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3월의 독서 기록
갑자기 월말결산입니다. 다들 잘 지내고 계시는지요. 요즘 날씨는 많이 풀렸지만, 밤과 낮의 일교차가 커 추운 날이 계속되는 겨울보다 감기에 조심해야 합니다. 모두 건강한 모습으로 다정한 봄을 마음껏 즐기고 있으시길 바랍니다. 저도 브런치에 글을 올리고 있진 못했지만 딴은 이것저것 아주 바빴습니다. 글쓰기를 업으로 삼으신 분들에게 부끄럽지만 감히 말하자면, 마지막 브런치북을 발간하면서 글쓰기가 얼마나 고된 일인지 잠시(?) 겪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제가 얼마나 얕고 가벼운 인간인지 제대로 깨달았습니다. 겸양이 아니라 그동안 할 말이 무궁무진하리라는 예상과 다르게 글을 쓸 때마다 부족한 저의 사고의 한계가 바로 드러났습니다. 그럴 때마다 턱턱 방지턱에 걸리는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독서도 사유도 매우 부족하다는 생각을 저버릴 수 없었습니다. 자존감을 파괴하는데 자기 비하 개그만큼 나쁜 것이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비하가 아니라 현실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사실 (거룩할 필요도 없이) 독서하는 시간이 그리웠습니다. 책만큼 누군가의 마음을 가득 채울 수 있는 건 별로 없으니까요. 간단하지만 확실한 진리가 하나 있습니다. ‘무엇’인가를 잘하려면 그 ‘무엇’에 대해 잘 알고 익숙해야 합니다. 음악을 잘 만들려면 음악을 잘 알아야 합니다. 게임을 잘하려면 게임에 익숙해야 합니다. 비슷하게 글을 잘 쓰려면 책을 많이 읽어야 유리합니다. 그렇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한계가 있고, 글쓰기에 집중하다 보면 독서를 잠시 미룰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이 생깁니다.
모순 같지만 글쓰기와 독서, 그 경계를 잘 파악하고 적절하게 균형을 유지하는 것은 중요하기도 하지만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독서로 내면을 꾸준히 채우고 글쓰기로 자기 생각을 정교하게 다듬는 일, 말하기는 쉽지만 결코 만만한 것은 아닙니다. 어찌 보면 좋은 작가가 되기가 쉽지 않은 이유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동안 글을 쓰지 않았다는 변명이 참 길었습니다. 변명하는 김에 하나 더 보탠다면, 다음 글의 주제와 소제를 열심히 모색하고 있습니다. 가혹하게도 봄은 다시 왔습니다. 새로운 봄처럼 여러분에게도 밝고 따뜻한 일이 가득하시길 기원합니다.
『칼 세이건의 말』·칼 세이건(마음산책, 2016)
#칼세이건 #천문학 #인터뷰
인간은 자신의 한계를 철저하게 인식했기에 사회를 구성함으로써 그 한계의 벽을 하나씩 넘어왔다. 또한 벽을 넘기 위해 겪어야 했던 수많은 인내와 노력은 현재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찬란하게 살아남았다. 추상적인 개념으로 ‘인내와 노력’이라고 말했지만, 사실 그 안에 담긴 역사는 처절했고 간절했다. 특히, 과학은 시대와 공간을 초월하며 인류에게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선사했다.
과학은 인간이 자신은 물론 자신을 둘러싼 주변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도구였다. 그렇기에 인류가 막막하기만 했던 환경의 벽을 수월하게 넘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반대로 전 인류를 한순간에 쓸쓸한 과거의 추억으로 만드는 힘을 가진 것도 과학이다. 어찌 되었든 과학은 인간이 사회를 구성하는 데 꼭 필요한 여건이 되었다. 과학을 제외하고 인류의 미래를 계획하는 일은 이제 불가능하다.
