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블라를 연주하며 알게 된 것들 25
학생들에게 습관처럼 하는 말이 있다.
“당신의 생각보다 더 느리게.”
대부분의 학생들은 느리게 연습하라는 말을 들으면 나름대로 속도를 늦춘다. 하지만 초급자일수록 여전히 빠르다. 본인은 느리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그들의 몸은 느리게 머무르는 감각을 아직 잘 이해하지 못한다. 나는 한 번 더 붙잡아 말한다.
“그보다 더. 당신이 느끼는 것보다 훨씬 더 느리게.”
인간은 언어를 통해 세계를 인식한다. 감각이라는 세계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는 몸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감각들을 이름 붙이고 문장으로 표현함으로써 그것을 인식하고 저장한다. 요가는 그 대표적인 예다. 수련자는 교사의 다양한 언어를 통해 특정한 감각에 접근하고, 그 감각을 다시 소환하는 법을 배운다. 감각을 이해하고 되살리는 가장 직접적인 통로는 결국 언어다. 타블라를 연습한다는 것은 펜 대신 악기를 들고 글을 써 내려가는 일과 같다. 실력이 향상된다는 것은 뇌 안에 새로운 문장들이 쓰인다는 뜻이다. 감각이 단어가 되고, 동작이 문장이 된다.
그런데 문장 그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른바 ’행간’이다. 문장과 문장 사이 행간을 읽는 데서 독서의 깊이가 시작되듯, 감각과 감각 사이에 흐르는 미세한 흐름을 읽어내는 데서 연주의 깊이도 생겨난다. 그리고 이 흐름을 느끼기 위해서는 수련자는 정말로, 생각보다 더 느리게 연습해야 한다.
인도의 전통 음악에서는 감각의 행간을 세밀하게 관찰하는 훈련이 연주의 방식 속에 녹아 있다. 이들은 연주의 빠르기를 크게 세 가지(vilambit, madhya, drut)로 구분한다. 그 중에서 빌람빗(vilambit)이라고 불리는 매우 느린 속도에서의 연주는 단순히 템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감각을 정밀하게 관찰하도록 유도하는 철학적 장치다. 한 음 한 음을 길게 늘려야 하고 타격 사이에 긴 침묵이 머물기 때문에 연주자와 청중 모두가 음과 음 사이의 미세한 떨림과 여운, 그리고 침묵의 무게를 체험하게 된다. 빌람빗에서의 연습은 감각의 행간을 마주하게 만드는 훈련인 셈이다.
느림의 미학은 음악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한 예로 하타 요가는 수련자가 빠르게 여러 동작을 전환하기보다 하나의 아사나에 오래 머물며 아주 미세한 호흡과 긴장, 이완의 흐름을 관찰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근육의 떨림이나 체온의 미세한 이동, 시선의 흔들림까지도 감각의 대상이 된다. 속도를 늦출수록 감각의 해상도는 높아진다. 빠르게 움직일 때는 느껴지지 않던 작은 진동들이, 느림 속에서는 분명한 신호로 다가온다.
타블라를 아주 느리게 연습할 때도 마찬가지다. 평소에는 놓쳐버렸던 작은 떨림과 미세한 눌림, 손끝의 무게와 관절의 각도가 눈에 들어온다. 빠른 연주에서는 흘러가버렸던 감각들이 하나하나 또렷이 느껴진다. 또한 소리의 앞과 뒤, 즉 소리가 만들어지기 전의 침묵과 사라진 후의 여백까지도 감각의 범위 안으로 들어온다. 손가락이 공기를 가르는 길목, 그 미세한 경로조차 리듬의 일부가 된다.
느림 속에서의 감각은 마치 도끼질과도 같다. 빠르게 치고 지나갈 때는 나무껍질만 벗겨내듯 얕게 스치지만 느릴 때는 도끼날이 천천히 파고들며 깊숙이 들어간다. 감각도 마찬가지다. 얇게 지나가던 움직임이 깊이 새겨지는 체험으로 바뀐다.
이러한 체험들이 지속되면 연주자의 감각은 점차 내부에서 외부로 확장된다. 움직임과 소리 사이의 보이지 않던 연결을 보게 되고 음악은 몸과 시간, 그리고 공간 사이의 섬세한 협업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처음엔 단지 손가락의 위치만을 느끼던 연주자가 어느새 자신의 내면과 외부 사이의 물리적, 정서적 연결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느림의 훈련은, 현재를 사는 법을 가르쳐준다. 다음 소리를 향해 조급하게 달려가지 않고, 지금 여기서의 울림을 충분히 느끼고 즐기고 그 안에 머무는 것. 그때 우리는 소리를 발생시키는 나에서 소리에 잠겨 있는 몸에 더 가까워진다. 감각이 주도하고 자아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선다. 그 순간이야말로, 타블라가 나에게 선물하는 명상의 시간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음을 내느냐가 아니라, 단 하나의 음이 가진 깊이다.”
— Ravi Shankar
글/정명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