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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SMO Nov 30. 2022

벌써 일 년

2022년 11월의 독서 기록

2021년 11월 26일 금요일 새벽, <또 다른 나를 찾아서>라는 유치한 제목의 글을 올림으로써 저의 또 다른 정체성인 ‘브런치 작가’는 탄생했습니다(지금 생각해도 오글거리네요). 작년 이맘때도 쓸쓸한 비와 쌀쌀한 날씨를 번갈아 가며 겨울로 다가가고 있었습니다. 당시 저는 책 읽는 재미에 빠져 책의 세계를 알아가던 초보 독서가였습니다.


읽은 책이 늘어남에 따라 서평을 잘 쓰고 싶었고, 우연히 ‘브런치’의 글을 읽게 됐습니다. 브런치의 존재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일정한 승인 절차를 거쳐야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에 소심한 저는 바로 포기했었습니다. 그렇게 스치듯 지나쳤던 브런치 작가 신청을 왜 갑자기 했는지는 지금도 미스터리입니다. 아마 글을 더 써보고 싶다는 마음이 제일 컸던 것 같습니다.


브런치로 입성하기 전에는 깃허브(GitHub)라는 플랫폼에서 개인 블로그를 직접 개발해 소소하게 서평을 올리고 있었지만 아무도 오지 않더군요(또르르...). 하지만 놀랍게도 시즌 3까지 이어갔습니다. 자신을 잘 모르는 사람이 고집만 센 법입니다. 아쉽게도 맨 처음 개발했던 사이트는 실수로 사라져 버렸습니다(COSMO Lib V0). 가끔 우울할 때 보면 얼마나 재미있는지 모릅니다. 여기 주소를 남길 테니 우울한 분들은 한 번 보세요. 단, 유치함에 몸서리를 칠 수 있으니 주의 바랍니다.


▶︎ COSMO Lib V1


▶︎ COSMO Lib V2


솔직히 고백하자면 작가 승인 신청을 접수할 때 진지한 마음으로 임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떨어지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으니까요. 하지만 초보자의 행운 덕분에 글을 쓸 수 있게 되었고, 또 다른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그렇게 첫 글을 올렸지만 기대와 다르게 제 글을 읽어주는 사람은 또! (거의) 아무도 없었습니다. (첫날 ‘Hello’라는 댓글을 남겨주신 분,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예전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았기 때문에 역시 문제는 나의 글이 많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건 내 길이 아닌가 보다’하며 교감 선생님 훈화 말씀보다 지루한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갑자기 댓글이 하나둘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무려 제 글이 좋다는 평가까지 받았습니다(아마 100번은 넘게 확인했을 겁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합니다. 브런치에서 댓글은 글쓰기의 가장 중요한 동기입니다. 특히, 칭찬 댓글은 가장 강력한 비타민입니다. 글은 조금씩 늘어갔고, 그렇게 저의 브런치 작가라는 정체성은 차곡차곡 자리 잡았습니다.


오늘은 2022년 11월 30일 수요일입니다. 돌이켜 보니 벌써 일 년이 조금 넘었습니다. 조지 오웰은 『나는 왜 쓰는가』에서 작가가 글을 쓰는 4가지 이유를 제시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정치적 글을 예술로 승화하려고 나는 글을 쓴다.’ 어떤 작가라도 자신이 글을 쓰는 이유는 중요합니다. 저는  처음에 ‘따지지 말고 일단 100편만 써보자’가 솔직한 심정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어느덧 148편이 되었습니다.


두서없는 글이 길었습니다. 서글픈 추억에 잠기다 보니 말이 많아졌습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글 친구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꼭 하고 싶습니다. 아프게 쓰러져도 자리를 털고 일어날 수 있는 힘은 생각보다 커다란 게 아닙니다. 작은 배려, 소소한 칭찬, 격려의 박수, 잔잔한 관심만 있어도 엄청난 도움이 됩니다. 그동안 저의 미운 글을 읽느라 고생하신 분들에게 죄송한 마음과 고마운 마음을 함께 전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러면 소중한 추억을 담아 11월에 읽은 책을 소개하겠습니다.