모두가 과학의 이러한 소중한 가치를 인정하고 있지만, 과학을 잘 안다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중요하지만, 알기 어렵다는 말은 괴변처럼 보이지만 답답한 현실이기도 하다. 중요한 사회적 결정을 내리는 데 과학이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하지만, 과학을 제대로 몰라 아무런 의견을 가질 수 없다면 얼마나 우울한 일인가. 그런데 이 책에는 누구보다 친절하게, 어떤 말보다 정답게, 그리고 그 어떤 과학자보다 정확하게 과학을 알려주는 사람이 있다.
칼 세이건은 과학의 대중화에 가장 큰 업적을 남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례로 『코스모스』는 지금까지도 교양 과학 서적의 고전으로 남았다. 『칼 세이건의 말』은 그가 TV, 잡지, 라디오 등에서 인터뷰한 내용을 시간순으로 정리한 책이다. 텍스트로만 만났던 천문학자의 문학적 감성을 ‘음성’으로 만날 수 있다는 점은 이 책의 가장 소중한 가치라고 생각한다.
1) 우주의 경이로움과 2) 과학적 접근을 통한 합리적 사유의 가치는 칼 세이건이 저술한 대부분의 책에서 일관되게 등장하는 주장이다. 『칼 세이건의 말』에 등장하는 그의 인터뷰 역시 이 두 가지 화두를 담고 있다. 『코스모스』가 아직은 부담스러운 독자가 있다면 이 책을 통해 칼 세이건의 세계를 예습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게다가 글이 아닌 칼 세이건의 목소리가 듣고 싶은 독자에게도 이 책은 반가운 선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과학이 어려운 이유는 어렵게 가르치기 때문이다. 과학은 흥미진진할 뿐 아니라 현실의 문제를 해결할 고마운 친구이다. 막막하고 어렵기만 할 것이라는 우주 이야기가 얼마나 서정적이고 다정할 수 있는지 경험하고 싶은 독자가 있다면, 이 책 『칼 세이건의 말』을 적극 추천한다.
『역사란 무엇인가』·에드워드 H. 카(까치글방, 2015)
#역사가 #대화 #역사의진보
‘질문’은 당연히 궁금한 것을 물어보는 행위겠지만, 무의식적이고 단순한 행동이기에 앞서 생산적이고 효율적인 대화를 위해 필요한 과정이기도 하다. 특히, 그 질문의 형태나 대상이 근원적일 경우 이후 이어질 이야기의 방향이 더 생산적일 가능성이 높다. 아울러 당황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철학이란 무엇인가?, 생명이란 무엇인가?, 국가란 무엇인가? 사랑이란 무엇인가? 웃음이란 무엇인가?’처럼 말이다.
근원적인 질문이 우리에게 당혹감으로 다가오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아무래도 ‘대답하기 무척 까다롭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무엇부터 말해야 할지 막막하다. 누구나 역사가 무엇인지 대충 알고는 있지만 타인에게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해박한 역사적 지식을 가진 사람은 그렇게 흔하게 볼 수 없다. 마찬가지 이유로 E.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를 많은 사람이 알고는 있지만 제대로 읽은 사람은 별로 없다. (오해하지 말자 필자도 마찬가지다)
이제 겨우 3번 읽었다. 처음 읽었을 때의 당혹감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이 책은 1960대라는 시간적 제한과, 크게는 영어 문화권 작게는 영국이라는 지역적 제한, 그리고 역사학자라는 전문가적 제한을 가볍게 뛰어넘을 수 있어야 제대로 읽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책에서 등장하는 인용문을 저자가 의도한 문맥에 맞게 온전히 해석하려면 전문가 수준의 배경지식이 필요하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애초의 이 책은 대학 강좌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책이며, 강좌의 대상이 20세기 초반 영국의 지식인(특히 역사학자)이었다.
