보면 그림자는 내 뒤로 물러납니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을 털어내야 비로소 지금 내 발밑에 핀 꽃이 보입니다.






내가 원했던 것

과거 나는 미술을 간절히 배우고 싶었다. 미술에 대한 나의 첫 기억은 유치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쩌면 기억이 흐릿해 초등학교 저학년 때였을 수도 있다.) 당시 같은 반에는 미술에 남다른 재능을 가진 친구가 있었다. 어린 내가 보기에도 또래에 비해 월등한 실력이었다. 미술학원을 다녔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 친구가 미래에 미술과 관련된 일을 하리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어 보였다. 반면 나는 재능이 없었다. 여러 대회와 공모전에 참여하고 점수에도 욕심을 냈지만, 결과는 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아쉽기보다는 납득이 갔다. 내가 원하는 평가를 받을 만큼의 실력이 내게 없음을 스스로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놓아버린

미술에 대한 열정은 만화를 좋아하던 어린 시절부터 시작된 듯하다. 내가 상상한 이야기를 가장 직관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방식이었기에 더 잘 그리고 싶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그 열정은 정점에 달했다. 진로를 결정해야 할 시기, 주위에 미술학원을 다니는 친구들이 눈에 띄자 조바심이 났다. 무슨 용기였는지 부모님께 미술학원에 보내달라고 졸랐다.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을 것 같았다.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그럼 네 그림을 가져와 봐. 재능이 있고 가능성이 보이면 보내줄게."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얼어붙었다. 자신감이 있었다면 당장 그림을 그려 보였겠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지금 당장 누군가를 설득할 실력이 없다는 것을, 그리고 내 그림을 보면 절대 허락해 주지 않으리라는 것을. 결국 나는 "됐어! 안 하고 말지!"라며 도망치듯 자리를 피할 수밖에 없었다.



포기한 미래와 현재

지금도 이따금 생각한다. 그때 내가 불도저처럼 밀어붙여 미술을 배웠다면 어땠을까. 후회했을까, 아니면 상상한 모든 것을 캔버스에 담아내며 살았을까. 가지 않은 길이기에 누구도 알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 길을 선택하지 않은 지금도 꽤 괜찮은 삶이라는 사실이다. 비록 화가가 되지는 못했지만 취미로나마 그림을 그리고 있고, '무언가를 만들어낸다'는 본질적인 측면에서 프로그래밍을 통해 내가 원하는 세상을 구축하고 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수많은 우연과 희로애락이 있었다. 나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렇기에 흐릿한 결과가 선명해질 때까지, 그저 묵묵히 현재 할 수 있는 일, 나에게 즐거움을 주는 일들을 해나가는 것이 최선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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