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능독서•이태화 | 책 리뷰
종종 책이 읽기 귀찮고 싫을 때면 자주 쓰는 방법이 독서 자체에 대한 책을 찾아서 읽어보는 것이다. 투박하긴 하지만 나름 괜찮은 해결방법이다. 인간은 누구나 힘들고 까다로운 ‘일이나 업무’보다는 신나고 재미있는 ‘놀이나 휴식’을 더 선호하기 마련이다. 마찬가지로 나도 독서같이 까다로운 일보다는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것을 훨씬 더 좋아한다. 생각해보면 언제부터인가 독서를 숙제처럼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책까지 출판했다는 사실은 독서에 관해서는 내공이 충분히 쌓인 고수라고 생각해도 무방할 것이다. 이렇게 독서를 잘하는 전문가가 쓴 독서에 관한 글을 읽다 보면 게으른 자신을 반성하기도 하고, 처음 독서계획을 세우면서 가졌던 마음가짐도 되새겨보게 된다.
이렇게 다잡은 마음으로 책을 또다시 읽어나가다 보면 어느새 다음 읽을 책을 찾게 된다. 하기 싫은 일을 어떻게든 해보려는 눈물겨운 투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집어 든 책이 『본능 독서』다. 그런데 저자는 내가 이 책을 읽을 줄 알았다는 듯이 예상 밖의 주제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자신에게 솔직하게 물어보세요.
책이 흥미로운 취미인지
아니면 부담스러운 과제인지
저자는 의무감이나 강박에 의한 수동적 독서는 오히려 우리를 독서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지름길이라고 말한다. 자신의 호기심이나 흥미를 동기로 시작된 독서는 꾸준히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자연스럽게 일상으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독서가 일상이 될 때 여유가 생겨 독서 자체를 더욱 심화할 수 있게 되고 생산적인 활동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책에서 저자는 본능 독서의 정의와 방법을 5가지 주제(본능 깨우기, 강박 독서 내려놓기, 나답게 책 읽기, 마음껏 즐기기, 책 꼭꼭 씹어먹기)로 나누어서 전개해 나간다.
어린 시절 삼국지 때문에 독서의 매력을 발견했다는 저자의 에피소드는 많이 공감되었다. 나 또한 초등학교 담임 선생님의 뜻밖의 책 선물에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집안 사정으로 전학을 하게 된 나는 학교에서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항상 외톨이였다. 그런 나를 안타깝게 보셨는지 담임 선생님은 읽어보라며 삼국지라는 책을 선물해 주셨다.
그전까지 읽어본 책이라고는 어린이용 만화가 전부인 나에게 삼국지는 신세계였다. 상중하 3권으로 된 책이었는데, 초등학생인 나에게 쉽지만은 않은 분량이었다. 하지만 책에 등장하는 영웅들의 이야기는 나를 무한의 상상으로 이끌었고, 너무 많이 읽어서 책에서 묘사한 전투 장면들은 꿈에도 나올 정도였다. 10번도 넘게 읽었던 것 같다. 선생님의 권유로 읽게 되었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내가 잘하거나 즐거워하는 것들의 대부분은 하면서 스스로 재미를 느끼는 것들이었다.
읽은 책이 어느 정도 늘어나면 뿌듯한 마음이 생기기 마련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하는 독서 방법이 과연 괜찮은지도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무작정 다양한 분야의 책을 골고루 읽는 것이 좋은 것일까? 아니면 한 가지 책을 깊이 있게 정독하는 것이 좋은 것일까?
저자는 이 둘을 각각 발산하는 ‘양의 독서’와 수렴하는 ‘질의 독서’라고 표현하면서, 두 가지 독서법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테마 독서법’을 제안한다. 테마 독서법이란 내게 끌림이 있는 주제를 정해 관련 독서 리스트를 만들고 이를 목표로 설정해서 독서를 이어나가는 방법이다. 이렇게 하면 자기가 선정한 테마에 관한 전문성을 얻게 되고 이를 토대로 자기만의 독창적인 창작물을 제작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나도 ‘한국 현대사 자세히 알고 싶다’는 생각에 한국 역사 고수들의 추천 도서를 기반으로 리스트를 만들어 읽었던 경험이 있다. 무엇보다 나의 질문을 주제로 하는 테마를 선정하다 보니 책을 읽는 목표가 명확해졌다. 명확한 목표는 몰입의 최우선 조건이다.
또한 리스트의 책들을 읽어나가는 내내 일관된 태도를 유지하며 읽다 보니 여유가 생기고, 나름 객관적인 자세에서 책을 바라보며 비판적인 독서가 가능했다. 나에게는 만족도가 가장 높은 독서법이었다. 프로젝트(?)를 마치면서 얻은 것은 한국 현대사에 관한 지식은 물론이고, 독서의 즐거움은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다. 재미는 셀프였다!
왜(WHY)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그 어떤(HOW) 상황도 견뎌낼 수 있다.
- Friedrich Wilhelm Nietzsche
취미가 과제로 되는 순간 흥미는 강박으로 바뀐다. 저명한 작가나 기관에서 추천하는 훌륭한 고전들을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이 재미를 느끼고 호기심이 있는 주제에 관한 책을 직접 찾아서 읽는 것이 독서를 꾸준히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다. 다시 말해 절대 ‘필요’보다 ‘기능’이 앞서서는 안 된다.
자신에게 진정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해보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선택한 책을 읽을 때는 상투적이고 표면적인 이해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그저 ‘책 한 권을 읽었다’는 의미가 전부인 독서, 피해의 화살은 결국 그 책을 읽은 자신에게 돌아온다. 독서를 여타의 개인적인 욕망의 실현을 위한 도구로 여기게 되면, 독서의 가치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우연히 읽기 시작했지만, 예상보다 많은 성과를 거둔 ‘책 선택’이었다. 나도 모르게 독서를 숙제처럼 생각하며 알게 모르게 부담스러워하고 있었다. 독서의 참된 의미를 깨닫게 해 준 고마운 책이다.
본능독서
저자 : 이태화
출판 : 카시오페아
추천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