두서없이 글을 쓰다 보니 서평이 아니라 이 책을 읽지 말라는 말처럼 돼버렸지만, 쉽게 술술 읽히는 책이 아닌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책을 어떻게 받아들여야만 할까? 그리고 왜 읽어야만 할까? 대답은 간단하다. 우리가 그동안 읽어온 수많은 역사 서적의 대부분은 이 책 『역사란 무엇인가』에게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아왔고 지금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 책이 어려운 이유는 복잡해서라기보다는 낯설기 때문이다. 생소한 역사학자와 역사책, 그리고 잘 모르는 역사적 사건이 자주 등장하기 때문에 어렵다고 느끼게 된다. 저자인 E. H. 카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그다지 생소하거나 복잡하지 않다. ‘역사란 역사가와 그의 사실들의 끊임없는 상호작용 과정,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것이다.’ 이 유명한 문장이 등장하는 책이 바로 『역사란 무엇인가』이다.
누군가는 진부하다는 평가를 내질지도 모르겠지만, 글을 좋아하는 필자에게 이보다 역사를 아름답고 지적으로 정의한 문장은 지금까지 보지 못했다. 이 문장 딱 하나만 기억해도 이 책을 읽을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 문장 이외에도 기억할만한 문장과 문단이 넘쳐난다. 그러니 만약 이 책을 처음 읽는 독자들에겐 모든 것을 한 번에 파악하겠다는 욕심보다는 마음에 닿는 문장을 찾겠다는 희망으로 읽기를 권한다.
한 가지 더 기억에 남는 것은 역사가 자신도 역사의 산물일 수밖에 없다는 E. H. 카의 주장이다. 고대 그리스의 주인공이 아테네와 스파르타인 이유는 아테네와 스파르타 사람이 가장 많은 기록을 남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단순한 사실이나 기록을 역사로 만드는 것은 역사가의 해석이며, 해석이라는 행위에는 그 사람의 가치관이나 사상이 담길 수밖에 없다. 따라서 역사 서적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책을 쓴 사람, 즉 역사가를 먼저 파악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역사책을 말할 때 책만 뚫어지게 바라본다고 역사를 공부하는 것은 아니다. 책을 왜 그렇게 썼는지 알아야 동의할 수도, 저항할 수도 있다.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을 다룬다는 의미에서 메타 인지적 역사책이라고 감히 말해본다. 여러모로 독자 인식의 지평을 활짝 펼쳐주는 책이다. 합리적 이성의 지평을 지향하는 것은 고전의 필수 조건이다. 그리고 『역사란 무엇인가』는 이 조건에 가장 적합한 책이었다.
『고대 그리스 내전, 펠로폰네소스 전쟁』·빅터 데이비스(가인비엘, 2009)
#투키디데스 #내전 #고대그리스
이 책은 그리스 아테나이인 투키디데스의 역사서를 현대적인 문장으로 풀어쓴 해설서이다. 이제는 모두가 알고 있지만, 전쟁 초기 아테나이는 페르시아 전쟁의 주요한 역할 덕분에 스파르타에 비해 많은 면에서 확실히 앞서있었다. 에게해를 아우르고 있던 아테나이의 해상장악력은 살라미스 해전 이후 그리스의 모든 폴리스에게 존경을 넘어 공포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내부의 갈등, 기득권의 부패, 과도한 확장 정책의 실패(시칠리아), 기근과 전염병 등으로 아테나이는 점점 스파르타에 전쟁의 승기를 내주게 된다. 30여 년간 지속한 전쟁에서 승리의 여신은 결국 스파르타의 손을 들어준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많은 사람이 페리클레스를 언급하지만, 개인적으로 관심을 끌었던 인물은 알키비아데스였다.