독서기록


#11월독서 #독서기록 #독서달력 #리더스


『나는 왜 쓰는가』·조지 오웰(한겨레출판, 2010)


#작가 #글쓰기 #우리가글을쓰는이유


작가 조지 오웰의 인생과 글에 대한 열정. 나에게 『동물농장』과 『1984』는 동화와 비슷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심각한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상상력을 마음껏 펼친 자유분방함이 이 책에는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동물농장』은 동물들이 인간 세상을 비웃는 ‘우화’이기도 하다. 한편 두 책의 공통점은 전체주의의 폐단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변호할 수 없는 것을 변호하는 것이 정치라는 조지 오웰의 조소가 적나라하게 담긴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소설의 중요한 구성 요소인 ‘진실성’을 가장 재치 넘치게 담고 있는 책 두 권이 모두 조지 오웰의 책이라는 것은 많은 것을 이야기해 준다. 그는 작가였을 뿐 아니라 저널리스트, 라디오 PD, 스페인 내전에 직접 참여한 군인이었다.


『나는 왜 쓰는가』는 조지 오월의 유명한 ‘에세이’ 모음집이자 그의 인생을 담고 있는 책이다. 즉, 여러 정체성과 직업을 경험하며 체득한 ‘글을 대하는 작가의 자세’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생각이 언어를 타락시킬 수 있다면 언어도 생각을 타락시킬 수 있다.’는 그의 생각은 우리가 글과 책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다시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아마 『동물농장』과 『1984』도 그의 이런 생각에서 출발한 작품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즉, 작가 조지 오웰뿐만 아니라 인간 에릭 아서 블레어도 만날 수 있는 책이다. 끝으로 이 책은 분량이 상당한 편이다(478 페이지). 그리고 각각의 에피소드를 따로 읽는다고 문제 될 것은 없어 보인다. 따라서 처음부터 순차적으로 읽는 것이 힘든 독자들은 목차에서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 그것부터 읽을 것을 추천한다. 필자도 <나는 왜 쓰는가>를 제일 먼저 읽었다.



『썩은 잎』·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민음사, 2016)


#콜롬비아 #근대화 #충돌


『썩은 잎』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콜롬비아의 근현대사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작품 기저에 숨어있는 시대적 배경에는 근대화(자본주의의 폐단)의 과정에서 이익을 취하기 위해 움직이는 세력과 이를 거부하는 사람(전통적인 사회 지배층) 간의 충돌이 있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 ‘썩은 잎’은 화폐를 삶의 유일한 가치로 여기는 떠돌이 하층 계급을 의미한다. 즉, 근대화와 자본주의로 인한 사회 전반의 부패와 부식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책의 부피도 작지만, 소설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흐른 시간도 약 30분 정도이다. 따라서 작품 안에서의 서사만으로 저자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생소한 작가와 작품이었지만, 개인적으로 상당히 흥미로운 소설이었다. 근현대사의 우중충함에 있어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한국,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진 독자들에게 분명 ‘공감’할 거리가 많은 소설이다. 그렇기 때문에 짧지만 긴 여운을 느낄 수 있는 책을 찾고 있는 독자에게 추천한다.



『한 여자』·아니 에르노(열린책들, 2012)


#어머니 #망각 #어머니를닮은나


‘전기도 소설도 아닌, 문학과 사회학, 그리고 역사 사이에 존재하는 그 무엇’ 아니 에르노 작가는 『한 여자』라는 책을 스스로 이렇게 정의했다.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글로 옮기기까지 10개월이 걸렸다. 단 한 권의 책에 한 사람의 인생을 전부 담기란 불가능할지 모른다. 하지만 저자는 어머니를 망각하지 않기 위해 그 힘든 여정을 선택했다. 그리고 어머니에 관한 글을 써나갈수록 자기 생각과 다른 어머니를 발견했고, 그토록 벗어나고 싶었던 어머니를 닮은 자신을 발견한다. 아니 에르노 작가 특유의 거칠지만 솔직한 표현, 짧지만 강렬한 인상, 여유가 넘치지만 빠른 리듬감 있는 문체가 잘 드러난 책이라고 생각한다. 부모님과 자신의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고 싶은 독자들에게 분명히 큰 울림을 줄 책이다. 나와 부모 사이에 존재하는 문학, 사회학, 역사를 발견하고 싶은 독자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달콤한 수학사 1』·마이클 J. 브래들리(지브레인, 2016)


