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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는 능력이다

책을 읽는 이유

by COSMO

● 힘들고 괴롭겠지만, 소위 '벼락치기' 공부로 하얀 밤을 지새워야 했던 시험 기간을 떠올려 보자.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은 시험이 끝나면 말 그대로 휘발성 메모리처럼 사라지는 '학습의 추억'이다. 시험 종료를 알리는 우울한 종소리와 함께 밤새 외웠던 숫자와 단어는 내 머릿속에서 사라진다. 어제 공부한 것이 혹시 꿈에서 한 것은 아닌지 착각할 정도다. 정작 중요한 것은 공부한 내용일 텐데, 힘들었던 감정만 기억하는 것을 보니 공부가 정말 싫었던 모양이다.


복잡한 마음을 추스르고 한 걸음 더 들어가 본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공부했는지' 떠올려 보자. 과목별 특성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대체로 필자의 경우 1) 교과서 정독 2) 핵심 사항 정리 3) 반복, 숙달 이렇게 3단계를 거쳐 시험에 대비했던 것으로 기억한다(시험 범위 확인도 중요하다). 결국 시험도 선택과 집중이다. 왜냐하면 필자 같은 평범한 사람은 교과서 전체를 기억한다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평소에 예습과 복습을 철저히 해 시험을 연습처럼 여겼던 모범생도 아니었다.


교과서 정독, 그렇다! 시험공부의 시작은 언제나 '읽기'였다. 일차적으로 문자를 해독하고 자기만의 언어로 재해석한다는 의미에서 그렇고, 추가적으로 전체 내용에서 중요한 것을 추려낸다는 의미에서 그렇다. 극단적으로 비교해서 만약 읽을 수 없는 사람과 읽을 수 있는 사람이 같은 조건에서 같은 내용을 배운다고 한다면 어떻게 될까? 학습의 수월함, 이해의 정도, 활용능력 등 모든 영역에서 읽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유리할 수밖에 없다.


이처럼 학습의 기본이자 시작은 '읽기'라고 할 수 있다. 최승필 작가도 『공부머리 독서법』(책구루, 2018)에서 글을 읽는 4단계 메커니즘을 '표음 해석 - 의미 해석 - 의미 연결 - 2차 의미 연결'로 설명하면서, 학습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읽기 능력'이라고 주장했다. 우리가 무엇인가 잘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읽기 능력이라는 데 동의한다면, 독해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그렇지 못 한 사람보다 상대적으로 학습에 유리하다는 말에도 동의할 것이다. 그렇다면 독해 능력을 효과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당연히 독서다.


자본주의라는 치열한 경쟁구도에서 아름다운 '나'를 위해 모두가 직업이라는 수단을 이용한다. 자신의 능력을 키우는 일은 회사에서 살아남기 위해 중요한 일이다. 깔끔한 문서 작성, 회의에서 주도적 발언, 원만한 대인 관계, 설득력 있는 프레젠테이션, 효과적인 업무 처리 등은 회사에서 인정받는 사람의 공통점이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대체로 회사에 필요한 사람이 되려면 부단히 배워야 한다는 사실을 정확히 인식하고 있다. 그들은 사내 교육은 물론 사외 교육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도전한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인사고과 조건을 따지며 승진에 유리한 항목에만 집중하는 사람을 무조건 비난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기적인 개인의 영달을 잡을 기회도 독해 능력이 뛰어난 사람에게 더 유리하다는 사실은 말하고 싶다.


그리고 무엇인가 배운다는 것은 그 사람의 이해력, 다시 말해 독해력과 깊이 연관된다. 앞서 학습에서 읽기 능력이 중요하다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독해력이 뛰어난 사람이 더 잘 배울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꾸준히 독서를 해온 사람이 회사에서도 유능하고 대체 불가능한 직원이 될 가능성이 높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새로운 것을 배우고 싶은 호기심도 폭넓은 배경지식에서 출발한다. 왜냐하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은 어떤 질문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배경지식을 확장하는 일, 인터넷을 비롯한 다양한 매체를 통해 할 수 있지만 역시 중요한 것은 독해 능력이다. 이렇게 책을 읽는 행위가 추상적인 가치를 좇을 것 같지만, 사실은 현실적인 능력 개발과 직결된다.


결국, 독서는 개인 능력 발달의 전제조건이다.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은 우주의 탄생과 3억 년 차이밖에 나지 않는 은하(GLASS-z13)를 발견했고, 미시세계의 물리학인 양자역학(아인슈타인은 끝까지 인정하지 않았다)은 발전을 거듭해 물질의 근원을 밝히려는 것을 넘어 이를 이용한 컴퓨터까지 발명됐다. 지구에서 4차 산업혁명은 이미 진행되고 있으며, 인공지능과 메타버스는 SF 소설이 아니라 현실이다. 이제는 너무나 익숙해서 지겨울 정도다.


한편, 중국과 러시아의 팽창에 맞서 미국을 비롯한 유럽의 열강들은 자신의 이득에 따라 이합집산 중이며, 이것이 신냉전체제로 나아가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특히, 대한민국이라는 치열한 정체성을 갖고 태어난 우리이기에 어느 것 하나 쉬운 게 없다. 과학과 인문, 선과 악, 논리와 감정과 같은 이분법적 접근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세상을 살고 있다. 무엇 하나 분명하지 않은 혼돈의 21세기, 우리는 무엇을 선택하고 집중해야 할까?


21세기형 문맹이란 광활한 정보의 바다에서 쏟아지는 텍스트의 '맥락이나 행간'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사람을 말한다. 그러다 보니 단편적인 단어나 짧은 문장의 해석에서 그들의 사고는 멈춘다. 『이기적 유전자』(을유문화사, 2018)에서 리처드 도킨스는 밈(Meme)을 문화 전달의 총체나 단위로서 제안한다. 밈은 원래 유전자의 운반자 역할밖에 못 하는 인간에게도 주체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있다는 희망과 학자로서의 치열한 고민이 담긴 개념이다.


하지만 21세기형 문맹에게 밈은 그냥 웃긴 짤(한 컷으로 의미가 완성되는 이미지) 일뿐이다. 미디어는 온/오프라인을 쉽게 넘나들기에 정보의 의미를 해석하고 분석하기가 더욱 어렵다. 하지만 위기는 곧 기회, 이렇게 복잡한 정보를 체계화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에겐 지금이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텍스트를 읽고 중요한 부분을 파악해서 자신만의 방법으로 정보를 체계화한다? 또다시, 독서다! 따라서 독서한다는 것은 선택사항이 아니라 21세기형 문맹에서 탈출하기 위한 필수조건이다.


독해 능력, 읽기 능력을 키우는 방법은 (너무 자주 언급해서 이제 말하기 미안할 정도지만) 역시 독서만 한 것이 없다. 조용히 책에 집중하는 것으로 나의 능력을 키울 수 있다니 정말 다행이다. 어디라도 괜찮다. 책과 내가 기댈 수만 있다면 아무리 협소한 공간이라도 상관없다. 미국 보스턴에서 태어난 시인이자 사상가였다 랠프 월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 1803 ∼ 1882)은 "책을 읽는다는 것은 많은 경우에, 자신의 미래를 만든다는 것과 같은 뜻이다."라고 했다. 성공적인 미래를 꿈꾸며 유능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다면 책을 펼쳐라. 독서는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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