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블라를 연주하며 알게 된 것들 28
인도에서 전통음악의 프로 연주자가 되기 위해서는 상당한 훈련 기간을 거쳐야 한다. 전근대 시대까지만 해도 타블라 수련자들의 수행시간이 15-20년은 예사였다. 첫 무대에 데뷔하는 사람의 나이대가 서른 후반에서 마흔 초반인 경우가 태반이었다. 이런 문화적 전통 안에서 누가 몇 년 먼저 시작했는지 늦게 시작했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조기 교육이니 영재 교육이니 빠른 성취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우리 사회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이런 훈련 기간을 권유하는 음악 교사가 있다면 업계에서 살아남기 힘들 것이다.
한국은 일찍 시작해서 빨리 성과를 내야 한다는 강박이 유난히 강한 사회다. 음악뿐 아니라 학업에서부터 스포츠까지 다양한 분야 전반에서 언제 시작했는가가 결정적 요인처럼 여겨진다. 그 과정에서 평정심과 침착성과 같은 내면의 자질은 사치로 취급된다. 조급함은 미덕이 되고 시간은 단축해야 할 장애물로 여겨진다.
그러나 인도의 전통은 정반대다. 늦게 시작했더라도 오랜 시간을 차분히 성실하게 쌓아가면 결국 저마다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 여기서 경지란 손의 빠르기나 곡의 완성도 따위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 악기를 수련함에 있어 가장 깊은 보상은 목적지에 있지 않다. 오직 과정 속에 있다. 악기와 사귀면서 드러나는 몸과 인격, 그리고 세상에 대한 나만의 고유한 앎이 가장 큰 보상이다. (타블라의 거장 자키르 후세인의 아버지 알라 라카는, 음악을 통해 세상의 모든 것을 배울 수 있다고 확신해 자식을 학교에 보내지 않으려 했고, 그로 인해 아내와 큰 마찰을 겪었다.)
이들에게 테크닉, 정확도, 표현력과 같은 연주의 기술들은 성취해야할 목표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삶을 통과하며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이다. 정해진 시간 안에 무엇을 이뤘는가보다, 그 시간을 얼마나 진솔하게 통과했는지가 중요하다. 시간은 경쟁의 자원이 아니라 숙성의 동반자다. 나를 무섭게 몰아붙이는 추격자가 아니라, 나란히 걷는 다정한 친구다. 그래서 이들은 쫓기듯, 죽어라 연습하지 않는다. 그저 한다. 양치와 식사처럼, 악기 연습 또한 삶과 분리하지 않는다. 수십 년, 심지어 여러 생에 걸쳐 이어질 수행을 전제로 하기에 단번의 성취에 매달릴 이유도 없다.
우리는 길을 걸을 때 굳이 ‘열심히’ 걷지 않는다. 멈추지 않고 걷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하다. 이번 생에는 안 될지도 모른다고 중얼거리면서도 내가 손을 멈추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결과와 상관없이 지금 이 과정 자체가 이미 이야기라는 믿음 때문이다. 인도의 윤회적 세계관이 나에게 건네주는 지혜다.
모든 불안은 짧은 시간에 저 곳에 도달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온다. 어떤 성취 앞에서 조급해지고 앞서가는 이들에게 열등감을 느낀다면, 내 수명이 십만년쯤 된다고 상상해 보면 어떨까? 시간이 무한하다면 비교는 무의미해진다. 우리는 모두 도착하지 않은 채, 늘 가는 중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