#수학 #수학문화 #수학자


수학을 사랑한 사람들. 부제를 ‘탈레스의 증명부터 피보나치의 수열까지’로 정한 것처럼 수학 자체도 다루지만, 수학을 사랑했던 인물들의 인생을 살펴보면서 수학의 역할과 의미를 차분하게 풀어낸 시리즈이다. 그중 첫 번째 책으로 고대 밀레투스의 탈레스부터 12세기 피보나치까지 다룬다. 수학은 숫자나 도형만을 다루는 학문으로 착각하기 쉽지만, 사실 수학은 언어적인 학문이다. 우리 주변의 자연이나 사회현상을 효과적으로 나타내는 데 유용한 학문이 바로 수학이다. 아울러 수학을 사랑했던 인물을 따라가며 수학의 역사를 살펴본다면 멀게만 느껴졌든 수학을 더욱 친근하게 대할지 모른다. 따라서 수학을 고통과 좌절로 기억하는 독자들에게 수학의 매력을 알려줄 수 있는 책이다.



『변신, 시골의사』·프란츠 카프카(민음사, 1998)


#소외 #꿈같은현실성 #유리벽 #현미경


프란츠 카프카를 만나러 가는 길은 꿈과 현실이 교차하는 골목길이었다. 솔직히 『변신』을 제외하고 이 책에 소개된 카프카의 작품을 제대로 읽었다고 말하지 못하겠다. 문학 작품이기에 당연하지만, 작가의 내면(개성)이 잘 드러나는 책이기 때문에 오히려 문장 하나하나를 이해하면서 책장을 넘기는 일이 쉽지 않다. 이런 책을 만났을 때 필자가 자주 사용하는 방법이 있다. 읽고 이해하지 말고 느끼면서 읽는 것이 그 방법이다(???). 무슨 헛소리인가 싶겠지만, 논리적 이성만으로 세상의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이 얼마나 위험한지는 모두가 동의할 것으로 믿는다.


즉, 글자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작가가 이 문장을 쓸 때의 감정에 더욱 집중한다고 생각하면 쉽다. 카프카의 글은 그렇게 받아들여야 끝까지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방법을 쓸 때의 느낌이 나쁘지만은 않다. 단순하고 뚝뚝 끊기지만 냉소적으로 현실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을 더 잘 느낄 수 있다. 프란츠 카프카 문체의 특성이 ‘꿈같은 현실성’인 이유라고 말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라고 본다. 난해한 카프카의 세계를 본격적으로 경험하기 전에 ‘전주곡’ 정도라고 생각하면 알맞은 책이다. 고독한 가을을 카프카와 보내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1984』·조지 오웰(민음사, 2003)


#개인의파괴 #전체주의 #언어의지배


전체주의를 향한 비참한 경고. 1984년은 현재의 시점에서 과거이다. 하지만 조지 오웰이 이 작품을 출간한 1949년에서 바라보면 『1984』는 미래의 이야기였다. 그가 말한 미래 사회는 ‘전체주의’ 그 자체였다. 모든 것은 지배층의 권력을 위해 존재했고, 그래야만 했다. 역사(과거)도 전쟁(폭력)도 그리고 사랑(인간성)과 자신의 존재도 철저히 부정할 때 전체주의는 유지된다. 여타의 감정을 배제하고 이 책의 서사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전체주의가 개인을 무너뜨리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모습이 너무 끔찍하기에 소설 속의 이야기라는 것에 안도감을 느낄 정도다. ‘철저하게 처참하다’는 표현이 잘 어울리는 작품이다. 조지 오웰은 우리를 인간 의식의 저 밑바닥까지 끌어내리고 거기에 무엇이 있는지 똑바로 바라보라고 한다. 그 심연에는 열정도 부끄러움도 없었다. 단지 생존만이 있을 뿐이었다.


