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는 이유
1) 로블록스
2) 코로나 백신 예약
3) 오징어 게임
4) 테슬라 주가
5) 비트코인
● 구글 트렌드 기준 2021년 대한민국의 인기 검색어 순위이다. 우선, 1위를 차지한 로블록스(Roblox)란 사용자가 게임을 프로그래밍하고, 다른 사용자가 만든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온라인 게임 플랫폼 및 게임 제작 시스템이다(위키백과). 이 플랫폼은 캐나다 출신의 공학자 데이비드 바수츠키(David Baszucki, 1963~ )가 2006년에 출시했다. 2010년 이래로 꾸준한 성장세를 이어오던 로블록스는 코로나19 유행으로 더욱 크게 부각된다. 특히 '로벅스(Robux)'라는 가상 화폐를 통해 게임 내에서 여러 가지 아이템을 구매할 수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사회적 거리두기 및 격리로 인해 만나지 못하는 상황에서 어떤 가입자들은 게임 내에서 생일 파티를 여는가 하면, 자선 단체를 위한 가상 모금 행사를 추진하기도 했다.
이렇게 1위의 로블록스를 비롯해 모든 인기 검색어가 코로나 팬데믹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었다. 그리고 작년을 어떻게 보냈는지 돌이켜보면 충분히 수긍할만한 내용이다. 뜬금없는 검색어 이야기에 당황스럽겠지만, 단편적인 단어의 해석을 넘어 행간과 문맥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검색어 순위에는 인간의 솔직한 욕망이 숨어있다. 이러한 결과는 무심코 키보드 위를 움직이는 손가락, 그 손동작을 관장하는 신경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우리의 뇌까지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분명 코로나와 연관된 검색어들이지만 이러한 해석은 이미 모두가 알고 있기에 큰 의미가 없다.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필자는 저 검색어에서 인간들의 '변화'에 대한 갈증을 느꼈다.
결핍은 창조의 동반자라는 말처럼 접촉할 수 없다는 제한된 여건은 인간의 변화에 대한 욕망을 크게 자극했다. 한때 '여행'이라는 평범한 단어에 울먹이는 사람을 여럿 본 적이 있는데(물론 필자도 깊이 공감했다) 그만큼 지지부진한 상황을 바꾸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는 간접증거라고 생각한다. 빨리 지금보다 나은 상황이 오기를 기대했고(코로나 백신 예약), 답답한 상황을 버티고(오징어 게임), 희망찬 미래를 상상했다(테슬라 주가, 비트코인). 그런데 변화는 특별한 상황에만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호모 사피엔스는 물론 지구상의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에게 변화는 생존 그 자체였다.
우리는 한순간도 변화하지 않고는 생명을 연장할 수 없다. 물리적으로도 호흡하는 순간, 더 이상 기존의 '내'가 아니다. 변화는 이렇게 인간의 본성과도 같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어떻게 변할지는 미지수다. 무엇인가 지금과는 다른 것을 이루고 싶지만, 정확히 무엇을 이루고 싶은지 막연하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도 궁극적으로는 변하고 싶기 때문이다. 분명 우리는 '지금보다 발전된 나'를 위해 독서하지만 명확하게 무엇을 바꾸고 싶은 것인지 잘 모른다. 그렇다면 책을 통해 무엇을 바꾸고 싶은지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책을 통한 탐색, 변화에 앞서 우리가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책을 읽는 이유이자 목적은 결국 변화와 탐색이다. 2021년 구글 검색어를 온통 뒤덮을 정도로 인간에게 변화는 중요한 것이었다. 독서는 사람을 변화시킨다. 명확한 증거로, 학창 시절 그토록 우리를 괴롭혔던 교과서(교과서도 책이다)도 알게 모르게 체화되어 인생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지 않은가.
지금 이 글을 읽을 수 있는 이유도 결국 책 때문이다. 당연하다고 생각해서 인식하지 못했거나 강압에 의한 배움이라 외면했을 뿐 독서는 이미 우리에게 많은 변화를 일으켰다. 만약 이러한 독서가 재미있고 행복한 일이라면 변화는 더욱더 극적이고 건설적일 것이다. 이후 '책을 읽는 방법'에서 자세히 소개하겠지만 적절하게 접근하면 독서도 흥미로운 유희 거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아직은 독서가 변화를 이끄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데 동의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리고 막연한 변화의 목표를 탐색하는데 독서만큼 유용한 도구도 없다. 현실에선 불가능하지만 다양한 작품을 읽으면서 우리는 과학자, 혁명가, 군인, 장애인, 외계인, 소설가, 황제는 물론 범죄자까지 돼 볼 수 있다. 각각의 역할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면서 '내가 원하는 나'를 파악하게 된다. 제대로 된 독서(탐색)라면 단순히 문제를 인식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변화의 대상과 방법까지 함께 찾을 수 있다. 무엇보다 명확한 변화의 목표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변화 그 자체에 더욱 몰입할 기회가 많아진다. 몰입의 최우선 조건은 확실한 목표이기 때문이다.
독서는 변화와 탐색의 선순환 구조에 최적화된 도구이다.
『탄탄한 독서력』(카시오페아, 2016)에서 곽동우 작가는 "탐색은 변화의 대상을 찾지 못 한 사람들에게 궁극적인 독서 목적이 되고 변화의 대상을 찾은 사람에게는 변화가 궁극적인 목적이 된다."라고 말한다. 변화의 목적을 뚜렷하게 하려면 탐색해야 하고 탐색으로 찾은 목표로 나아가는 것이 바로 변화다. 그리고 이런 순환구조에 최적화된 도구가 독서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변화와 탐색을 전적으로 독서에 의지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현실의 파편화된 정보를 통해 개인이 이룰 수 있는 변화와 탐색의 기회가 정교한 과정(작가의 원고 창작, 출판사의 출판 가능성 판단, 편집자와 작가의 편집 과정, 판매를 위한 유통과정)을 거친 출판물로서의 책 보다 유리하다고 할 수 있을까? 필자는 책에 한 표를 던지고 싶다.
정(正, 테제)이 그것과 상반되는 반(反, 안티테제)과의 갈등을 통해 정과 반이 모두 배제되고 합(合, 진 테제)으로 초월한다는 헤겔의 변증법을 도식화한 정반합 논리는 인류의 역사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었다. 즉, 독서는 인간의 본성인 변화를 이룰 수 있게 도와줄 뿐만이 아니라 변화의 방향을 탐색하는 유용한 도구이기도 하다. 독서를 통해 변화된 자신은 하나의 결과이자 또 다른 출발점이다. 나아가 이러한 순환으로 인간은 성장과 진화를 거듭한다.
한 가지 부연하고 싶은 것이 있다. 변화를 강조하다 보니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는데 필자 말하고 싶은 변화는 어디까지나 자연스러운 변화, 차분하고 작은 변화이지 극적인 도약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책 한 권으로 자신의 인생을 뒤엎을만한 격변을 겪었다는 경험담을 좋아하지도, 믿지도 않는다. 어제 읽은 책에서 오늘의 현실에 실천할 한 문장을 얻는 것으로 대만족이다. 다음 책을 읽을 때도, 한 번에 저자의 의도를 모조리 파악하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을뿐더러 가능한 일도 아니다. 한 권의 책이 변화의 기회일 순 있지만 변화 그 자체는 아니다. 작지만 소중한 변화가 조금씩 쌓여 의미 있는 변화가 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