배신과 기만으로 가득했던 아테나이의 지도자이자, 스파르타의 장군이자, 페르시아의 참모였던 알키비아데스의 삶. 펠로폰네소스 전쟁 내내 중요한 장면에서 많은 역할과 비난(?)을 담당했던 인물이었다. 그의 이름 앞에 항상 따라다니던 영광과 존경의 수식어에 비해, 그의 최후는 서글프도록 참담했다. 엄청나게 오래된 이야기이지만(기원전 약 400년) 저자의 전문적이고 해박한 해석은 현실적이고 현대적이다. 정치의 이상과 현실, 국제관계, 전쟁 그리고 역사의 큰 흐름을 이해하는데 탁월한 기준을 제시한다. 또한 서로 다른 이념과 체제로 21세기인 현재까지 나뉘어 경쟁하고 있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원소가 뭐길래』·장홍제(다른, 2017)
#화학 #주기율표 #원소
‘선입견’은 분명 단어의 사용에서도 실제적 의미에서도 부정적인 경우가 많이 있다. 이와는 다르게 ‘배경지식’은 깊이 있는 이해까지 쉽게 이어진다는 점에서 매우 유용하기도 하지만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 꼭 필요한 지적 활동이라고 생각한다. 일례로 사칙연산을 경험한 적 없는 사람에게 방정식과 인수분해를 설명하기는 무척 어려운 일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교양 과학 서적을 제대로 읽기 위해서 기초 과학과 관련된 배경지식의 필요함을 절실히 느끼고 있었다. 굳이 변명을 좀 하자면 (지금은 후회하고 있지만) 필자의 학창 시절 수학, 화학, 물리학 등은 전혀 친절하지 않았다.
상당히 늦었지만 나머지 공부를 한다는 뜻에서 이 책을 선택했다. 어려운 과학 서적을 읽을 때마다 화학이 다루는 주요 소재인 원소와 원자의 정의와 개념 그리고 원리를 파악하고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원소가 뭐길래』는 이렇게 화학의 기본 지식에 목마른 독자들에게 좋은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 물론 깊이 있는 설명과 자세한 이론은 부족한 책이라고 생각하지만, 화학과 친근해지기 위한 조건을 충분히 가지고 있는 책이다. 특히, 주기율표를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이 책은 한 번에 읽고 마는 책이 아니라 궁금할 때마다 펼쳐보는 참조용 도서에 더 최적화되어 있다.
『칼 세이건의 말』·칼 세이건(마음산책, 2016)
지식/정보 : ★★★★☆
감동/의미 : ★★★★☆
재미/흥미 : ★★★☆☆
우리의 지혜와 신중함은 자신의 불완전함을 이해하는 데서 나옵니다.
『칼 세이건의 말』, [5 p]
과학에서 칼 세이건은 과학의 회의주의를 강조한 이유가 분명히 있습니다. 제 존재도 이렇게 하찮고 사소한 이유가 분명히 있습니다. 우리는 우주의 변방에서도 지독하게 외면된 태양계에 존재합니다. 그리고 그 태양계에서도 중심이 아니라 태양에 종속된 행성 중 하나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존재는 우주의 복잡성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인간은 우주에서 유일하게 지적 활동을 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과학적으로 지구와 우주를 탐구하여 우리의 작은 세상에서 발생하는 현상이나 우주의 큰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노력은 우리가 인간으로서 더 나은 존재가 되는 데 큰 역할을 합니다. 또한 인간의 존재는 우리의 한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합니다. 인류는 자신의 한계를 철저하게 인식했기에 사회를 구성함으로써 그 한계의 벽을 하나씩 넘어왔습니다. 또한 벽을 넘기 위해 겪어야 했던 수많은 인내와 노력은 현재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찬란하게 살아남았습니다.
추상적인 개념으로 '인내와 노력'이라고 말했지만, 사실 그 안에 담긴 역사는 처절하고 간절했습니다. 칼 세이건은 과학의 대중화에 가장 큰 업적을 남겼습니다. 그는 TV, 잡지, 라디오 등에서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한 책인 『칼 세이건의 말』에서 과학을 친절하고 정확하게 알려주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과학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우리의 작은 세상에서 발생하는 현상과 우주의 큰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됩니다.