인간이 삶의 모든 기준을 생존에 둔다면 어떻게 될까? 부모와 자식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 친구와의 관계, 연인과의 관계는 물론, 나와의 관계도 모두 부정되고 파괴될 수밖에 없다. 인간의 파괴는 단지 물리적인 손실만을 의미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을 비롯해 모든 것을 부정하는 것이 바로 파괴다. 책의 주인공인 윈스턴 스미스는 주변의 모든 것을 부정해야만 했다. 사랑하는 여인을 배반하는 것도, 부조리한 사회를 반항하는 것도 전체주의 앞에서는 어렵지 않았다.


따라서 전체주의의 가장 위험한 속성은 인간 파괴에 있다. 2022년 우리는 전체주의와 멀리 떨어져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드러내 놓고 말은 못 하지만 은연중에 전체주의를 옹호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에서도 전체주의는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다. 필자도 전체의 이로움을 위해 소수의 피해는 당연하다고 생각해 본 적 있다. 공동체 지향적인 사회인 대한민국에서 쉽게 나타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조지 오웰의 경고를 무시할 때 전체주의는 당신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것이다.



『아우라』·카를로스 푸엔테스(민음사, 2009)


#고딕소설 #욕망 #시간의초월


저자인 카를로스 푸엔테스는 자신의 정체성인 멕시코 역사의 한계를 고딕소설의 형식을 통해 극복하려고 시도했다. 꿈인지 환상인지 모를 이야기의 전개는 마치 영화를 보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게다가 무섭고 끔찍한 묘사는 독자에게 더욱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라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등장인물들의 관계를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작가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로 이어지는 멕시코 역사의 질곡을 표현하려는 의도를 읽을 수 있었다. 『아우라』는 기이한 고딕소설을 넘어 현재가 과거를, 과거가 미래를 지배한다는 무서운 진리를 표현하려고 한 것은 아닐까. 쌀쌀한 가을,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책을 읽고 자신만의 지적 사색에 잠겨보고 싶은 독자에게 이 얇은 책을 추천한다.




이달의 책

『나는 왜 쓰는가』·조지 오웰(한겨레출판, 2010)
지식/정보 : ★★★★☆
감동/의미 : ★★★★☆
재미/흥미 : ★★★☆☆



이달의 문장

1. 순전한 이기심: 똑똑해 보이고 싶은 사람들의 이야깃거리가 되고 싶은, 사후에 기억되고 싶은, 어린 시절 자신을 푸대접한 어른들에게 앙갚음을 하고 싶은 등등의 욕구를 말한다.

2. 미학적 열정: 외부 세계의 아름다움에 대한, 또는 낱말과 그것의 적절한 배열이 갖는 묘미에 대한 인식을 말한다.

3. 역사적 충동: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고, 진실을 알아내고, 그것을 후세를 위해 보존해두려는 욕구를 말한다.

4. 정치적 목적: 여기서 정치적'이라는 말은 가장 광범위한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 동기는 세상을 특정 방향으로 밀고 가려는, 어떤 사회를 지향하며 분투해야 하는지에 대한 남들의 생각을 바꾸려는 욕구를 말한다. 다시 말하지만, 어떤 책이든 정치적 편향으로부터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 없다. 예술은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는 의견 자체가 정치적 태도인 것이다.

조지 오웰이 생각한 작가가 글을 쓰는 이유. 나의 내면 깊이 자리 잡고 있는 취향과 대중과 사회가 요구하는 규범의 ‘화해’가 곧 작가의 글쓰기다. 즉, 『동물농장』은 정치적 목적과 예술적 목적을 하나로 융합해보려는 최초의 시도였으며 『1984』에서 종결지었다. ‘나는 왜 쓰는가?’라는 질문을 자신에게 던질 수 있을 때 작가라는 정체성으로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당신은 지금 글을 왜 쓰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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